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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어로 읽는 구약성경 메시지 <20>

기사승인 [623호] 2024.10.03  08:0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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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내 믿음은 그대로 일까요

이성훈 목사(임마누엘교회)

언제인가 소화가 되지 않아 병원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께서 어떤 음식을 먹었느냐고 물어 보시더니 무엇을 먹어야 저의 체질에 맞는가를 구분하여 말씀해 주셨습니다. 건강 검진을 할 때 문진표에 술과 담배를 하느냐고 묻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먹는 것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는 종종 교회에 나가서 열심히 기도도 하고 예배도 드리는데 왜 내 믿음이 성장하지 않고 그대로인가 하며 고민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합니다. 이는 마치 식당에 가서 메뉴판만 보고 메뉴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고 해서 배가 부른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배가 고픈 사람은 메뉴판을 보고 음식을 골라서 먹어야만 합니다. 그래야 허기가 채워집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일컬어 ‘생명의 떡’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떡을 떼어주고 포도주를 나누며 이것이 내 ‘몸’이요 ‘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영적 허기가 채워지기 위해서는 영적 양식이 되시는 ‘예수님’을 먹어야 합니다. 그래야 믿음의 허기가 채워집니다. 예수님을 먹는다고 표현하니까 조금은 이상하게 들립릴지 모르겠으나 우선은 ‘먹는다’고 표현을 하겠습니다. 예수님을 먹어보지 못하고, 그저 예수님을 맛보는 것으로 예수님을 먹었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논문을 쓰고 기독교에 대한 연구를 한다고 해서 내 믿음이 나아질 것이라고 믿는다면 큰 착각입니다. 설교는 메뉴입니다. 메뉴판을 보고 음식을 골라서 주문하여 먹어야 하는 것처럼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먹고 경험해야 합니다. 이는 단지 우리가 교회에 다니며 종교활동을 한다고 해서 믿음이 자라는 것은 아닌 이유입니다. 반드시 예수님을 경험해야 하고 그의 음성을 듣고 믿음의 발걸음을 시작해야 믿음은 시작합니다.

만일 아브라함이 ‘지시할 땅’으로 가야 한다는 음성을 듣기는 들었어도 그의 발걸음을 옮기지 않았다면 그는 믿음의 조상이 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저는 냄새에 무척 민감합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나쁜 냄새를 잘 견뎌하지 못합니다. 눈을 감고 사람이 지나가면 대충 이 사람이 중동사람인지, 아프리카 사람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각 민족에 따라서 냄새가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 민족의 특유의 음식이 그 사람의 체취를 결정하기 때문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은 독립운동 당시 외국인을 만나기 전 3일 동안은 김치를 먹지 않았다고 합니다. 무엇을 먹느냐 하는 것은 그 만큼 중요합니다. 육체도 그렇지만 영적인 것도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상태가 결정됩니다. 예수님을 경험하였다면 예수님의 냄새가 나기 마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풍겨야 합니다. 식물이 물을 먹고 양분을 빨아들이면 당연히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의 이름은 (갈 5:22-23)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입니다.

저의 자녀가 경험했던 어느 젠틀맨의 이야기입니다. 저의 자녀가 언젠가 식사 자리를 중년의 신사와 같이 한 적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 때 웨이터가 서빙을 하면서 실수를 하였는데, 웨이터가 실수로 음식물이 튀어 신사의 양복에 소스가 묻은 모양입니다. 그 순간 그 신사를 쳐다 보았는데 그는 화를 내기 보다 웃으면서 그럴 수 있다고 하며 오히려 웨이터가 무안하지 않도록 배려하는 모습을 보았다고 합니다. 화냄이 없이 자신의 옷은 세탁하면 된다고 하는 말에 저의 자녀가 큰 감동을 받았다고 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고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먹으면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기 마련입니다. 김치를 먹으면 김치 냄새가 나고 카레를 먹으면 카레 냄새를 풍기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을 먹었는데도 아무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을 경험할 때 그 때서야 비로서 믿음은 자라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다음호에 계속>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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