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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無의 삶을 산 김용은 목사(13)

기사승인 [585호] 2023.05.25  13: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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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교회 세 차례 교회 건축

                     김용은 목사

김용은 목사는 보통기도원보다 교회에서 기도하는 것을 선호하였으나 이번에는 절박한 마음으로 주미산 기도원으로 가서 일주일을 금식했다. 기도원에서 돌아온 후, 300명의 집사들이 하루에 세 사람이 한 끼씩 100일 동안 금식기도를 하자고 했다. 1980년 9월 13일부터 12월 31일까지 100일 동안 금식기도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 추진되지 않았다. 다시 2차 금식기도로 1981년 2월 21일부터 8월 29일까지 긴 터널을 통과했다. 김용은 목사는 지쳐 있는 성도들과 함께 6개월 동안 철야 171일, 금식 10일을 하면서 현재의 성전을 완공했다.
한 집사는 시골에서 교사 생활을 하다가 군산으로 와서 중동교회에 출석하고 있던 신혼 집사였는데, 전에 다니던 교회에 전 재산을 헌금하고 왔기 때문에,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믿음으로 100만 원을 약속했다.
이 소식을 가지고 애육원 권사에게 찾아갔더니 “저도 해야지요” 하면서 약속을 한 것이 교회 건축의 종자 씨앗이 되었다. 또한, 김용은 목사는 자수성가하여 목회하기 전 사업할 때 모은 토지를 처분하여 교회 건축에 헌금했고, 많은 행사에서 받은 사례금, 금반지, 금 열쇠 등의 선물도 모두 헌금하여 교회 건축에 보태었다. 이렇게 오늘의 중동교회는 많은 눈물과 기도로 지어진 교회이다.
■ 농·맹아학교 설립
1960년도 기독교 계명협회가 한글 문맹 퇴치 운동으로 군산지역에 와서 성인들에게 한글 교육을 했다. 얼마 후에 구화. 수화를 하는 농아 전도사가(몸이 작고 안경 씀) 와서 군산에 농아들을 시설이 없다면서 군산에 농아학교를 세울 것을 요청해왔다.
김용은 목사는 이를 어려운 사람, 약한 사람, 소외된 사람에 대한 관심을 두도록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로 받아들였다. 그는 즉시 적산가옥 1층에 농아학교와 맹아학교를 설립하고 동양선교회(OMS)의 지원을 받아 맹·농아학교를 열었다. (대표:신항일 장로) 개교 후 군산을 비롯하여 남원과 충청도에서도 학생들이 찾아왔다.
후에는 외부의 지원 없이 군산 중동교회에서 독자적으로 운영했다. 다른 지역에서 오는 학생들을 위해 영신학사를 만들어 20~30명의 학생들이 기숙하게 되었다. 이것은 군산중동교회와 그가 실시한 특수 선교의 시작이었다.
■ 교도소 선교
김용은 목사가 교도소 선교를 하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계기가 있었다. 그의 부친이 일찍 별세하자 그의 숙부가 김 목사의 6남매를 돌봐줬다. 그 숙부가 이장이었는데 명절에 마을 사람들이 공동으로 소를 한 마리 잡았다. 그 시절에는 명절이나 무슨 잔치가 있으면 공동으로 소나 돼지를 잡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일이 밀도살로 고발되어 이장인 숙부가 처벌받을 위기에 있었다. 김 목사의 둘째 동생이 이 사실을 알고 숙부 대신 경찰서를 찾아가 자기가 한 일이라고 거짓 자백을 하여 8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다.
그때 김 목사는 동생을 면회하면서 재소자의 처지를 보고 마음이 아팠다. 굶주린 자에게 먹을 것을 주고 목마를 자에게 마실 것을, 나그네를 맞아 벗해 주고, 병든 자를 간호해주고 갇힌 자를 찾아가야 한다는 주님의 명령을 되새기게 되었다. (마25:34-40)
1951년부터 시작된 교도소 선교는 50년 넘게 그가 은퇴한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 김용은 목사는 일반 사회와 단절된 외로운 그들을 찾아가 정성이 깃든 따뜻한 음식을 제공하면서 위로해 주며 구원의 복음을 전했다. 성탄절, 설, 추석, 생일 등 특별한 날에는 반드시 찾아가 선물을 전달하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했다. 1999년엔 재소자들이 교도소 안에서도 TV를 볼 수 있게 되어 선교회장인 그가 독지가들의 후원으로 교도소의 감방 수대로 139대의 TV를 희사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자기 집에서 출소한 재소자들이 2~3명씩 거주하며 직장을 얻을 때까지 돌봐주기도 했다. 그는 재소자에게 자상한 아버지와 같은 존재였다, 그의 헌신을 기억하고 정부는 김용은 목사에게 ‘교정 대상’을 수상했다. <다음 호에 계속>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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