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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기독교 문인 · 작가 석희구 목사

기사승인 [561호] 2022.09.16  16: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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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문화 창달 위한 문서선교 자랑스럽다”

대담 진행: 고광배(왼쪽) 특임기자,  대담자: 석희구 목사

일시: 8월 11일
장소: 인천 계양 가든파티
내용: 문인 작가 탐방 소개  
진행: 고광배 특임기자

인천시 계양구에 위치한 계양제일교회 석희구 목사를 찾아 인터뷰를 요청했다. "목사님 반갑습니다. 기독교헤럴드에서 교회 탐방과 담임목사 대담의 코너를 마련했습니다. 특별히 글을 쓰는 문인으로서 유명한 목사님을 뵙게 되어 반갑습니다." 

Q. 진행자: 먼저 목사님의 가족, 성장, 신학 공부 배경을 말씀해 주세요. 
A. 석목사: 자랑할 만한 업적도 없는 소인이 자기 삶에 관한 질문을 받게 되니, 천기누설하는 것처럼 마음에 부담이 되는군요. 순종하는 마음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의 가정은 할아버지 때부터 저희 손자에 이르기까지 5대에 걸쳐 주님을 섬겨왔습니다, 석 씨 집성촌의 종가입니다, 종가에서 예수를 믿게 되어 어려운 점도 많았고, 보람된 일도 많았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고향 모 교회 창립자십니다, 종가에서 예수를 믿어 70여 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동네 사람 90% 이상이 예수를 믿게 되었으니 가장 큰 보람입니다. 제 가족은 93세의 노부모님이 살아 계시고, 아내와 아들 두 형제를 두었습니다. 부모님은 지금도 제 목회에 든든한 기도의 후원자십니다. 제 아내는 저와 비슷한 가정 배경의 집안 딸로서 잠언서의 현숙한 여인처럼 저의 목회에 덕망 있는 내조자로, 든든한 후원자로 저에게는 과분합니다. 아들 중에 큰아들은 교직에 있고, 작은아들은 제 뒤를 이어 내년에 목사안수를 받게 됩니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내가 신학을 하게 된 동기는 초등학생 시절 고향교회의 남성화 목사님에 대한 훌륭한 모습에 감동되어 ‘나도 우리 남 목사님과 같이 되겠다.’라고 어린 마음에 서원했습니다. 그 서원이 파란만장의 세월을 거쳐 결국 오늘의 석희구 목사가 되었습니다. 


Q. 진행자: 목회를 하는 중에, 목사님의 일생에 영향을 준 인물이 있겠지요. 닮고 싶은 인물이 누군가요?
A. 석목사: 공부는 하고 싶은 만큼 하였으니 여한이 없습니다. 제 인생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사람은 저의 초등학생 시절의 고향교회의 남성화 목사님입니다. 남 목사님 같은 목사가 되어야겠다고 서원했고, 남 목사님을 닮고 싶었습니다. 신학을 공부하면서는 사도 바울 같은 목회자가 되고 싶었고, 밀림의 성자 슈바이처 같은 목사, 의사, 음악가가 되고 싶었습니다. 한국의 목회자로서는 조용기 목사님을 좋아하여 전도사 시절에는 조용기 목사님의 설교를 많이 인용했고 조 목사님을 닮고 싶었습니다.


Q. 진행자: 목회하시는 중에 가장 보람을 느낀 때 와 가장 어려웠던 때 그리고 어려운 문제는 어떻게 극복했나요? 
A. 석목사: 신학교를 졸업한 후 십자군전도대에서 사역하고, 부평제일교회 부목사로 섬겼습니다. 그리고 부평제일교회의 지원받아 인천시 계양구에 계양제일교회라 이름으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습니다. 

