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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역자 사모 수필

기사승인 [586호] 2023.06.03  20: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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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주려고

 

문순희 사모(성진성결교회)

그는 언제나 성실하고 착한 남편이기에 부족함이 없었으며,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날 장 출혈로 인하여 쓰러져 수혈받아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졸업식에 참석해 주었던 그의 사랑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 4월에 그는 육군 장교훈련을 받아야 했으므로 우리는 떨어져 있어야 했는데, 4개월간 그는 거의 매일 그날 있었던 일들을 글로 적어 내게 편지를 띄웠다.

결혼한 지 2년 만에 그가 장교훈련을 마치고 철원 모 부대에서 근무하던 중에 첫 딸 찬미가 태어났다. 그날 그는 이 세상에서 자신만이 아빠가 된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기뻐하였으며, 나는 그때 그의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그 후 이어서 작은 공주 은미가 태어나 우리 가족은 네 식구가 되었을 때, 그는 세 공주를 돌보는 아빠이기를 자청하며 헌신적인 삶을 살았다.

나는 남편의 지지 속에서 늦게 대학원에 진학하여 공부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는데, 어느 날은 남편이 이박삼일 간의 세미나를 가게 되어서 동료 학생을 집으로 데리고 와서 공부하고 있을 때, 자정이 넘어서 남편이 왔다. 놀란 나에게 그는 “당신 과제물 잘하는지 염려됐어 걱정하지 마! 나는 내일 새벽에 다시 가면 되니까”라고 했다. 당시 나는 컴퓨터를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염려가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그의 사랑은 언제나 나를 감탄하게 하며 감사를 자아내게 한다.

1999년 추석 나는 무리하게 일을 해서 허리가 몹시 아파서 병원에 입원하여 디스크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의사의 진단이 나왔을 때 그는 밤에도 침대에 눕지 않고 나의 병상을 지키며 10여 일의 밤을 기도로 지새웠다. 그의 눈에는 나의 고통을 나누어지지 못하는 절박감으로 언제나 이슬이 맺혀 있었고, 나의 통증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하는 몸부림으로 병상을 지켜주었다. 그의 사랑과 기도로 나는 수술을 하지 않고 퇴원을 하게 되었으나. 자신의 모든 것보다 못난 나를 사랑해준 그가 아버지를 일찍 잃은 나에게는 언제나 아버지의 깊은 사랑까지 담긴 정으로 다가온다.

그러던 2002년 여름 자신을 언제나 희생하며 헌신적인 사랑으로 교회와 가정을 풍요롭게 하던 그가 갑자기 쓰러져 원주기독병원에 입원하여 모든 검진을 해보아도 병명이 나타나지 않았던 악몽의 날을 기억한다. 그토록 멋진 그가 그렇게 당당하던 남편이 병원에 누워있는 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회개의 눈물을 흘려야 했으며, 너무도 자신을 비웠기에 이제는 그 빈 가슴을 내가 채워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병상에서도 자신의 괴로움보다는 아내의 놀란 가슴을 먼저 생각하고 언제나 나를 위로하였다. 기도와 말씀으로 병명조차 나타나지 않는 과로와 스트레스에 의한 질병과 싸워 이긴 그의 결단은 존경할 만하다.

그는 건강할 때나 병상에서나 지금까지 그랬던 같이 영원한 나의 우방이 되는 것을 기쁨으로 알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것이며, 언제나 나의 편이 되어 아내의 위치를 세워주기에 힘을 다했고 자신만이 한 아내의 남편인 것처럼 자신을 태워 나를 비추어 줄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오후 그는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며,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그의 표정이 진지하여 무슨 일이 있냐고 묻는 나에게 그가 던진 말은 평소에 우리 부부가 존경하는 분 중에서 남성(목사님, 교수님, 등등)을 거론하며 “다시 태어나서 결혼을 하게 된다면 당신 누구와 결혼하고 싶어”라는 너무도 황당하고 당혹한 질문을 하였다. 나는 화도 나고 의문도 생기고 혼란스러웠다. 왜 이런 질문을 할까? 내가 무슨 실수를 했나? 나의 대답은 명료하게 “그야 당신이지 누구야”, 라고 했지만, 그는 본인을 빼고 다른 사람을 선택하라고 했다. “나는 당신 아니면 결혼 안 할 거야”라고 대답하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온종일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잠들기 전에 그는 다시 “내가 왜 아까 물어보는지 알아”라고 질문을 했다. “내가 어떻게 알아요.” 하며 삐져있는 나를 향하여 그가 한 말은 “당신이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주려고 물어본 거야”라고 말했다.

순간 나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으며, 그 감격은 지금도 나의 가슴에 사랑의 강이 되어 흐르고 있고, 삶이 힘들 때, 슬픔이 몰려올 때, 그리고 많이 외로울 때,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의 근원이 되어 남편과 나를 하나로 이어줄 것이다.

운전하다가도, 운동하다가도, 잠을 자다가도 그는 우리 색시 예쁘다고 말하며,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우리 연인처럼 살자”

오늘도 그는 나의 손을 잡고 운동장을 걸으며 “당신은 천국에서도 나와 함께 기업을 나눌 사람이야”라고 말한다. 당신에게 한해가 더 할수록 한 송이씩 더한 장미꽃을 얼마나 더 받을 수 있을는지 모르지만 올해도 나는 한 송이 더 합쳐진 장미꽃을 기다려 본다. 그리고 당신을 향한 나의 사랑이 당신의 사랑에 미치지 못하지만, 이 세상 끝날까지 당신을 사랑하리라 결심한다.

혹시 삶의 여정에서 당신을 향한 사랑이 잠시 멈추어 선다고 하여도 나는 그날 밤 나에게 들려준 당신의 고백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주려고”를 기억하며, 당신에게 달려갈 것이다.

2005. 12. 당신의 연약한 반쪽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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