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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서의 시문학 (14)

기사승인 [614호] 2024.05.23  22:3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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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탄식과 구원의 메타포

신영춘 목사(시인, 신학박사, 천광교회 담임)

시문학을 이해할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의 하나가 바로 상반된 논리가 전개될 때다.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표현법이 블록으로 지정 되어있는 경우인데, 이는 서양의 논리체계 속에서 훈련된 현대인에게는 이해 불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시인들은 이를 ‘감동’으로 받아들인다. 동전의 양면 같지만 한 몸체이며, 역설 같은데 어떤 지향점이 있고, 앞의 문장과 뒤의 문장이 다른데 한 주제 아래 어울려 있는 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지만 그것을 수용할 수 있는 인간은 바로 히브리인과 시인들이며, 이는 그들이 성서를 기록하는 데 ‘사용될 만한’ 민족이었다는 뜻이다. 성서 안에는 이런 역설적 언어로 가득 차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연 불가해한 것도 아니다. 물론 헬라적 사고 훈련을 받은 현대인들이 성서 논리 중 가장 귀중한 방식인 블록 로직을 통해 성서 저자의 세계를 이해하려면, 히브리적 사고로의 전환과 이해가 전제되어야만 할 것이다.

본 저자가 관심을 가지고 다루고자 하는 ‘분위기 급반전’이 블록 로직의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다. 이 논리는 상호모순의 관계 같지만 묘하게 결합성과 아치구조를 이루고 있다. 이 패러독스(paradox : 역설)의 언어를 이해하려면 ‘시인’의 안목이 필요하다.

III. 탄식시와 관련된 시편 연구 역사

A. 기독교 이전의 종말론적 해석

오래전부터 시편은 아주 다양한 관점으로 해석 되어왔다. 시편 해석은 초기 유대교 시대까지 소급되고, 고대부터 교회 안에서 사용 되어왔다.

시편 해석으로 가장 일찍 알려진 것은 쿰란 공동체의 것이다. 여기서 발굴된 주석서 가운데 가장 오래 남아 있는 단편이 바로 시편이다. 즉, 제4동굴에서 발견된 시편 37편에 대한 설명이 그것이다. 예언서들의 주석서와 함께 발굴된 이 주석서는 쿰란 에세네파들이 이미 석의의 전통을 갖고 있었으며 시편이 해석할 가치가 있는 본문의 범주에 속해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 해석은 묵시적인 해석과 같은 노선을 따라 진행된다. 즉, 이들은 시편에 포함된 자료를 미래의 예측으로 보았으며 해석자의 당시의 상황과 연관되어 있다고 믿었다. 이 해석자는 자신이 “종말의 때”에 살고 있다고 믿고 있었다. 다시 말해 신약시대 바로 직전에 있던 공동체는 시편을 이해할 때에 종말론적으로 해석하고 수용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B. 초대교회에서 증세까지의 해석

오리게네스의 성서해석방법의 특징은 ‘유비적 해석’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는 성서의 의미에는 삼중적, 즉 육체적(문자적, 역사적) 의미, 심리적(도덕적)의미, 영적(유비적. 신비적) 의미 등이 있다고 보았는데 이 중에 마지막 단계를 이해하는 것이 성서해석의 가장 본질적인 목적이라고 여겼다. 오리게네스나 제롬의 시대에 시편의 해석은 주로 헬라어에 의존했었다. 당시의 유비적 방법을 시편 성서해석에 적용시키면서 주로 ‘기독론적-유형론적’으로 해석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기독론’이란 모든 성서 구절을 기독론과의 관련성, 즉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 성취, 고난과 부활이라는 틀 속에서 이해하려는 시도이다. 그리고 ‘유형론’은 신약의 모든 사건은 이미 구약성서에서 예시되었다는 전제하에 성서를 해석하는 방법으로 신약은 구약에서, 구약은 신약에 상응하는 예표적 사건을 찾아내려는 시도이다. 따라서 시편은 ‘그리스도의 역사적 실제에서 완성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런 유비적 성서해석은 오늘까지도 목회자들에게 다양하게 사용되고 있다.

어거스틴의 ‘시편주석서’가 나오면서 시편에 대한 이해는 좀 더 깊이 있게 다루었다. 그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1) 어거스틴은 시편을 유대인의 경건을 위한 서적만으로 이해하지 않고 그리스도와 그의 몸 된 교회와의 인격적인 관계에서 이해하려고 했다.

2) 어거스틴은 시편 속에 나타난 진정한 의미를 추적해 바울과 복음서의 전통에 충실히 서서 기독론적인 이해를 추구해 나갔음이 분명하다. 즉, 구약과 신약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이므로 이를 바탕으로 신·구약을 이해했다는 말이다. <다음호에 계속>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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