젊은이의 패기와 믿음으로 도전했는데 막상 어려운 현실에 부딪치니 눈물과 한숨의 현장이었습니다. 저절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엎드리게 되었습니다. 스스로 자신과 피눈물 나는 영적 싸움을 했습니다. 철모를 때 한 번은 도전했지만 두 번 다시는 못할 것 같은 생각입니다. 제 경우는 부평제일교회라는 큰 교회에 기댈 언덕이 있었음에도 그랬는데, 그렇지 못한 경우의 교회들은 피눈물 나는 고생을 통해 교회를 세웠을 것입니다. 그 어려움 중에도 하나님께서 이 모양 저 모양으로 감당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셔서 지금 이곳에 아담한 교회당을 세우고 꾸준히 성장하여 28주년을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 교회 성도들의 희생과 헌신입니다. 


Q. 진행자: 목회자로 문인으로서 시도 쓰고, 작사도 하고,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특히 통일에 대한 염원이 많은 것 같은데요?

 

 

A. 석목사: 시를 쓰게 된 동기는 농촌 출신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면서 도시로 유학하게 되었습니다. 열세 살 어린 나이에 자취하면서, 어린 소년이 고향과 부모 형제를 떠나 자취 생활을 하게 되니 고향 생각, 부모, 형제 생각, 동무들 생각에 외로움과 그리움에 사무쳐 그저 생각나는 대로 메모하게 되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것이 모두 시가 되었습니다. 훗날 ‘시’로 문단을 노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조금씩 발전하여 넓은 ‘시’ 문단 세계로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지금은 기독교 최고의 문단인 한국기독교문인선교회의 부회장을 역임하였고, 지도 목사로 섬기고 있습니다, 우리 문인선교회는 기독교 문화 창달을 위하여 국민일보사와 신춘문예를 주관하는 보람 있는 문서 선교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어 자랑스럽습니다. 우리 성결교단 소속 시인들 중에도 국민일보 신춘문예를 통하여 입상하고 등단한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은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특별히 가슴 아픈 광경을 목격했습니다, 추석 명절에 고향 갈 입장이 못 되어 가족과 함께 임진각으로 나들이 나가게 되었는데 그곳 망배단에서 많은 사람들이 북녘을 향해 제사상을 차려 놓고 제사를 지내는 눈물겨운 모습을 목격했습니다, 어떤 사람은 목 놓아 우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저도 같이 울었습니다, 우리의 숙원 제2의 광복인 통일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기도하고 힘써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산가족들 생각을 깊이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오랜 역사를 가진 한국작악회가 있는데 이 모임은 대부분 음대 교수들과 시인 회원들로서 합창곡이나 가곡 등을 창작하는 모임입니다. 그 모임에 작시 위원으로서 이산가족을 위한 고향 그리는 노래를 만들게 되었고 KBS홀 등에서 매년 1회씩 발표회를 하는 활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음악은 누구나 다 좋아하는 분야이지만 저는 유별나게 음악을 좋아한다고 할까요. 신앙생활의 교과서는 성경과 찬송 두 권의 책이니 음악은 필수적 요건이라 생각하여서 사전 준비를 조금 했습니다. 그래서 중학교 시절에 피아노 레슨도 받아 음악의 기본을 조금 익혔더니 반주자가 없던 개척 교회 목회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런 음악적 베이스가 바이올린, 색소폰, 기타, 하모니카 등을 취미로 하게 되었고 영혼을 감미롭게 하는 삶을 누리게 하고 있습니다. 간단한 노래를 만드는 일도 직접 해 보는데, 예배를 위한 입례송, 기도송, 폐회송, 복음송 등의 소곡들은 제가 만든 노래로 실제 예배에서 사용하기도 합니다.


Q. 진행자: 목회자에게 설교는 늘 짐이면서 보람과 즐거움(?)인데 설교 준비는 어떻게 하고 있는가요?
A. 석목사: 설교는 언제나 목회자를 긴장시키는 제1순위이면서 특권의 하나입니다. 1년 52주 설교를 교회력과 목회 일정을 중심으로 골격을 세워 둡니다. 그리고 정황에 따라 가감하며 조절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다음 주일 설교를 금주 주일 설교를 마친 저녁부터 한 주간 동안 깊은 묵상을 하며 작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금요일에는 주일 준비를 모두 마무리합니다. 그런대로 권장할만하다고 생각합니다.

