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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단물>

기사승인 [856호] 2023.06.01  23: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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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TV가 없던 시절이다. 시골 동네에 라디오라도 있는 집이면 괜찮은 집이었다. 돌이켜보면 어떻게 그 시절을 그리 답답하게 살아왔는지 신기하기도 하지만, 하기야 답답한 것을 알았다고 해도 달리 무슨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라디오가 있는 집에 가서 뉴스를 듣고 연속극에 귀를 기울이는 게 여간 큰 재미가 아니었다. “삐그덕!” 소리(효과음)가 나며 부엌문이 열리고 엄마가 들어가서 저녁 식사를 준비하신다. 연속극의 내용을 마음대로 그려내며 상상할 수 있었던 그 시절은 참 행복했다. 그러다 초등학생 시절이 지나고 중학생이 됐을 때 흑백 TV가 출현했고, 귀로 들으며 행복해했던 내 상상의 세계는 막을 내렸다. 60여 년이 흐른 요즘의 나는 어린 시절처럼 행복하지 못하다. 눈에 보이는 편리한 영상 매체들이 즐비하기에 뇌를 활성화시켜 상상하고 추론하며 꿈을 꾸는 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미국의 교육 커뮤니케이션 이론가인 닐 포스트먼은 ‘죽도록 즐기기’(1985년)라는 책을 통해 ‘영상 미디어사용의 위험성’에 대해 세상에 알렸다. 그는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라는 작품을 비교한다. 오웰은 빅 브라더가 지배하는 외부 압박으로 통치하는 사회를 그렸고, 헉슬리는 ‘자유와 즐기는 것의 과잉이 불러오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오웰은 ‘서적을 통제하는 사회’를 두려워했고, 헉슬리는 ‘재미있는 것에 빠져 서적을 읽지 않는 시대의 위험성’을 지적하며, 오늘날 SNS나 유튜브 영상 등에 익숙해져 인간의 뇌는 사색과 숙고하기가 어려워진다고 말한다. 포스트먼은 컴퓨터나 스마트폰 같은 기기를 ‘인간이 사용하기 나름’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솔함’이라고 지적한다. ‘죽도록 즐기기’ 딱 좋은 세상에서 ‘인간들의 무한정한 오락 추구의 욕구’를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대인이었던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이 지식보다 더 중요하다’고 했다. 유대인 학교에서 선생은 학생들에게 ‘마따호세프(네 생각이 무엇이냐?)’를 끊임없이 던진다고 한다. 질문하려면 생각해야 하고 생각한 것을 말하려면 용기가 있어야 한다. 선생은 답을 가르쳐 주지 않고 학생이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줄 뿐이다. 아이들이 아침에 학교 갈 때 한국 엄마들은 ‘선생님 말씀 잘 들어라.’ 하고, 유대인 엄마들은 ‘질문 많이 하라’고 한다. 그 결과는 1:193이다. 노벨상 수상자 비교다. 

요즘 스마트폰에 빠진 사람들이 여기저기에 너무 많다. 꿈꾸고, 상상하고, 자기 생각을 용기 있게 실천한 사람들이 ‘점수에만 집착한 사람들’보다 훨씬 더 성공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SNS 세상에서도 예수님이 우리 주인이 되셔야 하는데 많이 염려된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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