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러시아 작가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백치’
도스토예프스키 |
11월 말 유달리 포근한 아침 9시경 페테르부르크에서 바르샤바 구간 기차에서 두 명의 탑승객이 마주 보고 앉아 있다. 두 사람 모두 젊고 짐이 없는 가벼운 옷차림에 한 사람은 두툼하게 입었지만, 반대편에 앉은 남자는 딱 봐도 11월 러시아 밤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상태였다.
러시아의 11월은 한국의 기후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춥다. 유달리 포근한 아침이라도 말이다. 그는 스위스 혹은 북이탈리아와 같은 먼 외국에 나가는 여행객이 즐겨 입는 스타일의 통이 넓고 소매가 없는 큰 후드가 달린 코트를 입고 있었다. 두 사람은 서로 통성명하며 자연스레 자신의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한다. 26세 청년인데 병색이 느껴지는 한 사람은 ‘레프 니콜라예비치 미슈킨 공작’이고, 검은 머리에 다부진 체격의 청년은 ‘파르푠 세모노비치 로고진’이다. 이 두 주인공의 만남이 이렇게 시작된다.
이 소설에서 도스토예프스키가 묘사하고 싶은 인물은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인간’이다. 스스로 자신을 백치라고 소개한 미슈킨 공작은 도스토예프스키와 겹치는 부분이 많다. 간질병을 앓고 있는 병약함과 한스 홀바인의 그림을 보고 감동하는 모습, 사형선고를 받아 총살 직전까지 갔다가 사면되었던 사형당할 뻔했던 아찔한 경험담을 미슈킨 공작의 입을 통해 생생히 들려준다. “사형수가 되어 목숨이 붙어 있는 남은 5분간이 한없이 긴 시간인 것처럼 여겨지더라는 것이다. 동료들과 작별하는데 2분, 이 세상을 떠나기에 앞서 자기 자신의 일을 생각하는데 2분, 그리고 나머지 1분을 마지막으로 주위의 광경을 둘러보는데 할애했다는 것이다. 형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교회가 있었는데 그 금빛 지붕 꼭대기가 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그는 그 반사되는 광선을 바라보며 새로운 자연이라고 말했다. 그 순간에도 쉴 새 없이 떠오르는 생각이 내가 죽지 않는다면 어떨까? 그것은 무한한 시간이 내 것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1분 1초도 헛되이 소비하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의 구상이 스위스 제네바에서 시작이 되었듯이 미슈킨 공작의 여정도 스위스로부터 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시작한다. 그렇다고 도스토예프스키가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인간이라고 인정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미슈킨 공작은 도스토예프스키가 그리고 싶어 했던 ‘절대적으로 아름다운 그리스도’를 형상화한 인물이다. 로고진은 기차에서 그를 처음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한다. “공작, 당신은 천상 유로지비(바보성자)인데, 신은 당신 같은 사람을 사랑하죠”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온 미슈킨은 스위스에서의 추억을 기억하며 아이들과 있을 때 가장 행복했다던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아이들을 사랑한 그리스도의 모습이 겹쳐 보인다. 그는 백치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여기서 백치란 축복받은 자, 다른 사람과 구별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나스타샤 필리포브나’ 귀족 가문의 아름다운 여성이다. 어릴적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백만장자 토츠키의 후원으로 겉으로는 부족함이 없이 성장한 듯 보이지만, 토츠키의 정부로 살며 결국 토츠키에게도 버림받게 될 처지에 놓인 상처받은 영혼이다. 그녀는 운명에 시달리면서도 마음 깊숙한 곳에는 순결한 영혼을 지녔다. 저자는 “환상적이고 악마적인 아름다움”이라고 표현했다.
‘미슈킨공작’, ‘로고진’, ‘나스타샤’ 한 여자를 사랑하는 두 남자의 삼각관계처럼 이야기가 전개되는 듯하다가 예판친 장군의 막내딸 ‘아글라야’가 등장하면서 사각 관계가 되어버린다. 그녀는 자기가 속해있는 귀족사회에 비판적이며, 금지되고 있는 정치적 잡지도 읽고 있다. 티 없이 아름다운 처녀이지만, 나스타샤 앞에 서면 그런 아글라야도 빛을 잃고 마는 것은 왜일까?
미슈킨, 로고진, 나스타샤, 아글라야 이 네 사람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그려지는 통속적인 로맨스이다. 토츠키는 예판친 장군의 큰딸 알렉산드라에게 청혼하려고 나스타샤에게 지참금을 주고 ‘가브릴라 이볼긴’과 결혼하라고 회유한다. 이 사실을 알고 분노한 그녀는 로고진과 함께 떠나서 방탕한 생활을 한다. 그렇게 미슈킨과 로고진 사이를 오가며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그녀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다. 결혼식을 앞두고 두 번이나 도망을 친다. 한번은 로고진과의 결혼식이고, 한번은 미슈킨과의 결혼식이다. 저자는 나스타샤의 심리 상태를 이렇게 묘사한다. “그는 오랫동안 그녀가 그렇게 나오는 까닭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결국 모욕당한 변덕스러운 여자의 거드름이 극단적인 흥분 상태에 도달하여 영원히 자기의 지위를 굳히고 보통 사람이 얻지 못하는 영화를 누리기보다는 오히려 단 한마디의 거절로 자기의 모멸을 내뱉는 것에 더 큰 쾌감을 느끼기에 이르렀다는 것이 유일하게 가능한 설명인 것처럼 생각되었다.”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그녀의 가슴 속에는 심장 대신에 돌덩이가 들어앉아 있어서 감정은 시들대로 시들어 영원히 말라 죽어버리기도 한 것 같았다.”
