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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성결교회성장사(85)

기사승인 [568호] 2022.11.24  15:3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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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6편) 미주성결교회 성장

제3장 미주성결교회

제4절 브라질 지방성결교회

1. 브라질에 한국인 이민

1950년에서 1960년 초에 한국 국정은 매우 불안하고 혼란한 시기였다. 자유당 정권의 몰락과 민주당의 혼미한 상태가 군사혁명이 일어나게 한 것으로 보아 참으로 어수선한 나라의 형편이 위태로운 시기였다. 그리하여 한국 국민은 해외로 이민을 떠나야 한다는 의욕이 높은 시기였다. 이와 같은 사회적인 배경을 감안한 군정은 ‘국민의 해외 진출 정책’을 마련하고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남아프리카, 남미 여러 나라에 교섭단을 파견하게 되었는데, 이때 군정은 브라질에는 민간인 장인규(예비역 대령) 일행을 파견하게 된다.

브라질 나라의 형편은 아주 넓은 미개척지 대륙이 있고 개발도상국들 특유의 공업화 정책으로 노동력이 부족해 할 수 없이 영농이민을 받아들여야 하는 형편에 이르렀다. 브라질의 대지주들이 자기 소유의 대지를 매매하기 위하여 이민이 들어오는 것을 대환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브라질 정부와 대지주들이 의견이 우리나라 국민의 해외 진출 의욕과 우리 정부의 시책이 일치하게 되어 브라질 이민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 사람으로서 맨 처음에 브라질에 이민한 사람은 김수조, 김창수, 김달수, 이중창 등이다. 6.25 동란이 끝난 뒤 1956년 2월에 반공포로였던 김석근, 이봉엽 등 50여 명이 인도를 거쳐서 들어갔다. 그 뒤 1961년 15세대가 브라질 이민 선발대가 되었고 1963년 민간베이스로 17세대 92명이, 1964년 3월에 68세대가, 1966년도에 천주교인 50세대가 브라질로 갔다. 이렇게 5차에 거처 이민이 실현된 뒤 브라질 이민의 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렇다면 브라질 이민의 문이 막힌 이유가 무엇이었는지 알아봐야 한다. 그것은 영농후계자로 이민을 들어간 한국 사람들이 대부분 영농에 종사하지 않고 브라질 상파울루에 모여 상업에 종사하면서, 사회적 혼란을 일으킨 탓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정으로 이민의 문이 막혀서 우리나라 외교부가 발표한 1977년 통계에 따르면 교민 총수가 4,544명이라고 하며, 브라질에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브라질에 이민 가서 살고 있는데 이민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이 기독교인들이다. 그리하여 상파울루를 중심으로 한인교회가 많이 설립되었는데, 브라질 안에서 한인교회가 15개나 설립되었다. 그 가운데 성결교회는 3개가 설립되어 있다.

2. 중앙성결교회

1965년 10월 17일 권순국 장로가 설립한 교회인데 권 장로가 처음에는 브라질로 이민 가서 ‘한국인장로회연합교회’에 출석하다 1964년 9월 6일 상파울루 시내 ‘한인교회’ 사무실을 빌려 임시 예배실로 꾸미고, 새로운 교회를 설립하였다. 1965년 5월 3일 문명철 목사를 담임목사로 모시고 권순국, 임정섭, 김숭한, 김두백 장로 등과 당회를 조직하여 교회를 운영하였다. 1955년 5월 18일 교회가 두 갈래로 분열하여 권순국 장로가 1965년 10월 17일 교회 이름을 ‘중앙교회’로 정하여 독일계 루터교회를 임대하여 예배드리다가 1967년 2월 26일 정길수 목사를 담임목사로 청빙 했다. 정 목사는 1년 정도 목회하다 사정으로 그만두고 그 뒤를 이어 황문규 목사에게 임시로 강단을 맡겨 운영하다 황 목사가 1969년 3월 18일 사무총회를 개최하고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단에 가입하여 교회 명칭을 ‘중앙성결교회’라고 붙였다. 그 뒤 1970년 11월 13일 이석호 목사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1971년 1월부터 시무했다. 1971년 10월 24일에는 루터교회에서 예배 장소를 옮겨 새 예배 장소를 마련하였다. 1972년 1월부터는 정규석 목사가 협동목사로 일시적으로 시무하다가 1972년 10월 29일 사임하고 김충국 목사가 임시 목사로 부임하여 1973년 6월 12일에 사임했고, 1974년 6월 27일 서울 충무로 성결교회에서 시무하던 김석규 목사가 취임했다. 그동안 자주 목회자가 바뀌는 바람에 교회발전이 후퇴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러나 새로 취임한 김 목사가 사역하면서 교회가 부흥하여 장로 5명을 세우고 새롭게 부흥하게 되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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