 

Q. 진행자: 목회자가 먼저 건강하고 행복해야 건강한 교회를 이룰 수 있다고 봅니다. 건강관리는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요?
A. 석목사: 목회자의 건강은 자신에게도 중요한 일이지만 교회에도 더욱 중요한 일입니다. 목회자가 건강하지 못하면 교회에도 민폐를 끼치는 일이 되므로 목회자 자신의 건강관리는 철저히 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건강관리는 새벽기도를 마친 후 테니스로 몸을 단련시키고 있습니다, 매일 매일은 못 하지만 주중 3회 정도는 꼭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대로 양호한 건강관리가 되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잔병치레하거나 병원에 입원한 적은 없었습니다. 식사는 하루 두 끼 먹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다과나 간식을 한 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청년 시절에 몸무게가 63kg였는데, 지금도 여전히 63kg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가꾼 만큼 하나님께서 건강에 은혜도 주신 줄로 믿습니다.

 

Q. 진행자: 계양제일교회의 앞으로 비전과 사역에 대한 계획이 있습니까?
A. 석목사: 소박한 저의 꿈입니다, 계양제일교회의 1세대는 ‘초대교회를 닮은 120 성도가 섬기는 교회가 되자’입니다. 앞으로 전원적인 환경에서 아담한 석조 건물로 고딕 복고풍의 교회를 건축하여 영성 있는 예배와 기도, 영혼의 쉼이 있는 분위기의 교회를 건축하고 싶은데, 이것은 차세대의 몫이겠지요. 그리고 노인복지관을 설립하여 신자들의 생의 마지막을 교회 복지관에서 마무리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고 싶습니다. 아울러 장묘선교회를 설립하여 무덤까지 함께 하는 시설을 꿈꾸고 있습니다. 특별히 제가 꿈꾸는 장묘선교회는 아겔다마적 개념으로서 10년 계약의 아파트형의 납골당이 아니라 땅에 묻히는 장묘로 평당 4인의 묘비를 안치하는 새로운 장묘 개념입니다. 다음 세대에 이런 꿈들이 아름답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Q. 진행자: 은퇴 후의 삶은 어떻게 계획합니까? 
A. 석목사: 고향인 경북 안동으로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거기에는 석씨 집성촌 종가의 종손 인맥들이 있고, 부모님이 사시던 고향에 집이 있으며, 조상들이 물려준 선산과 약간의 땅도 있고 초등학생 시절의 옛 추억이 있으니 이러한 조건들이 저를 부르는 듯합니다. 저 자신도 대문 없는 집에서 에덴의 아담과 이브처럼 전원에서 자유의 세상을 살아 보고 싶은 동경도 합니다. 그리고 건강이 허락하는 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를 최대한 선용 하고자 하는 측면에서 캐나다에 선교사로 사역하고 있는 친구 목사와 함께 자비량 선교를 계획하며, 색소폰 공부에도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미자립 교회, 교도소, 복지시설, 5일장 등에서 설교, 색소폰 연주, 시 낭송 등으로 자비량 선교와 봉사를 꿈꾸며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꿈들이 하나님의 은총 속에 뜻깊은 노후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Q. 진행자: 만일 다시 태어난다면 어떤 유형의 삶을 살고 싶습니까? 
A. 석목사: 제가 살았던 유형의 삶에 더하기, 꿈꾸었던 내용을 이루는 정도의 삶을 한 번 더 살아 보고 싶습니다. 저의 속내를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Q. 진행자: 여러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순수한 석 목사님의 마음을 대하게 되고 많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기도하시는 대로 행복한 목회와 아름다운 삶이 마무리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A. 석목사: 감사합니다.

고광배 특임기자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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