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만난 추명순 전도사 : 말도 출신과 도서지역 목회자의 글
서종표 목사(군산중동교회) |
이덕성 목사(전 말도교회 시무)의 글
원색적인 성결복음의 전도자
그것은 또한 도시 사람들의 시선과 철저히 외면되어 사는 작은 섬 말도에 내리신 주님의 은총이었습니다. 추 전도사님은 언제 보아도 삶 자체가 주님이시고 앉으나 서나 주님과 영혼 생각뿐이셨습니다. 주님이 보시기에 참 어여쁘게 여기실 수밖에 없으신 분입니다. 사람들은 몰라주지만 마치 바다 깊이 감춰져 있는 진주같이 우리 성결교회의 보배 중에도 보배이십니다. 생전에 사람이 누리는 당연한 즐거움과도 절연하고 사신 추 전도사님은 사람들의 갈채나 위로하고도 무관하게 사시다가 순결한 백합처럼 주님의 향기를 남기시고 홀연히 가셨습니다. 그분은 결코 원치 않으셨지만 응당 우리 만큼은 마땅히 귀히 여기고 모셔야 될 분이었습니다.
그러나 중동교회 김용은 목사님과 고군산군도를 거쳐간 교역자들, 그리고 그 외 그분을 아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분을 알 뿐입니다. 이점이 예전에도 참 아쉬웠습니다. 지금까지도 많이미안합니다. 하지만 땅에서의 그 많은 희생과 수고를 아시는 주님으로부터 땅에서 받지 못한 이 땅의 위로까지 상쇄하고도 남을 영광의 면류관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분을 처음 뵌 것은 서울을 떠나 군산항을 거쳐 도착한 1983년 1월 중순경이었습니다. 섬 구경삼아 한 달 정도 지역 전도를 원하시는 전도사님이 섬에 계신데...섬 구경삼아 한번 가자는 친구 전도사의 말에 군대 전역하고 시간이 있기에 순순히 여행처럼 온 섬이 말도였습니다. 그곳에 백발이 성성하신 노 여전도사님이 계셨습니다. 그리고 기도하자 하시며 기도를 마치자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섬에 들어와서 사역하지 금년이 24년째이고 은퇴 시기가 한참 지난 76세가 되었는데 후임자가 없어서 은퇴하지 못하고 있는 중입니다. 여러 해 죽어라 사역했고, 지금은 울면서 후임을 보내주시기를 기도하는 중이거든요. 섬사람들의 영혼이 불쌍합니다. 한 달만이라도 같이 전도 사역해 주실 수 없나요?” 후임을 청빙할 여건이 되지 못하기에 차마 교회를 맡아 달라는 말씀을 못하시고 하신 말씀이었습니다.
“전도사님, 제가 은퇴시켜 드리겠습니다.” 저도 모르게 이렇게 불쑥 말씀드렸습니다. 젊은 교역자가 할 당연한 도리로 여겨졌습니다. 이 한마디로 저는, 지금까지 꿈도 꾸지 못했고, 제주도 외에는 가본 적도 없었던 섬 목회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추 전도사님과 만남의 복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기도의 사람
추 전도사님은 저와 함께 계시는 동안 새벽기도회 후 계속해서 제게 아침을 지어 주시기까지 기도하셨습니다. 겨울철 불씨 하나 없는 예배당을 불붙는 기도로 데워 놓으셨습니다. 추 전도사님에게는 예배당 외에 또 하나의 전용 기도처가 있습니다. 고군산의 섬마다 기도처를 정하고 교회가 세워지기를 기도하셨던 추 전도사님의 말도에서의 기도처는 교회에서 10여 분 정도 걸리는 작은 언덕 너머에 있습니다. 그곳은 바다가 눈앞에 탁 트인 곳입니다. 큰 바위 위에 드리워진 두 사람 정도 들어가 앉아 기도하기 적당한 동굴 모양의 자리입니다. 낮에는 보통 이곳에 나와서 기도하셨습니다. 저와 동반해서 갔던 어느 날에 기도 자리에 대한 사연을 얘기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기도할 때 햇볕이 너무 뜨거워서 “하나님, 햇볕을 조금 가릴 수 있는 기도 자리를 주세요”라고 기도했더니 지금 이 자리를 발견케 해주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자리를 맞춤으로 주셨다고 하시며 당신이 떠나도 이 자리에서 기도하며 힘을 얻으라는 당부를 하셨습니다. 이 작은 기도처는 제게도 햇볕 뿐 아니라 비도 피할 수 있는 고마운 장소였고 언제나 추 전도사님을 추억할 수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전도사님은 늘 기도하시면서 “성령님, 그렇습니까? 아멘!”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기도의 사람이었던 전도사님에게, 기도라는 것은 주님과 연인으로 나누는 행복한 교제였습니다. 그러기에 기도를 마치신 전도사님의 얼굴은 언제나 환하고 행복에 찬 얼굴이었습니다. 화장기 없는 얼굴임에도 광채가 났습니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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