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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권하는 사람들 / 전북지방회 독서클럽

기사승인 [614호] 2024.05.23  22: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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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사의 위기’

주기철 목사(석매교회)

제독 철학자로서 그는 고도의 기술이 발전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상에 집중한다. ‘우리의 삶이 왜 불안하고 공허한가?’ 저자는 이 책에서 그 이유가 스토리에 빼앗겼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그래서 우리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연결하는 이야기를 강조하며, “삶은 이야기다”라고 말한다.

어느 신앙 수련회 시간에 리빙스턴을 아는지 물었더니 손드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신학교 채플 시간에 ‘로버트 프로스트를 아는 사람?’하고 물었더니 단 두 사람이 손을 들었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인문학이 강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시대는 오래 묵은 지식이 아닌, ‘주식 시세’ ‘부동산 전망’ 같은 바로 다음에 일어날 최신 정보만이 공감을 얻는다. 느리게 머무르는 시선은 오늘의 독자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다. 정보는 최신성이 중요하기 때문에 갑자기 등장했다가 빠르게 소진된다.

하지만 정보와는 달리 지식은 순간을 넘어서 앞으로 다가올 것과 연결되는 시간적 폭이 있다. 그래서 지식은 이야기로 가득하다. 이야기하는 사람은 정보를 설명하지 않는다. 이야기에는 경이롭고 의미심장한 무언가가 있다.

이야기는 가족을 공동체로 묶어준다. 경험은 한 세대에서 다른 세대로 전승된다는 특징이 있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연결을 의미한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경험을 물려준다. 옛날에 가족들은 대청이나 평상에 둘러앉아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하지만 요즘 엄마들은 아이들에게 ‘시간 없어 할 만만 빨리해!’라며 다그친다. 그러므로 이야기에는 여유가 필요하다. 하지만 가속화된 소통 속에서는 이야기할 시간, 즉 참을성이 없다. 정보만 교화될 뿐이다. 이야기가 단절된 가정은 사막이나 마찬가지다.

AI의 출현으로 거대한 데이터양이 기존의 이론들을 완전히 쓸모없게 만들어 버릴 위기를 맞이하고 있다. 이론은 직접적인 데이터 비교로 대체된다. 빅데이터는 사실상 설명하는 것이 없다. 지능은 계산하고 센다. 하지만 정신은 이야기한다. 프로이트는 환자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정신분석적 서사에 적용해서 특정 행위, 특정 증상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아이 곁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이야기는 심층적 이완을 통해 긴장하고 경직된 부분을 풀어준다. 즉 다시 흐름 속으로 돌려보낸다. 고통은 그러한 이야기의 흐름에 저항하는 둑과 같다. 프로이트도 고통을 개인의 이야기 속에 나타나는 막힘을 드러내는 증상으로 이해했다. 환자는 스스로 자유롭게 이야기할 때 치유된다. 그러므로 이야기 판타지는 치유적이다.

오늘날은 스토리텔링이 넘쳐남에도 이야기하는 분위기가 사라지고 있다. 경제 논리 속에서 의사들에게는 이야기를 경청할 시간도, 인내심도 없다. 효율의 논리는 이야기의 정신과 조화될 수 없다. 심리치료와 정신분석만이 여전히 이야기의 치유력을 상기시키고 있을 뿐이다. 경청에서 중요한 것은 내용이 아니라 이야기하는 사람이 누구인가다. 경청은 상대에게 이야기할 영감을 주고 이야기하는 사람 스스로 자신을 소중하다고 느끼고, 자신의 목소리를 듣고, 심지어 사랑받는다고까지 느끼는 공명의 공간을 연다.

어루만짐 또한 치유력이 있다. 접촉은 이야기하기처럼 친밀함과 근원적 신뢰를 형성한다. 촉각적 이야기로서 접촉은 고통과 질병으로 이끄는 긴장과 막힘을 풀어낸다. 오늘날 우리는 접촉이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 접촉의 빈곤은 우리를 병들게 한다. 접촉은 우리를 자아 안에서 밖으로 꺼내준다.

이야기와는 달리 스토리는 친밀감도, 공감도 불러내지 못한다. 이들은 이야기하지 않고 광고한다. 이것이 바로 서사의 위기다. 더운 여름밤이면 마을 주민들이 나무 아래 모여 이야기한다. 이 마을은 이야기 공동체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 대신에 과도하게 소통한다. 우리는 게시하고, 공유하고 링크를 건다.

이야기는 사회적 응집성을 만든다. 이야기는 의미를 제공하며 공동체를 형성하는 가치를 전달한다. 신화는 의례적으로 만들어진 공동체 이야기다. 공동체 이야기에 충분한 저장소가 준비되어 있지 않은 후기 근대사회는 불안정하다.

최근 스토리텔링이 매우 인기다. 스토리텔링은 특히 마케팅에서 활용된다. 이야기를 도구화하고 상업화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그래서 자기 자체로는 가치 없는 사물을 가치 있는 재화로 변화시킨다. 하지만 스토리셀링으로서의 스토리텔링은 이야기를 드러내는 힘이 없다.

삶은 이야기다. 서사적 동물인 인간은 새로운 삶의 형식들을 서사적으로 실현시킨다는 점에서 동물과 구별된다. 이야기에는 새 시작의 힘이 있다. 스토리셀링으로서의 스토리텔링은 다른 삶의 형식을 그려낼 수 없다. 스토리텔링의 세상에서는 모든 것이 소비로 환원되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에 스토리 중독의 시대 서사의 위기가 있다.

이 책에 따르면 서사는 8가지 특징으로 정리된다. 이야기하다, 자기 존재, 삶의 주체, 과거와 연결, 경험의 축적, 타인에게 공감, 공동체를 이룸, 방향성 등이다. 반면에 스토리는 이 서사와 정반대다. 설명하다, 자기 광고, 상품의 소비자, 과거와 단절, 정보의 나열, 타인과 정보교환, 커뮤니티를 이룸, 방향성 없음 등이다. 서사와 스토리는 이처럼 극명하게 대비된다.

SNS는 궁극적으로 자기 광고를 위해 기능하기 때문에 정보가 가장 중요한 것이고 따라서 이야기가 아닌 설명만이 필요하다. 경험의 축적은 쓸모없는 것이기에 과거와의 단절은 필연적이다. 타자와는 정보교환을 위한 커뮤니티로 묶여만 있으면 그만이다.

우리는 어린 시절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그 이야기는 평생 기억되고 또 우리 자식들에게 전수하기를 원한다. 하지만 신세대 엄마들은 부모의 경험보다는 ‘맘카페’의 정보를 더 신뢰한다. 경험이라는 과거의 유산을 값싸게 여긴 대표적인 사례라고 생각된다.

예수님은 오늘 우리처럼 설교하듯이 말하지 않고 이야기하듯이 말씀하셨다. 나는 나 자신을 생각할 때 이야기 능력이 부족하다. 다만 분석한 사실을 전하려고 힘쓰지 않았나 생각된다. 이야기처럼 설교해야 맛깔이 나지 않을까? 대설교가 이성봉목사님의 천로역정은 수많은 청중에게 감동을 주지 않았던가?

이 책은 평생 수많은 설교를 해온 내가 정보 전달자였는지, 예수님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려주는 설교자였는지 반추하게 한다.

한병철, 『서사의 위기』 다산 초당, 2023.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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