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위 영 사모의 편지

기사승인 [577호] 2023.03.17  17:08:42

공유
default_news_ad2

- 맥락! 근조!

위 영(본지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페터 비에르가 쓴 인간의 존엄에 대한 글 ‘삶의 격’을 읽었다. 삶의 격이 좀 있게 살고 싶은 나에게는 아주 매혹적인 제목이었다. 그러나 삶의 격이 쉽지 않듯이 글 역시 쉬 읽히지 않았다. 무엇 때문일까, 읽으면서 생각해보니, 무지한 독자인 나는 답을, 그것도 아주 간결한 답을 원하고 있었는데 답은 없고 과정이 기록된 글이었다. 과정뿐 아니라 결조차 많은 글이었다. 깊게 그리고 넓게 열린 책이라고나 할까, 예시된 사람들의 수도 많았고 그들의 존엄은 각자의 위치에서 매우 상이했다.
 “존엄은 인간관계를 통해 내가 변할 수도 있다는 마음의 준비와 필요하다면 그 관계를 끝낼 수도 있다는 각오를 의미하기도 한다.” 충실성과 열린 미래가 이어지고 거기에 솔직한 이야기까지 첨언 된다. 
 가령 이런 이야기가 있다. 저자를 찾아온 손님은 사회복지 관청에서 오는 길이었다. 저자는 그 장소를 존엄성이 위협받는 장소라는 표현을 썼다. 맥락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그곳에서 누군가 구토를 했다. 악취가 풍긴다. 모두가 다 외면한다. 신사 한 명이 양동이와 물걸레를 찾아와서 토사물을 치운다. 바지에 얼룩이 묻었다. 그는 그 모습으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한다. 페터의 손님은 말한다. ‘해야 할 일을 기꺼이 하는 마음가짐, 그것이 인간의 존엄 아닐까요?’ 평정과 평상심이 존엄이고, 입센의 노라가 참된 자신을 찾아 나서는 것이 존엄이라는 대목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내가 밑줄을 그은 것은 ‘목적 앞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릴 줄 알아야 존엄’이라는 대목이다.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도 존엄이지만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인간의 존엄이다는 것. 
 현역 검사니까 오죽하랴. 법을 밀가루 반죽처럼 주무르는 게 그들의 일이니까, 그런데 자신의 아이가 폭력을 휘두르고 다른 아이가 말로 형언키 어려운 피해를 입었는데 사과나 폭행을 당한 상대 아이에 대한 배려는커녕 그는 자신에게는 가장 만만한, 그러나 보통 사람에게는 높고 아득한 <법>을 들고 나섰다. 
 솔직히 나 같은 민초들도 내 아이가 귀중하면 남의 아이도 귀중하다는 것을 안다. 그것은 삶의 격까지 거론할 필요도 없는 매우 단순한 사실이다. 어쩌면 유치원 아이도 가려서 가야 할 남자 화장실 여자 화장실 같은 이야기다. 내 아이가 그렇게 다른 아이에게 피해를 줬다면 당연히 내 아이를 나무라고 그 아이에게 사죄해야 하지 않을까, 미안하구나, 네가 너무 상처를 입었겠구나. 어떻게 사죄를 해야 할까..... 이제 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 용서해다오. 이렇게 나서야 사람 아닌가, 그랬다면 그 아이는 그런 극단적인 선택까지는 안 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과는커녕 법꾸라지 검사 나으리께서 한 말은 이렇다. ‘실제 폭력이 아니고 언어폭력이니까 <맥락!>을 살펴봐야 한다고!’ 아니 이 나라의 검사들 수준은 폭력이 꼭 물리적인 힘이 가해져야만 폭력이라는 것인가, 말이 지닌 날카로운 날조차 구별할 수 없는 실력으로 그렇게 높은 자리까지 올라갔다는 말인가, 수사본부장으로 천거된, 사람도 많이 알고 지위도 높은 이 법꾸라지님은 결국 고소를 하는 기염을 토했고 이 역겹고 천박한 싸움은 대법원까지 갔다. 덕분에 피해자인 아이는 가해자인 아이와 격리도 되지 못한 채 일 년 가까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얼마나 상황이 안 좋았으면 인맥을 총동원해서 법꾸라지 노릇을 했을 텐데 대법원이 기각했을까, 필자는 이 대목에서 그 아이가 당한 무시무시한 폭력을 짐작해볼 수 있었다. 과연 그 법꾸라지는 아들의 학폭 사건으로 대법원까지 가는 동안 수많은 동문에게 부끄럽지 않았을까? 그래서 수사본부장에 천거될 때도 자격 된다며 당당히 서류를 내밀었던 것일까, 
 또 하나 매우 흥미로운 것은 가해자인 법꾸라지 아들이 택한 서울대학교 철학과다. 철학은 자신과 사람과 사회에 대한 성찰이 주조를 이루는 학문인데 그 험한 입으로 철학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니 더 궁금한 것은 공부를 못해서 감히 검사와 변호사를 꿈도 꾸지 못한 나 같은  민초의 아들 딸들 조차 평생 입에 담기기는커녕 꿈도 꾸지 못하는 그 상스러운 단어를 저 높으신 나으리의 아드님은 과연 어디서 누구에게 배운 것일까,   
맥락!!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한 시대다. 맥락은 사람과 관계에 대한 이해를 깊게 하는 도구이며 단순하고 날카로운 판단을 멈추게 하는 기제로 품격있는 단어다. 그런데 수사본부장으로 천거되신 높으신 분께서 맥락이라는 아름다운 단어를 사형시켰다.  
 맥락에 삼가 근조를 표한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독자기고

item34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