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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궁 목사의 이야기 교회사(20)

기사승인 [620호] 2024.08.15  09: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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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속되는 선교

박용궁 목사(D.Min., 많은샘교회 담임, 미국 루터신대(LTSP) 졸업)

이제 로마가 아닌 이방인의 지역이 된 곳에 선교의 전설들이 시작됩니다. 부족 간의 전쟁을 통한 개종의 강요와 함께 미지의 이민족 세계를 향한 선교들이 펼쳐집니다. 690년 이래로 프랑크족들이 현재 네덜란드 지역인 프리스랜드의 일부 지역을 굴복시킨 다음 아일랜드 수도원에서 훈련받은 윌리브로드(Willibrord) 수도사가 12명의 동료들과 선교에 헌신합니다. 그는 신변의 위협을 무릅쓰고 우상을 찍어버리며 선교합니다. 그러나 프랑크족이 715년 프리스인들과의 전투에서 패배함으로 선교는 난관에 부딪힙니다. 프리스인들은 교회를 불사르고, 신부들을 몰아냅니다. 이후 카를 마르텔(Charles Martel)이 등장하며 상황이 호전됩니다. 윌리브로드는 이제 보니파티우스(Bonifatius, 672/3~754)라는 젊은 영국인 선교사의 도움을 받습니다.

보니파티우스는 본명이 윈프리드(Wynfrith)로 서로마의 대표적 선교사입니다. 앵글로 색슨의 수도사 윈프리드는 716년 잠시 프리스랜드로 갔다 돌아갑니다. 그리고 718년 로마를 경유하면서 교황 그레고리 2세로부터 게르만족의 선교를 위임받고 그 날 5월 15일의 성자인 보니파티우스의 이름으로 부르게 됩니다. 그리고 719년부터 722년까지 윌리브로드와 3년간 선교사역에 협력합니다. 또한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 이교도들을 선교하기 위하여 튜톤 족의 언어와 문화, 생활 풍습 등을 공부하기 시작하고 독일의 헤센과 튀링겐 지방으로 갑니다. 헤센에서 참나무 앞에서 이방신(보단, 도나르, 오덴, 또는 토르)을 섬기는 것을 보고 보니파티우스는 과감히 참나무를 절단합니다. 모두가 그를 보고 신의 노여움을 샀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에게 아무런 저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자 토착민들은 자신들의 신보다 강한 하나님을 참 신으로 믿게 됩니다. 보니파티우스는 그 참나무로 성 베드로 성당을 건축합니다. 이제 곳곳에서 오덴신을 섬기는 나무를 베고 교회가 세워졌다는 이야기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나아가 카를 마르텔로부터 여행증명서를 받아 선교를 확대하며 그레고리 3세 교황(731~741)은 그를 대주교로 임명합니다. 이런 권한을 개인에게 준 적이 없었기에 그는 이 지역에서 교황의 대리자가 됩니다. 그리고 741년 마르텔이 서거했을 때, 교황 자카리아가 그를 교황 사절로 임명하여 프랑크족 교회를 재정비하게 됩니다. 그는 교회회의를 연 일회씩 개최하였고 성직자의 결혼 금지, 문제 주교나 사제의 파면 등을 실행합니다. 754년, 네덜란드 선교 중에 이교도들에게 순교를 당합니다.

그의 선교도 위로부터의 선교방식입니다. 힘에 의한 선교는 단번에 개종을 불러옵니다. 하지만 또 다른 강요는 아닐까요? 그는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영접하겠다면 먼저 세례를 주고 나중에 실제적인 기독교인으로 만들어갑니다. 이러한 방식은 8세기말 샤를마뉴 대제에게서도 나타납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한 후 작센족에게 세례와 죽음에서 양자택일을 하라고 합니다. 수도사 알쿠인(Alcuin)만이 이러한 선교 방식을 보류해 주 것을 왕에게 요구했을 뿐입니다. 결국 작센족은 군사적 위협에 따라 기독교와 전통적인 종교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772년의 전쟁으로 이교 신전을 파괴하고 기독교를 받아 드리게 합니다. 그러나 샤를마뉴가 돌아가자 반란이 일어나고 775년에도 같은 결과가 다시 나타납니다. 776년의 3차 전쟁에서도 같은 동일한 결과가 나타나자 785년 마지막으로 반란 주도자 비두킨트(Widukind)에게 세례를 받게 합니다. 또 칙령을 내려 교회를 약탈하거나 방화하는 자, 수세 거부자, 기독교교인에 대해 음모를 모의하는 자, 이교제사 참여자에 대해 처형하겠다고 엄포를 놓아 정리합니다.

이러한 선교와 개종 과정에서 선교사는 교황 그레고리 1세의 영국 선교사, 아우구스티누스를 제외하면 모두 게르만족입니다. 이는 게르만족들이 자신들의 문화를 기반으로 독자적인 기독교를 발전시키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전쟁을 통한 개종의 강요가 그 첫 번째 모습입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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