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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기사승인 [593호] 2023.09.21  11: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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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지송頌

위 영(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가령 친구가 동행이라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면 먼지는 절친한 벗이 아닐까, 홀로 있는 빈집에서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노라면, 혹은 이렇게 자판을 두들길 때도 그이인지 그녀인지 성이 모호한 벗은 언제나 내 곁에 있다. 그 고요한 성품과 살풋한 자락을 보면 그녀인 듯, 변함없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꾸준한 인내를 지닌 채 내 곁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듬직한 그이일 듯도,

그 친구는 언제나 부드럽고 한결같은 모습으로 살포시 내려앉는다. 문 뒤, 장롱 뒤, 책상 뒤, 싱크대 보이지 않는 귀퉁이, 겸손하기도 하지, 눈에 띄지 않는 자리를 선호하는 것을 보면, 하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텔레비전 위, 스피커 위, 자주 쓰지 않는 화장품 뚜껑 위, 스텐드 위, 하다못해 거울과 자판 위에도 얼마나 사뿐히 내려앉는지, 책상 아래 귀퉁이에 몰아 넣어놓은 컴퓨터 전기 선위는 자신의 정원이라도 되는 양 무리를 이뤄가며 자리하고 있다. 그뿐인가, 날렵하기 이를 데 없어 장롱 아래 거의 틈이 없는 그곳까지 스며들고야 만다. 스미는 함을 보면 그대의 정체는 물인가, 묻고 싶을 정도이다. 천정의 등 위만 아니라 마치 공중곡예 선수의 허리처럼 유연한 모습으로 등 안에도 스며든다. 이렇게 기막히게 섬세한 족속이라니,

생각해볼수록 절묘한 존재다. 저 친구처럼 적막한 존재가 또 어디 있을까, 온 세상의 고요를 다 품은 것처럼 적요하다. 언제나 존재하면서도 언제나 침묵한다. 또 얼마나 서로를 아끼고 사랑하는지 그 엉키는 품이 연리목은 저리가라이다. 만나는 순간 그들은 일체가 되어 사람의 손으로 떼어내지 않으면 도무지 헤어질 줄 모른다. 다가오는 모든 것, 즉 새것들과 헌것들이 한 몸을 이뤄가는 몰아 일체다. 어디서 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으되 그러면서도 존재치 않는 곳이 없으니, 앗, 어떤 귀하신 분처럼 무소 부재(?)의 성향을 지닌 게 아닌가.

먼지에 대한 글을 읽었는데 먼지가 없으면 눈이 있어도 볼 수가 없다고 했다. 사물을 볼 수 있는 것은 빛이 투영체에 반사해 수많은 굴절을 통해 우리의 시야에 닿기 때문인데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공기 중에 떠있는 수많은 먼지라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방사능이나 생화학 테러를 잡아주는 형사 역할을 한다고 한다. 얼음이 얼게 하는 촉매의 역할도 하고, 빗방울이나 눈이 내리게 하는 것도 먼지가 핵이 되어줄 때 가능하다는데......

그렇다면 만약 먼지가 없다면 내 그리 은총처럼 기대하는 비와 눈도 내리시지 못하며 화려하게 타오르는, 우리를 환장하게 하는 황혼도 없다는 것이다. 절묘한 이면이 아닌가. 기이한 반면교사 아닌가. 그러고 보니 기억 속에서 잠들었던 칼릴 지브란이 깨어나기도 한다. ‘나는 수다쟁이로부터 침묵을, 편협한 이로부터 관용을, 불친절한 이로부터 친절을 배웠다.’는 인생 상당 부분을 할애하여 깔끔을 추구하며 살아왔는데 그 이면에는 먼지의 도륙과 학살이 숨어 있다. 생각해보면 그 친구는 변함없이 내 곁을 지켰고 아마 나 홀로 싸웠을 것이다. 결국, 패배하고야 마는 싸움. 하긴 내 편에서 싸움이지 아마 그 친구에게는 즐거운 숨바꼭질이었을지도 모른다. 설령 이긴다고 한들 다시 또 시작되는 일이란 것을 전도서의 허무를 깨닫듯 어느 순간 깨달았다. 지피지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이제 나이가 준 너그러움 ㅡ인정하지 않았던 많은 부분들을 인정하기 시작하는 지점 ㅡ으로 그 친구와의 동거를 인정한다. 살아있는 한 나와 평생을 동행할, 내 가까운 지기.

가을이 왔다. 포도순절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절이다. 햇볕과 아름다운 하늘, 무엇보다 소쇄한 바람결에 포쇄는 못할 망정 여름옷과 가을옷을 바꿔야 하며 더불어 구석구석 먼지를 털어내는 가을맞이 청소를 해야겠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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