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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교회 안의 작은교회 선교운동 (31)

기사승인 [574호] 2023.02.01  17:3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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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장 “교회 안의 작은 교회”의 역사적 고찰

         이재완 목사 ( 영암벧엘교회 )

또한 이러한 신학적 교훈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올더스게이트 회심의 밑거름이 되었으며, 체험으로 확인되었다. 나중에 웨슬리가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믿는 자들의 모임” 이라고 정의할 때, 바로 이러한 신앙적 체험을 가진 자들의 공동체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모라비안들에 의한 신학적 교훈들은 웨슬리 교회관의 신앙적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둘째, 진젠도르프의 영향으로 웨슬리는 영국 국교회로부터의 분리를 원치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감리교를 하나의 신앙단체나 선교회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웨슬리의 이러한 생각에 영향을 미친 사람이 바로 진젠도르프라는 점이다. 진젠도르프의 아버지는 스페너의 친구였으며, 그는 paedagogium과 할레대학을 다녔다.

이러한 배경으로 진젠도르프는 “교회 속의 작은 교회”(ecclesiolae in ecclesia)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진젠도르프는 모라비안파를 기존 교회와 다른 교파로 생각하지 않고, 이 새 단체를 교회 갱신을 가져오기 위한 작은 교회 내지는 신앙공동체로 생각하였다.

모라비안은 새로운 교회, 즉 분리된 교회가 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서 교회를 갱신하고 역동적인 선교 세력이 되고자 한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웨슬리가 감리회와 영국교회의 관계 설정에 그대로 적용하였고 메소디스트가 “교회 안의 작은 교회”로서 역사 속의 타락한 교회를 새롭게 하는 사명이었다고 보았다.

셋째, 모라비안의 선교 열정과 성공은 웨슬리에게 많은 감동과 영향을 주었다. 모라비안의 선교에 대한 관심은 세계 곳곳에 기독교 신앙을 퍼뜨리는 큰 결과를 가져왔다. 진젠도르프 생전에 전 세계에 파송된 선교사들의 수가 226명에 달하였다. 모라비안 선교의 뛰어난 점은 그들은 흔히 이 땅에서 가장 후미지고 조건이 나쁘며 방치된 곳을 찾아 선교여행을 떠났다.

선교사들은 단순한 농부들이거나 기술공들이었으며, 결국 이들에 의해 서인도, 북아메리카, 가나, 이집트, 남아프리카, 네덜란드, 영국, 발틱해의 국가들에 선교가 이루어졌다. 이러한 모라비안의 선교는 웨슬리에게는 대단한 충격과 감동을 주었다. 넷째, 초대교회로의 회귀를 목표로 삼았던 모라비안 운동은 초대교회 정신과 조직을 중요시했다.

따라서 웨슬리는 모라비안의 정신과 조직에서 자신이 추구했던 초대교회 영성과 조직을 발견하였고, 더욱이 영국교회가 상실한 원천적인 예배의 요소를 보게 해 주었다. 이처럼 웨슬리는 모라비안들로부터 이런 토대 위에서 보다 실제적인 영향을 받았는데, 그것은 첫째, 조(Band System)로서 웨슬리가 독일 헤른후트(Hernhut)를 방문했을 때, 교회의 조직을 배웠다.

교단 최고의 성직으로서는 수석 장로가 있었고 반(班)으로 불리는 하부 조직에 장로들이 있었다. 교단은 4명의 교사와 몇 명의 집사 그리고 11명의 감독자가 있었고, 11명의 권고자와 보급계(補給係)가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인원은 남자와 여자로 각각 다섯 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이런 것은 경건주의의 새로운 기여이다.

모라비안의 조직과 조(Choir) 그리고 반(Band) 모임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둘째, 찬송가(Hymns)로서 웨슬리는 모라비안으로부터 찬양의 중요성을 배웠는데 그들은 저녁에 주로 찬양집회를 많이 가졌다.

웨슬리는 미국 조지아 선교를 위해 가는 선상에서 만난 모라비안의 찬송에서 처음부터 강한 인상을 받았다. 그래서 실제 사역에서 찬양을 많이 강조하게 된다. 셋째, 애찬식(Love-feast)으로서 이는 초대교회의 사랑의 공동식사(Agape)를 대신하는 용어이다.

407년에 죽은 존 크리소스톰은 아가페는 성도의 친교 식사(Fellowship meal)로서 ‘기독교인들의 가장 아름답고 가장 축복된 의식’이며, 사랑의 증진이요, 가난의 위로요 그리고 겸손의 훈련(A supporter of love, a solace of poverty, and a discipline of humility)이라고 소개했다.

진젠도르프는 헤른후트에서 성도의 친교와 신앙의 기쁨을 위한 공동식사로서 초대교회의 아가페를 적용하여 실시하였고, 곧 모라비안 경건 의식의 전통이 되었다. 넷째, 철야예배 (The Watch-Night Service)로서 이것도 애찬식과 같이 초대교회에 기원을 두었는데 철야예배는 웨슬리의 마음을 강하게 끌었다.

웨슬리가 독일 헤른후트 모라비안 지역을 방문하여 체류하는 동안 그들의 철야기도회에 참석하고서 그 잠재적 가치를 알게 되었다. 다섯째, 평신도 설교(Lay Preaching)인데 이 전통은 웨슬리가 헤른후트를 방문했을 때 크리스천 데이비드를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다. 크리스천 데이비드는 헤른후트로 모여든 망명자들의 지도자였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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