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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無의 삶을 산 김용은 목사(6)

기사승인 [568호] 2022.11.23  15: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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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은 목사의 생애

                         김용은 목사

이날의 일을 김용은 목사는 이렇게 회상했다. “만약에 그때 회사를 살리기 위해 일본 놈들에게 뇌물을 바치고, 공산당에 비위를 맞추고, 파업을 주동하는 녀석을 달랬다면, 제법 큰 회사 사장이 됐을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하나님은 나를 목사로 만들 계획이었소. 내가 그때 순종한 것을 감사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지요.”

김용은 집사가 고향으로 돌아온 1945년 봄은 일본 제국주의가 최후의 발악을 하던 시기였다. 군국주의는 모든 일상을 전시 체제로 만들었다. 면사무소와 수리조합, 동양 척식회사 등 행정의 말단까지 군복을 입고 근무를 해야 했다. 김 집사가 고향에 돌아온 무렵, 해주에서는 셔우드홀 선교사가 경찰에 붙잡혀 스파이임을 자백하라는 취조를 받았다.

조선 민족을 사랑하여 세상 부귀영화를 다 포기하고 들어온 수많은 선교사가 전염병에 쓰러지고, 셔우드홀과 같이 일본 제국주의의 핍박을 받고 학교와 병원 등 피땀 흘려 일궈놓은 기관들을 빼앗겼다. 서양인에게 이럴진데 조선인은 두말할 것 없이 노예 취급을 받지 않았겠는가.

정읍으로의 귀향과 해방

조선 교회의 현실은 혹독했다. 일제는 조선의 모든 교회와 기독교 학교, 기독 병원 등을 어용 일본 기독교단 밑으로 넣어 통합시키고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조선 총독부는 “신사는 종교가 아니므로 예배에 앞서 동방요배 등 국가 의식을 행하는 것은 신민의 도리”라고 강압했다. 이러한 압박은 당시 조선 기독교의 세 축인 장로회, 감리회, 성결교회 등에 대한 구체적 탄압으로 드러났다.

성결교회 지도부도 1943년 12월에 감리회, 장로회 지도자들과 함께 도쿄 이세신궁을 참배함으로써 신사참배를 통한 황민화 정책에 굴복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라도 정읍의 한 시골의 성도가 신사참배를 할 수 없다며 저항하자 정읍경찰서가 발칵 뒤집혔다. 그것도 일본에서 공부하고 흥남에서 사업에 성공한 영향력 있는 인물이 그렇게 나오자 관할지서 및 면 서기 등이 화들짝 놀라 회유와 협박으로 김 집사를 압박했다.

김 집사는 면장에게 이렇게 이야기했다. “나는 기독교인입니다. 인간의 경배와 찬양을 받으실 참된 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김 집사의 신앙은 흔들림이 없었다. 하나님의 기적으로 폐결핵이 치료되고, 일본에 가서 공부할 수 있었고, 기적적인 결혼, 기적적인 사업, 이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였기에 그는 순교까지 생각하는 절대 신앙을 갖고 있었다.

예수를 믿어 복을 받은 개인도, 그의 가정도 일본의 핍박은 피해 갈 수 없었다. 정읍경찰서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는 김용은 사장을 눈엣가시로 여겼고, 결국 어느 날, 경찰서로 들어오라는 전갈이 왔다. 일본인 경부가 경찰서 지하 취조실로 데려가더니 예우를 하는 척하며 겁박했다.

“김용은 사장님은 우리 정읍을 빛낼 지도자이십니다. 흥남에서 사업을 하실 때 도내 알선 인부들을 많이 채용하셔서 제가 도 경찰국과 총독부에까지 보고를 했습니다. 자랑스러운 기업인으로 말이죠. 그런 분이 다시 고향으로 오셔서 지역 발전에 헌신하고 계시니 우리 지역에 얼마나 영광입니까? 지금은 전시인지라 김 사장님 같은 분이 반도교회를 위해 힘써 주셔야지요. 예배도 앞서가는 일본적 풍습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아니요. 나는 못합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경부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양손으로 책상을 내리쳤다. 좀 전과는 태도가 달라졌다. “이 자가 지금 뭐라 하는 거야. 조센진을 사람으로 대하면 안되겠군. 나카무라! 이 자를 데려가라!” 김 집사는 건장한 순사들에 의해 음습한 방에 갇혔다. 그리고 대여섯 명이 우르르 들어오더니 다짜고짜 몽둥이질을 했다.

무자비한 구타는 멈추질 않았다. 온몸이 찢겨져 나가는 고문 가운데서도 스데반을 생각했다.‘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큰 기사와 표적을 행한 스데반도 그리 박해 당했는데,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내가 이 정도 고난받는 것은 너무 당연하지 않은가?’ 용은은 혼절과 깨어나기를 반복했다. 용은의 몸 상태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일경은 의사를 불러 진찰하게 했다.

만약 용은이 죽기라도 한다면 교인들과 민심이 동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용은이 죽으면 안되었다. 진찰 결과 용은의 갈비뼈가 여러 개 부러졌다. 경찰서장이 다가와서 그에게 말했다. “김 사장, 우리 애들이 실수를 한 것 같소. 김 사장과 같은 분을 이처럼 대하다니. 김 사장도 사업해 봐서 알 것 아니오. 지금 우리 정부는 황국 신민으로서 전쟁에 이기고 국채를 보존하기 위해 불령선인(不逞鮮人, 불량한 조선인 뜻)을 대대적으로 검거하고 있소.”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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