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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기사승인 [568호] 2022.11.23  11: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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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순이 장로님

위 영 ( 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

요즈음은 소설이 그다지 흥미롭지 않아요. 소설처럼 재미있는 글이 없다고 생각해 왔는데 삶의 철학이 살짝살짝 엿보이는 에세이를 더 자주 읽습니다. 살아갈 길이 짧아져서일까요? 소설이 굽이굽이 곡선이라면 에세이는 담박하게 뚫린 직선. 소설은 해찰의 영역인데, 해찰을 많이 해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며칠 전부터 요한 페터 애커만이 쓴 ‘괴테와의 대화’를 읽고 있습니다. 젊은 애커만과 이미 거인이 되어 있는 괴테와의 만남이 애커만의 필치로 쓰여 있는 글인데 젊은 시인에게 충고라는 날카로운 가시를 부드러운 수프처럼 만드는 다정한 괴테가 보여요(나도 다정한 사람인가 묻게 되었죠). 젊은이는 그런 괴테를 마치 연인인 양 사랑하며 스승처럼 우러릅니다.

괴테의 시에 관한 생각이 흥미롭습니다. 그는 젊은이에게 대작을 쓰지 말라고 합니다. 젊을 때는 그저 현실에 뿌리와 기반을 둔 <기회시>를 쓰라고 하면서 말이죠.  평범한 대상에서 흥미로운 면을 끄집어내는 것이 시인의 가치라면서요. 대작은 아니지만(불행히도 대작을 쓸 나이는 충분하지만요) 우리도 <기회시ㅡ일상의 모든 것들>을 쓰면서 서로를 알게 되었죠.

시가 일상의 어떤 것들을 붙잡는 것이고 그 순간에 셔터를 누르는 것이 시인이라면, 그럼요 우리도 시인이죠. 언니를 만난 지가 벌써 삼십 년을 향해 가네요. 글판에서 만나 이리 긴 세월이 흘렀으니 이미 우린 서로에게 너무나 투명한 사이가 되어 있습니다. 언니 동생을 하다가도 아주 가끔은 서로를 향해 사모님 권사님 하기도 하죠.

며칠 전 카톡 할 때 언니가 사모님 ....하며 카톡을 보냈었죠. 나도 장난스레 답을 하며 권사님... 했는데 언니가 나 권사님 아녀~ 답을 해서 나도 사모님 아녀요, 하려다가 웃으며 넘겼어요. 그런데 농담이 아니었더군요. 이제 언니는 장로 장립을 받아 장로님이 되신거예요. “아니 세상에 그런 좋은 일에 왜 말씀을 안 하신 거예요? 꽃바구니 가지고 가서 축하를 해야잖아요.” “나도 몇 번이나 망설였지. 해야지 하면서 그런데 입이 안 떨어지더라고,” “아니 왜요?” “나 같은 사람이 장로가 되는 게 부끄러워서….”

모두가 가난했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시골 가난한 교회의 목사님 딸로 태어나서 겪었던 그 수많은 이야기는 언니의 시적 정감이 풍성한 언어로 읽어선지 이제는 나의 경험처럼 여겨지기도 합니다. 언니 오빠가 서울대에 합격했을 때 알지도 못하던 경찰서장이 밤늦게 집으로 찾아와 알려주던 합격 소식은 월드컵 결승 골처럼 가슴 뿌듯한 이야기였죠.

그때만 해도 서울대 입학은 시골에서는 동네 경사였잖아요. 그 오빠가 좋은 직장을 다니시다가 아버님의 길을 따라 목회 길로 들어섰지요. 그리고 지금도 아흔 넘으신 어머니께 토요일마다 화상 전화를 하신다구요. “어머니 내일 말씀 잘 전할 수 있게 기도해주세요.”

더욱 신기한 것은 딸 이름도 잘 모르시는 어머니께서 어쩌면 그렇게 유장히도 아들 목회에 대한 기도를 은혜스럽게 하시는지, 기도하시는 전화기 너머에서 어머니 앞에 고개 숙인 머리 하얀 아들 목사님, 언니는 그럴 때마다 감동이 차오른다고 했어요. 전해 듣는 내게도 은혜 풍성한 간증이었어요. 신학대학 교수에 목회자 둘을 둔 집안에 언니는 드디어 여자 장로가 되셨네요.

작고 사소한 일에 마음 상하면 교회를 떠나는 것이 다반사인 시절입니다. 교회를 이곳저곳 떠돌아다니는 나그네 교인도 있고 믿음 없는 사람들은 교회를 건물로 여기지만 교회는 영혼의 집입니다. 내 부모를 마음대로 정해서 태어나지 않듯이 우리에게 다가온 교회를 섭리로 여기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작은 교회를 한결같이 섬기는 자들이 주님 보시기에 큰사람이라는 것을 확신합니다. 한곳에 든든히 뿌리를 박고 서 있는 자체가 반석이 되는 일인 거죠.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할 뿐 아니라 사람에 대한 이해가 높아야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언니가 작은 교회에서 수십 년을 한결같이 신자 생활을 하고 그 교회에서 장로가 된 것, 얼마나 의미 깊은 일인가요. 저두 목회 길에 서서 보니 한결같음이 참으로 위대한 덕목이라는 것을 깨달아지더군요. 무엇보다 친한 사람에게도 장로장립에 대해 말하지 못한 그 겸손함이 더욱 좋아 보입니다. 최순이 장로님은 아름다운 장로입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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