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망이 엄습해 올 때
이성훈 목사(임마누엘교회) |
더 이상 아무도 나를 거들떠보지 않을 것 같은 실패와 좌절감에 빠져서 지내는 이들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설익은 운명론에 빠져서 깊은 우울감 내지는 우울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어느 성도가 자신의 주변 상황을 비관적으로 생각하며 극단적인 선택을 생각하였습니다. 경악스러운 사실은 그분은 창세기 6장 5절에서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셨음을 한탄하시고 마음에 근심하셨다는 말씀을 근거로 하나님이 자신을 보며 그런 생각을 하고 계신다고 믿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잘못 이해하고 해석한 것에서 비롯된 생각입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종종 인간이 가진 지성과 이성으로 이해하기 쉽도록 표현하셨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창세기의 말씀도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것을 실제로 후회하신 것이 아니라 그만큼 인간의 죄악에 대해 너무도 안타깝고 애통하게 여기신다는 의미입니다. 엄마들이 종종 “내가 너를 낳고 미역국을 마셨다니...”라는 말의 진의는 사랑하는 자식이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는 것이 너무 안타까워서 하는 말일 것입니다. 즉 노아 홍수로 전 인류가 죄악이 극심할 때 하나님은 인간이 짓는 죄악을 보시며 너무나 안타깝게 생각하셨습니다. 만일 정말 후회하셨다면 하나님이 노아를 통해 경고를 주시지도 않고, 노아 가족을 살려둘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참 사랑하십니다. 그 분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으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우리가 지은 죄의 댓가로 넘기셨을까요? 예수님께서 부활 후 40일간 이 땅에 계셨습니다. 한정된 시간에 그 분이 하신 일은 제자들, 개인, 대중들을 만나셨습니다. 한결같이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일은 그들을 격려하시고 용기를 주는 일이었습니다.
요한은 매우 신중한 사람이었습니다. 물론 다른 성경도 마찬가지이지만 요한은 그 언어가 무척이나 세련되고 아름다운 용어를 선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말씀을 기록할 때도 매우 신중하게 단어를 선택하였습니다. 그 한 예로 예수님께서 제자들은 만나셨던 장소가 ‘디베랴 바닷가’라고 명시하였습니다. 요한이 장소를 기록했던 이유는 단순히 독자들에게 장소의 정보를 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현재 “물고기 잡으러 가겠다”고 하였을 때에도 그의 심리를 꿰뚫어 알고 계셨습니다. 그는 자신을 실패자로 여기고 실망하고 실족하여 있었음을 예수님은 너무나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 베드로를 만나기 위한 장소로 ‘디베랴 바닷가’를 택하셨던 이유도 이 장소는 베드로가 물고기를 잡다가 사람을 낚는 전도자의 삶을 살겠다고 결심였는데, 요한은 이 장소를 놓치지 않고 기록함으로써 예수님께서 바로 그 현장에 오신 이유를 암시합니다.
육지에 숯불이 있었다는 기록도 가야바의 법정에서 예수께서 심문받을 때 종과 하속들이 숯불을 피우고 있는 현장을 떠올리기 위함이었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며 세 번 물으신 것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것을 연상케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반응으로 베드로가 세 번씩이나 “내가 주를 사랑합니다”라고 하게 함으로써 베드로의 거듭된 실패와 절망의 연쇄고리를 끊으시고 새로운 삶의 회복을 하게 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이사야 49장 15절에서 비록 육신의 어머니가 자신의 젖 먹는 자식을 잊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절대 잊지 않으실 것이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러분 실패하셨습니까? 두려워하거나 실망하거나 절망하지 마십시오. 천지창조를 작곡한 하이든은 800번이나 자신의 작품을 뜯어서 손질했다고 합니다. 레오나르드 다빈치는 ‘최후의 만찬’을 남겼는데 8년간 2,000번의 스케치를 했다고 합니다. 호남의 한 조그만한 교회 목사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모아서 평생을 목회를 했는데 사람들이 실패한 목회자로 손가락질을 한 것이 평생 아픔으로 남는다고 했습니다. 그 아이들 가운데 12명이 목회자가 되었고, 한국과 미국에서 하나님의 엄청난 사역들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입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분입니다. 그 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실패를 툭툭 털어내고 일어나 그분을 기대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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