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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42)

기사승인 [620호] 2024.08.16  22: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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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리의 분량

이재정 목사(복된교회)

성공을 말하는 사람의 경험담에는 적당한 과장이 덧씌워지기 마련입니다. 결국 성공의 요인을 자신의 탁월함에 귀착시키려는 거지요. 남달리 큰 뜻을 갖고, 특별한 아이디어로,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 산 것처럼요. 그러나 대부분은 평범합니다. 다른 점이 하나 있다면 누구나 아는 일상적인 진리들을 삶으로 실천했다는 성실성 정도일 겁니다. 또 다른 성공의 요소를 꼽으라면 관용구처럼 사용되는 말,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그 하나님의 은혜가 와 닿는 길과 평상의 진리를 실천하며 사는 통로가 같습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주변에 더불어 사는 사람들이 내 삶의 성공 여부를 결정합니다. 가장 가까운 배우자와 가정이 삶의 질에 가장 큰 영향을 주지요. 가족들이 행복하다면 일단 실패를 벗어납니다. 성도들은 교회 생활을 통해 성공 인생을 가늠합니다. 목회자로 한평생 사는 경우는 교회의 행복까지를 보장해야 합니다. 내게 주신 사람들과 조화롭게 살아 내는 것이 하나님이 은혜를 내려 주시는 통로이며 바로 그 사람이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 사랑 실천의 통로 됩니다.

나는 서른에도 채 못 미치는 스물아홉에 스물네 살 각시랑 자그만 시골교회서 목회를 시작했어요. 영적인 지도력이야 말할 것도 없고, 아직 철도 덜 든 때였으니 어려움이야 왜 없겠습니까 만은 따듯한 분들과 사는 목회였습니다. 마냥 봄 햇살 같은 그 시골교회는 지금 생각해도 마음이 뜨듯해집니다. “주의 종”이라는 이름을 씌워, 자식뻘 나이로 새파랗게 젊은 전도사 부부를 다정하게 따라 주셨거든요. 새로 개척교회를 열었을 때도 좋은 사람들을 붙여 주셨습니다. 처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지만 30대 중반인 내 또래가 많았지요. 지지고 볶아대던 지하실 교회의 기억이 추억 속의 무지개처럼 영롱합니다. 10년 만에 그 행복한 공동체를 떠날 때, 그들은 정든 나를 보내는 섭섭한 마음 방출하느라 “배신자 목사님”이라는 이름을 붙여 눈 흘겨 뜨면서도 정겹게 불러 주었습니다. 자기들과 평생 친구로 살 줄 알았던 기대가 배신당했답니다. 그 도탑던 정도 그립습니다.

시방도 여전히 사랑 많은 분들과 더불어 살고 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일에 마음고생이야 늘 있는 법인 걸 충분히 감안하면서도 제게 교회는 늘 따듯하고 다정한 곳입니다. 하나님이 우호적인 성도님들과 합리적인 장로님들을 붙여 주셨습니다. 그 장로님들은 심지어 노련하기까지 합니다. 함께 동역하시는 목사님, 전도사님들도 면면이 존경스러운 분들입니다. 저마다 복음 진리를 확증하고 헌신한 흔적이 역력합니다. 젊지만 경박함 없이 성실하고 나보다 더 진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나이 몇 살 더 먹은 내게 뭐든지 물어가며 사역하는 분들이니 덜떨어진 내 대답 내놓기가 그저 황송할 따름입니다. 게다가 현역에서 은퇴하신 목사님들이 오셔서 같이 교회를 섬겨 주십니다. 백전노장 원로 목사님들은 존재만으로도 든든합니다. 그래서 늘 하는 고백으로 “나는 교회가 좋습니다.”

지난 주간, 한바탕 돌아오며 만난 선교지의 “우리 선교사님들”도 어디 하나 빠짐없이 사명을 감당하고 계십니다. 그 현장에 서니 은혜롭기 그지없습니다. 허술한 사역을 염탐하듯 찾아도 없을 만큼 차고 넘치는 사역자들이니 마음이 행복합니다. 그분들을 향한 중보기도와 선교비 지원이 하나도 아깝지 않습니다. 눈치 빠른 내가 허점이나 불성실함을 보았더라면 불편도 적당히 섞였을 터입니다. 그런데 정말 눈 씻고 찾아도 흠이 없는 분들입니다.

내게 주신 사람들을 통해 감사가 차고 넘칩니다. 어디 하나 모자람 없는 사람들로 내 주변을 그득히 채워 주시는 은혜가 깊어서 두런거리고 있습니다.

주님은 하늘에 닿는 긴 막대기 하나를 보여주십니다. 진리의 막대기를 보여주십니다. 내가 차지한 길이가 제일 짧습니다. 일찍이 그런 자신을 깨닫고는 “하나님도 참 욕보십니다. 하필 저 같은 걸 목사로 만들어 놓으시고 얼마나 마음 쓸 일이 많으셔요?” 그런 기도를 드린 적도 있습니다. 하늘에 닿도록 더 긴 길이가 필요합니다. 한 뼘짜리 나를 목사로 만들어 놓으시고 모자라는 길이를 채우시느라 그렇게 길이가 긴 사람들을 꼼꼼하게 붙여 주신 겁니다. 그러니 말짱 “하나님의 은혜”라고 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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