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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웨슬리의 교회 안의 작은교회 선교운동(25)

기사승인 [568호] 2022.11.23  16: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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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5장 “교회 안의 작은 교회”의 역사적 고찰

           이재완 목사 ( 영암벧엘교회 )

2. 경건 훈련을 위한 모임(Collegia Pietatis)

경건주의 운동의 창시자인 스페너(Philip Jacob Spener, 1635-1705)는 성경과 안트(J. Arndt)의 명저인 《진정한 기독교》(True Christianity)등의 서적을 읽으면서 신비주의적 안티안주의(Arndtianism)와 청교도적 경건주의(Puritan piety)가 혼합된 배경에서 성장하였다. 경건한 분위기에서 성장한 그는 스트라스버그(Strassburg) 대학에 진학하였고, 당시 댄하우어(J. C. Danhauer, 1603-1666) 교수로부터 루터 신학과 평신도 위치에 대한 사상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그러나 당시 그에게 큰 영향을 준 인물은 루터교의 신비주의자인 안트(J.Arndt)였다. 그는 당시의 정통신학의 약점을 지적하면서 신비주의적 신앙과 사상을 주장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성령의 사역에 의한 중생의 개념은 그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그리고 스트라스버그는 칼빈(Calvin)의 개혁교회의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는 곳이기에 루터교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원초적인 단순한 예배와 심방 그리고 종교교육 특히 요리문답 교육제도(Catechism) 등을 배웠다.

이 배움은 후에 대학을 졸업하고 유럽 각지를 여행하면서 얻은 풍부한 경험과 통합되는데 이 중에 특기할 만한 사실은 여행 중에 제네바(Geneva)에서 프랑스 개혁주의자인 라바디(Jeande Labadie, 1610-1674)로부터 “참 신자들로 구성된 작은 교회” 개념을 배운 것이었다. 그 후 그는 대학으로 돌아와 교수로 있다가 1663년경부터 목회를 시작하였고, 1666년에는 프랑크푸르트(Frankfurt)로 옮겨 20여 년간 성공적인 목회사역을 하게 되는데 이 기간에 경건주의 운동이 태동하였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어린이 교육 프로그램(Kinder Lehre)을 강화하였고, 평신도 운동, 가난과 빈민 등 사회문제 그리고 개개인의 엄격한 신앙생활, 성경공부 등에 역점을 두고 목회하였다.
그러던 중 1670년 어느 날 마태복음 5장 20절-26절을 중심으로 철저한 회개와 산 믿음의 필요성에 관하여 설교를 하자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 때 각성한 사람들이 1주일에 두 번 수요일과 주일마다 목사관에 모여 발리(Barley)의 서적을 읽고 신약을 중심으로 성경공부를 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을 계기로 “경건의 훈련을 위한 모임”(Collegia pietatis)이 만들어졌는데, 이것은 “참 신자들로 구성된 작은 교회”, 즉 “ecclesiolae in ecclesia”의 구체적인 실천이었고, 나아가 이것은 당시 진정한 기독교인의 참된 지류를 대표하였으며, 경건주의 운동의 괄목할 만한 특징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1675년 《경건의 열망》(PIA DESIDERIA)을 출판했는데 이 책으로 말미암아 스페너는 ‘경건주의의 아버지’로 불리게 될 만큼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켰으며, 이 책의 부제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개혁을 위한 참된 복음주의 교회의 경건한 소원, 이 목적을 바라는 몇 개의 간단한 기독교적 제안과 함께” 

PIA DESIDERIA (Heartfelt Desire for a God pleasing Reform of the true Evangelical church, 

Together with several simple christian proposals looking toward this end)라고 부칠만큼 교회개혁을 강력하게 언급하였다.

《경건의 열망》이 발간되자 비판이 있었지만 오히려 많은 영향을 받아 “교회 안의 작은 교회”들이 독일 각처에서 형성되고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 경건주의 교회 개혁운동이 가속화되어 나갔다. 이렇게 20년 간의 프랑크푸르트 사역을 마친 스페너는 드레스덴(Dresden)의 궁중목사로 초빙되어 《신학연구의 장애》(The Impediment to Theological Study)를 저술하였다.

이 당시에 스페너는 라이프찌히(Leipzig) 대학 안에서 성서의 주석적 연구를 위한 젊은 교수들의 모임인 “성경을 사랑하는 모임”(Collegium Philobiblicum)을 주도하면서 경건주의 운동을 전개하던 젊은 학자인 프랑케(August Hermann Francke, 1663-1727)를 만나게 된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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