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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목사의 하고 싶은 말(28)

기사승인 [606호] 2024.02.22  09: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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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는 문제

이재정 목사(복된교회)

전쟁 끝난 1950년대, 먹을 것이 절대 부족한 이 땅 사람들은 만나면 ‘진지 잡수셨습니까’라는 말로 서로의 안위를 살폈답니다. 60년대는 넉넉히 먹었는지가 관건이었습니다. 그래서 먹은 양을 가늠하더니 통일벼로 나를 식량 보급이 원활해진 70년대는 먹거리의 질을 따지느라 뭘 먹었는지를 물었고, 도시화, 산업화가 절정에 이른 80년대에 들어서는 누구랑 먹었는지를 물어 그의 사회적 지위를 가늠했지요. 90년대 이후는 건강을 위해 어떻게 먹는지를 관심합니다. 유기농 식품을 선호합니다. 여러 다단계 판매 구조가 시장을 장악하여 저마다 건강에 유익한 정보들을 나누고, 그에 걸맞은 식품들을 거의 무차별적으로 섭취합니다. 대부분 영양 과잉이라 할 만하지요. 예민한 사람들은 ‘건강 염려증’에 붙들려 사사건건 먹거리의 질에 대해 시비합니다. 흙바닥에 앉아서 덜 위생적인 방식으로 먹어대던 때 보다 더 질병에 취약합니다. 

2천년대 들어와서는 굶주린 사람들과 나눠 먹을 궁리로 인류애를 발전하고 있습니다. 나라 살림살이가 세계 평균을 웃돌아 소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니 나눠 먹을 마음이 발로되었습니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정답입니다. 전쟁이나 재난 현장의 안타까움을 전해주는 여러 NGO 단체들이 내미는 구호 요청에 제법 풍성히 반응하는 걸로 압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으로, 인류애게 기댄 이들은 또 그런 가치로 서로 나눠 먹는 일에 힘쓰니 좋습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먹는 건 우선순위니까요. 

최근에는 ‘혼밥족’이 늘어납니다. 높은 비율의 독거 어르신들과 그 반대편에 서 있는 미혼 남녀의 일상이 주로 혼밥족입니다. 내 아이 하나도 혼자 밥 지어 먹고 삽니다. 딱해 보이지만 다행인 것은 그게 일상화되어있고, 나름 그 생활을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입니다. 혼자 밥 해 먹을 수 있는 여러 종류의 상품들이 많이 출시 되어있고, 질적으로 많이 향상되었다는 정보는 다행스럽습니다. 

이 땅 사람들이 다른 관점에서 누구랑 밥 먹었는지를 물어 외로운 사람들을 살피는 게 관건이 되었습니다. 청년들을 향해서는 함께 밥 나눠 먹을 배우자랑 짝 맞추도록 사회적 압박을 가하는 중입니다. 20대의 청년들이 늦지 않게 배우자를 만나 따순 밥 지어 먹는 독립 가구들을 이뤄 살기를 소망합니다. 소박한 바람을 하나 덧붙이자면 예전의 어머니들처럼 쑥덕쑥덕 아기들도 낳으면서 말입니다. 

먹는 문제는 인간의 첫 번째 필요를 채우는 일입니다. 먹을 것을 차지하느라 열심히 일하고 심지어 전쟁도 치러야 했습니다.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말은 상황에 따라서 음식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하게 사용됩니다. 밤의 뒷골목에서 이런 말이 건네졌다면 비아냥일 겁니다. 함께 바쁜 일들을 추슬러내는 동료에게 한 질문이라면 우정어린 마음이 건네지겠지요. 오랜만에 집에 들른 자녀들에게 부모님이 이렇게 물으셨다면 삶의 고달픔에 대한 애처로운 연민이겠고요. 그 질문에 씩씩하게 “그럼요.”라고 대답할 수 있으면 제법 질서 있게 사는 셈이지요. 먹는 문제는 동서고금 삶의 질을 가늠하는 중요한 문제로 변함없습니다. 

설을 쇘습니다. 명절에는 좋은 음식을 만들어 먹습니다. 하나님이 복을 주셔서 양, 질 모두 모자람 없이 먹을거리가 풍성합니다. 양식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대한민국에 사는 풍요로움에 대한 감사를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흔한 먹거리지만 때를 맞춰 밥 먹는 일은 여전히 절실합니다. 게다가 좋은 사람들과 함께 밥상에 앉는 것은 더 행복한 일이지요. 그런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은 주님의 일상에도 녹아있습니다. 제자들과는 물론 비천하다고 소외당하는 사람들과도 종종 식탁을 나누셨습니다. 마침내 로마 병정들에게 잡혀가시기 전날 밤에도 다정한 제자들과 식탁의 교제를 나누셨습니다. 나는 그 다정한 식탁에 함께 앉아 보는 환상을 더러 체험합니다. 주로 성찬 예식을 준비할 때요. 

그 식탁에서 주님은 뜻밖의 양식을 내놓으셨습니다. 당신의 몸을 새로운 양식으로 제공하신 겁니다. 그 양식의 이름은 “생명의 밥”입니다. 떡으로 하지 않고 구태여 ‘밥’이라 말씀드립니다. 매일 먹어야 하는 주식(主食)이라는 뜻으로 그리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사순절 한복판에서 예수님의 살과 피를 양식 삼아 “밥은 먹고 다니느냐”는 질문을 다정한 마음으로 드립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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