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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166)

기사승인 [600호] 2023.11.29  21: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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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을이 저기 저만치 가네

위 영 사모(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사람이 되어가는 일이다. 사람이 되어 가는 것을 살짝 비틀어 보면 여성성이나 남성성을 초월하는 일이지 않을까, 키케로가 말하지 않았던가. 욕망의 사슬에서 벗어난 것을 기쁨으로 알 때 노년은 자유롭게 된다고. 나이 들어서야 겨우 비집고 들어서는 자리 <사람 자리>는 시들어가는 외모와는 벼리 되지만 기실 품위 있고 우아한 시절이다. 번다하게 만들었던 그리고 여전히 지금도 모든 사랑의 대명사로 간주하는 남녀 간의 사랑이 얼마나 작은 분야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자리이기도 하다.

오란벗이라는(오란비-장맛비에서 따온) 카톡방이 있다. 미국과 캐나다에서도 함께 하는 국제적(?)인 카톡방인데 어젯밤 사랑에 대한 테마가 올라왔다. 그중 한 분이 이제 남녀 모두를 동포로 느낀 지 오래되었다고 했다. 나도 진심으로 맞장구를 쳤다. ‘맞아요 설렘도 사라지고 남녀도 희미해지고 동포와 가족들만 늘어납니다.’ 사랑이 사라진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아니 오히려 사랑은 다양한 방향에서 그윽하고 현묘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나는 비와 눈을 엄청 사랑하는 사람이다. 오죽하면 하늘에서 내리는 가장 직접적인 은총을 비나 눈이라고도 생각할까, 며칠 전 단양을 여행할 때 만추의 비가 오락가락했다. 한낮인데도 사위는 구름 때문에 어둑해지고 차 안은 아늑해졌다. 비가 내려선 지 길에는 거의 차가 없었다. 강은 휘어지듯 흐르며 가느다란 소리를 냈고 세상에는 우리밖에 없는 듯했다. 세차게 비가 내릴 때는 적당한 곳에 차를 멈추고 차 안에서 빗소리를 듣기도 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할 수 없는 독특한 여행이 되었다. 문득 호세 무히카! 우르과이 대통령, 13년이라는 옥살이를 하고 처음 비를 맞는데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더라는 고백이 생각났다.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는 말에 아무리 많이 가져도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이 가난한 사람이라고도 그는 말했다. 왜 우리에겐 이런 감동을 주는 정치인이 없을까?

어느 마을을 지날 때였다. 산이 병풍처럼 둘러있고 그 산에 운무가 가득 끼어 있었다. 그 회빛을 배경 삼아 아주 커다란 느티나무가 서 있는데 옷 벗은 가지들이 얼마나 섬세한지, 그 기골은 또 얼마나 장대한지, 두 가지 상이한 아름다움이 하나를 이루며 서 있는데 그 순간 나무의 존재로 인해 생이 아름다워지는 것을 강렬하게 경험했다면 이 사랑은 또 어떤가,

11월에는 브람스의 알토 랩소디를 들어야 한다. 브라암스는 스승의 아내를 사랑했고 그리고 그 딸을 사랑했다. 수줍고 우울한 성정의 그가 혼자 하는 외로운 사랑이 그를 음의 심연으로 내려가게 했을 것이다. 알토 랩소디는 사랑하는 율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 그의 상처가 지어낸 곡이다. 하여 가을이 저물어갈 무렵 꼭 들어줘야 할 음악. 어떤 악기보다 더 사랑의 근원을, 사랑이 지닌 쓸쓸함을 알게 한다. 사랑의 고통스러움을 느끼게 하는 사람의 목소리는 삶의 근원을 헤아려 준다고나 할까,

오래전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외할머니 집엘 가면 (외할머니는 모두에게 아주 상냥한 분이셨는데 부족한 아들과 결혼한 고아 며느리에게는 왜 그렇게 쌍클한 시어머니셨을까?) 불쌍한 아짐(외숙모)이 커다란 다라이에 빨랫감을 이고 논 사이에 있던 각시샘으로 갔다. 그 샘물은 겨울에는 따듯했고 여름에는 시원했다. 얼기설기 통나무로 만들어진 샘에는 아주 가느다란 새우와 아주 작은 물고기도 살고 있었다. 고운 흙이 깔려 있었는데 흙이 살짝 솟아오르고 그 위로 물방울이 생겨나고.... 그렇게 물이 솟아나는 것이 실제 눈으로 보였다. 아이는 창조의 섭리 가운데서 가장 아름다운 존재다. 손주와 시간을 보낼 때마다 내 안에서 사랑이, 각시샘 물처럼 퐁퐁 솟아나는 것을 느꼈다. 사랑은 무형의 것이라고? 아니 아니, 방울방울 솟구치는 물처럼 내 안에서 솟아나고 가득 차고 넘쳐났다. 이런 사랑은 내 생애 단연코 경험해보지 못한 사랑이었다. 물론 내 아이들도 사랑했었다. 그러나 젊음은 사랑을 깊게 체득할 수 있는 너그러움의 시절이 아니다. 나이든 자의 사랑은 그래서 더욱 깊고 넓을 수밖에 없다.

우리의 노년 같은 아름다운 십일월이 저기 저만치 가고 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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