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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190)

기사승인 [624호] 2024.10.10  12: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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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토록 사소한 것들

위 영(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이즈음 교회 집사님의 부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집사님의 아들, 교회 청년인데 자폐 스펙트럼을 지닌 장애우. 이름하여 장애인 활동 지원사. 아주 어릴 때부터 봐와서 거의 아들처럼 여겨지는 친구다. 나는 그를 ‘自路’라고 혼자 부른다. 오직 자신의 길을 성실하게 가는 사람이란 뜻, 자로를 직장에 데려다주고 데려오는 일이다. 직장 일이 끝나면 함께 복지관에 머무른다. 복지관의 북 카페가 좋다. 속삭임이나 커피 음료수도 허용되는 도서관을 겸한 카페다. 자로는 딸기 요구르트 나는 라떼를 들고 자주 북카페를 간다. 그림책을 골라 주고 읽어주기도 하며 페이지 넘겨봐, 읽어봐, 작은 소리로 말하면 크게 녜 대답해도 괜찮은 곳. 나도 서가에서 책을 골라 함께 앉아 시간을 보낸다.

가끔은 사람처럼 책이 다가오고 그 책이 상큼하게 여겨질 때가 있다. 서가에서 클레어 키건의 ‘이토록 사소한 것들’이 그랬다. 클레어 키건이라...어디서 들은 이름인데....가만, 지난번 북 클럽에서 누군가가 말한 이름이야, 제목이 무척 신선하지 않은가, 힘을 뺀 작은 제목, 예전에는 벽돌 책 공략도 쉬웠는데 이제는 좀 다르다. 다행히 책의 두께도 아주 얇았다. 두 시간여 아주 집중해서 읽었다. 집중은 내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책의 힘이다. 문장은 섬세하고 서사는 자연스럽다. 속 깊은 은유가 포진해 있어 헐렁하게 읽을 책은 아니다.

주인공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 펄롱, 석탄장사를 해서 딸 다섯을 키우며 사는 보통의 사람이다. 그에게 사소한 일 하나가 다가온다. 수녀원으로 석탄배달을 하러 갔을 때 만난 어린 소녀가 그에게 강가로 데려다 달라며 그곳에서 죽고 싶다고 말한다. 펄롱은 아내 아일린과 대화한다. 만약에 그 아이가 우리 딸이라면, 아일린은 말한다. 걔들은 우리 딸이 아니야. 아닌 게 얼마나 다행이야.

사실 펄롱은 사생아다. 미스 윌슨의 집에서 일하던 미혼모가 펄롱의 엄마이다. 개신교인 미스 월슨은 미혼모를 자신의 집에서 계속 일하게 하며 태어난 펄롱을 자신의 집에서 자라게 한다. 펄롱의 엄마와 같은 집에서 일하는 네드는 구교도이다. 그들은 종교가 다르면서도 평화롭게 공존한다. 우연히 알게 된 펄롱의 친아버지가 네드였다. 펄롱은 네드의 마음을 느낀다. 아버지라고 나서지 않는, 그 뒤에 숨어있는 사랑의 모습을, 강물은 자신의 길을 잘 안다는 것을 부러워하며 펄롱은 강물을 오래 바라본다.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아일린처럼 그리고 대다수 사람처럼 펄롱은 처음에는 외면했으나 결국 성탄절 날 맨발의 소녀 세라를 구출해낸다. 막강한 권력을 가진 수녀원, 편안했던 그의 삶에 다가올 폭풍같은 미래를 엄청 두려워하면서도 그는 그 일을 감행한다.

‘막달레나 세탁소’는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했던 시설로, 당시 ‘성 윤리에 어긋난 짓을 저지른’ 여성들을 교화시키고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설립된 곳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죄 없는 소녀들과 여자들이 그곳에 감금된 채 폭행과 성폭력, 정서적 학대 속에서 노역에 시달렸고 그들의 아기들 또한 방치되거나 죽임을 당했다고 한다. 무려 70여 년간 자행되어온 잔혹한 인권 유린의 시설,

’이토록 사소한 것들‘의 막달레나 세탁소는 아일랜드 이야기지만 그곳에 머물지 않고 내 주변까지 흘러온다. 지금도 어딘가 음지, 우리 곁에서 그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다. 나라면 어떨까? 솔직해보자. 나는 아일린에 속해 있는 사람이다. 예수님 사랑을 받고 살며 그 사랑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나는 펄롱처럼 행할 수 있을까? 과연 사랑을 향하여 나갈 수 있을까?

클레어 키건은 자신의 작품이 “우리 가운데 살아남을 것은 사랑이다.”라는 영국 시인 필립 라킨의 말에 응답하는 책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사람의 품격이 생성되는 지점을 바라보게 하는 글. 해 저물 무렵 환하게 켜지는 등롱을 바라보는 것 같은...

마음이 따뜻해져 같이 있는 젊은 친구 자로를 새삼스럽게 바라보게 되던 시간.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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