소설의 주된 사건은 통속적인 로맨스 스캔들이다. 절세미인 ‘나스타샤’를 둘러싼 사건들은 내연 관계, 정략결혼, 연속된 도주, 소문의 소문, 끝으로 결국은 살인이라는 비극으로 막을 내린다. ‘로고진’이 ‘나스타샤’를 완전하게 소유하지 못한 분노로 그녀를 죽인다.
살인 후 자신의 불안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로고진’을 ‘미슈킨’은 자신이 아플 때 아기처럼 돌보아주던 주치의처럼 로고진을 돌보아준다. 살인자인데도 말이다. 그리스도를 형상화한 미슈킨은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어느 누구도 구원하지 못하지만 그와 만난 사람들에게 선량하게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미슈킨, 로고진, 나스타샤, 아글라야 이 네 사람의 주인공을 중심으로 통속적인 로맨스를 그리고 있는 이 작품은 솔직히 이런 진부한 스토리로 대문호의 대표작이 될 수밖에 없음은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가 상상을 초월하게 매우 세심하기 때문이다. 돈다발을 벽난로에 던져버리지를 않나, 결혼식을 앞둔 신부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하얀 면사포를 휘날리며 예식장을 도망친다. 결국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채 칼에 찔려 죽은 상태로 침대에 누워 있는데, 그 옆에서 한 여자를 사랑한 두 남자가 함께 서로를 위로하며 밤을 새운다. 마치 막장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
‘백치’는 도스토예프스키가 두 번째 부인 안나와 결혼하자마자 해외로 떠나서 쓴 작품이다. 집필 기간 동안 그는 안나와의 사이에서 딸 소냐를 낳았으나 소냐는 3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다. 딸을 잃은 슬픔을 잊기 위해 다른 도시들을 전전하다가 피렌체에서 ‘백치’의 집필을 마쳤다. ‘죄와 벌’을 발표하고 ‘도박꾼’을 속기사인 안나의 도움으로 완성한 후 경제적 어려움으로 쓴 작품이라 스토리가 더 진부한 걸까?
등장인물 중 죽음을 두어 달 앞둔 폐병 환자 ‘이폴리트’의 해명을 들어보자. “나는 이러한 삶을 원하지 않는다. 만일 내가 태어나지 않을 권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처럼 사람을 희롱하는 조건 밑에서는 존재를 거부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미 죽을 날이 며칠 안 남은 인간이지만 아직도 죽을 권리만은 보유하고 있다. 위대하지 않은 권리다. 자살, 가능한 사업, 반항이란 때로는 적지 않은 사업 일 수가 있는 것이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미쳐버린 신경질적인 사람은 두려움이 없어지고 어떤 추태라도 능히 부릴 수 있는 것이다.” “병 때문에 지칠 대로 지친 18세 청년은 나뭇가지에 매달려 떨고 있는 나뭇잎처럼 약하게 보였다. ‘해가 떴다!’ 나무 꼭대기에 환하게 반짝이는 해를 발견하고, 마치 기적이라도 일어난 듯이 공작에게 가리켜 보이며 그는 외쳤다. 이폴리트는 해를 더 이상 볼 수 없을 것으로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우리들에게 당연한 모든 것들이 어떤 이들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도스토예프스키 일생도 어느 누구의 삶보다 드라마틱했기에 그의 작품 속 인물들도 그렇게 묘사한 걸까? ‘죄와 벌’의 라스콜리니코프와 상반된 성격의 미슈킨을 정상적인 사람으로 묘사하면 이 세상에서는 만나기 불가능한 성격이라는 생각으로 백치라는 설정을 한 것은 아닐까? 저자가 창조한 백치는 바보 백치가 아니라 어린아이의 마음을 가진 사람, 솔직하고 온유한 사람, 현실 속에서 찾을 수 없는 이상적인 인물로 만들어 냈다. 좀 당황스러운 사건은 나스타샤와 아글라야 사이에서 머뭇거리다가 진심으로 두 여자 모두를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더구나 자기가 사랑하던 여자를 죽인 자를 위로 할 수 있을까?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사건에 휘말리고 병세가 악화된 미슈킨 공작은 다시 스위스로 돌아가 슈나이더 교수의 치료를 받지만 증세는 더욱 호전되지 않는다.
인간 본성의 어둠과 현실의 비극을 묘사한 작품인 백치를 읽으며 주인공의 선택에 아쉬운 마음을 가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왜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가이다. 한번 하기도 어려운 결혼식을 두 번이나 하고, 두 번 다 도망을 치고 결국 죽임을 당하는 나스타샤와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한 로고진과 미슈킨도 안쓰러웠다. 더구나 아글라야의 어리석음이 본인을 얼마나 불행하게 만들었는지 정작 본인은 알고 있을까?
우리의 삶은 수많은 선택의 연속이다. 그 선택은 환경에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 상황에서도 지혜로운 선택을 할 수 있었음은 말씀으로 조명받았기 때문이다. 나의 결혼생활 31년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수많은 어려운 순간들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위기를 넘기고 지금의 평안함을 누릴 수 있음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한다. 작품을 읽는 모든 독자들도 같은 안타까움으로 교훈을 삼지 않을까 상상해 본다.
도스토예프스키, 『백치』 박형규 역, 금성출판사, 1990.
프리랜서 작가 김현희 chd623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