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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물단물>

기사승인 [562호] 2022.09.29  18:1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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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시간. 그는 거리에 서 있는 빨간 차 한 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지금 그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 발이 묶여 있습니다. 폭탄은 여기저기서 터지고 머리 위에서는 수시로 미사일이 떨어졌죠. 가족과 함께 방공호에 피신해있던 그는 상황이 악화되자 키이우를 떠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하지만 차량도, 휘발유도 구하기 어려웠죠. 그때 눈에 띈 것이 엉망이 된 도로에 서 있는 빨간 차 한 대였습니다. 시동장치에는 열쇠가 꽂혀 있었고, 기름도 가득 들어 있었습니다.

마치 어딘가로 떠나기 위해 대기 중인 차량처럼 말입니다. 지켜보던 그는 차를 훔치기로 결심합니다. 이대로는 러시아의 폭탄에 가족 모두 몰살을 당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2시간 후에도 차량 주인이 나타나지 않자 그는 차를 훔쳐 가족과 떠났습니다. 키이우에서 남서쪽으로 200㎞ 떨어진 빈니차에는 친척이 살고 있었습니다. 무사히 키이우를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그는 차를 타고 가는 내내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가 차를 훔친 탓에 누군가 키이우를 탈출하지 못하고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는 차를 뒤진 끝에 글로브박스에서 차주의 전화번호를 찾아냈습니다. ‘미안합니다. 내가 가족을 구하기 위해서 당신 차를 훔쳤어요.’ 전화를 건 그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차 주인의 첫 마디는 뜻밖에도 “하나님 감사합니다.”였습니다. 차주는 주춤대는 그에게 “걱정하지 마세요. 내게는 차가 4대가 있었고 우리 가족들은 그중 한 대인 지프차로 이미 탈출했습니다”라고 안심시켰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였죠.

“나머지 차는 기름을 채우고 열쇠를 꽂은 채로 각각 다른 장소에 세워뒀습니다. 글로브박스에는 내 전화번호를 남겼고요. 나머지 3대의 차량에서 전부 연락이 왔어요. 곧 평화가 올 거예요. 몸조심하세요.” 차 주인은 누군가 차를 훔쳐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던 것이다. 차를 훔쳐 포탄이 쏟아지는 전쟁터를 탈출하기를, 한 명이라도 더 살아 남아주기를, 그래서 전쟁 없는 세상을 다시 오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우크라이나의 전직 외교관인 올렉산드르 셰르바가 지난 5월 2일 빨간 차량 사진과 함께 트위터에 공유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차를 훔친 이가 누구인지, 차량 주인은 또 누구인지, 그들이 여전히 생존해있는지 아무것도 확인되지는 않지만, 이름 모를 우크라이나 차주의 이야기는 희망을 품게 한다. 21세기에도 죽고 죽이는 전쟁을 계속하지만 그런 절망 속에서도 세상에는, 누구라도 사람이라면 반드시 살아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작은 영웅’들이 있다. 생명을 구하겠다는 일념으로, 지옥 같은 도시 곳곳에 기름을 채운 차들을 세워둔 우크라이나 시민 같은 사람들, 그런 이들이 있는 한, 인류에게는 아직도 희망이 있다고 나는 믿는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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