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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궁 목사의 이야기 교회사 (24)

기사승인 [624호] 2024.10.10  16:5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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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잔틴 제국의 신앙

박용궁 목사(D.Min., 많은샘교회 담임, 미국 루터신대(LTSP) 졸업)

종교는 비잔틴인들에게 삶의 중심입니다. 그 열성은 우리의 상상을 넘어섭니다. 일반인들은 빵집 앞에 줄을 서서도 그리스도 신성과 인성에 대해 논의할 정도입니다. 어쩌면 동네 학부모들이 카페에 모여 자녀교육이나 학교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모습과 비슷하다면 상상이 되시나요? 그것도 단순히 신앙생활이 아니라 신학적인 주제까지 깊은 관심을 가질 정도입니다. 451년 지금의 터키 지역인 칼케돈에서 열린 공의회는 네스토리우스파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가운데 하나를 더 인정하는 경향을 거부합니다. 하지만 시리아와 이집트에서는 칼케돈공의회를 반대하는 콥틱 교회로 지속됩니다. 이들은 신학적 문제만이 아니라 자국의 언어로 미사를 드려 콘스탄티노플과도 괴리가 생깁니다. 심지어 아랍인들이 침공했을 때에는 그들을 해방자로 여기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종교적으로 동로마는 비잔틴으로 점차 지역이 축소됩니다.

비잔틴 또는 정교회하면 성상(icon)이 떠오릅니다. 1세기의 기독교인들은 이러한 문제를 우상으로 접근하여 반대합니다. 그렇지만 3세기부터 카타콤에서부터 사람들이나 성서의 장면을 묘사하는 그림들이 나타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영정이 귀중하게 다루어지기 시작합니다. 나아가 콘스탄티노플에는 성모의 허리끈, 젖먹이 그리스도를 안았던 젖 자국이 남은 의복 등을 모십니다. 이것들은 진위를 떠나 사람들의 마음에 그림보다 더 생생한 현장이겠지요? 그래서 헤라클리우스가 628년 페르시아와의 전투에서 승리했을 때, 그의 가장 중요한 치적은 진품 십자가를 되찾은 것이라 말합니다. 십자가는 예루살렘에서 아랍의 공격으로 인해 콘스탄티노플로 옮겨집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가정에 성물을 가지고 있을 수 없었기에 나무판에 수채화를 그려 모십니다. 그리고 이는 이내 성물과 같은 기적의 힘을 가진 것으로 여깁니다.

비잔틴 제국의 전통에서는 이 ‘아이콘’(icon, 형상, 이미지)에 대해 문맹자들을 위한 책이며 말없는 설교라고 합니다. 물론 일부에서는 미신이며 우상숭배라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717년 콘스탄티노플이 아랍의 공격을 받을 때, 보호를 바라며 성모상과 진품 십자가를 들고 성벽을 행진합니다. 그만큼 이에 대한 신앙심이 각별합니다. 심지어 그리스도가 카물리아나의 성화를 손수 그렸고 에데사 성문에 편지를 새겼다고도 합니다.

하지만 726년 레오 3세 황제는 콘스탄티노플 궁전의 정문에 있던 그리스도의 영정을 파괴합니다. 이는 대중이 지지하는 신앙을 정화하고 성상숭배론자들인 수도사들의 영향력을 제한하려는 의도라 평가합니다. 성상숭배론은 콘스탄틴 5세의 집권기(741~775)에 절정에 다다랍니다. 수도사들은 성상을 수호하기 위하여 순교도 불사합니다. 이레네(Irene) 여왕은 787년 제 7차 전체 공의회인 니케아회의에서 성상숭배를 인정하기도 합니다.

이후로도 논란이 반복되지만 843년 교회와 평신도들이 황제의 요구에 대항하여 승리합니다. 성화가 복원되면서 수도사들의 승리로 막을 내립니다. 이제 수도원들은 더욱 늘어나고 부유해집니다. 그렇지만 모자이크나 성화들은 엄격한 신학적 원칙들에 의해 제작됩니다. 교회의 벽을 장식할 때, 둥근 천장부터 예수 그리스도와 오순절의 성령부터 계급에 따라 내려오면서 성당의 가장 낮은 곳에 성인들을 모시게 됩니다.

수도사는 대체로 도시가 아닌 지방에서 수행했기에 농촌에서 큰 영향력을 가집니다. 자신들과는 다른 모습이기에 추앙하며 기적의 능력을 가졌다고 믿게 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수도사에게 삶의 지침을 구합니다. 수도사들은 밖에서도 구분되도록 검은 의복을 착용합니다. 8세기까지 수도원들은 재정을 위해 성자의 유물이나 성화를 보러 오는 신도들의 헌금으로 운영됩니다. 10세기부터 수도사 생활의 절정을 맞이합니다. 성상은 수도사들의 공유지가 되고 동방교회 영성의 지고한 자리를 차지합니다. 그리스의 아토스산이 수도원의 대표지가 됩니다.

성소피아성당벽화-성모자와 요하네스2세 그리고 이레네여왕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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