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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워드로 보는 세상 (3)

기사승인 [558호] 2022.08.04  15:45: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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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털, 영혼까지 털어서

김광연 교수(숭실대학교)

수도권의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당시, 사람들은 “이번 기회가 내 집 마련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겠다”라는 심리적 부담감으로 너도나도 영혼까지 끌어 모아서 내 집 마련에 성공했다. 수도권에 우리나라 인구 대다수가 집중되어 있다 보니, 집값 상승은 너무나 당연해 보이고, 더 이상 집값 하락의 신호는 찾을 수 없어서 사람들이 영끌로 내 집을 마련했다.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사람들에게서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고, 이번에 (내 집 마련)으로 갈아탈 수 있었다는 행운의 열쇠가 우리에게 손짓한 것처럼 느꼈다. 하지만 또 다른 영끌의 반전이 우리 사회에서 시작된 것이다.

사람들은 영끌, 영혼까지 끌어다가 정말 모든 것을 다 끌어 모아서 집을 샀다. 영혼(soul)이 말하는 의미는 사전에 잘 나와 있다. 이 말은 정신과 마음의 뜻을 가지고 있지만 ‘진심으로(with my soul)’란 뜻과 핵심, 중심 또는 생명이나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진 단어였다.

 영혼이 기독교 전통에서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단어이지만, 일반적인 사람들에게서도 영혼이라는 단어는 더 없이 소중하고 모든 것의 중심이나 핵심 또는 생명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는 단어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영혼까지 다 바쳐서’라는 말을 간혹 하게 된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의 연인들은 서로에게 ‘소울 메이트(soul mate)’, 즉 영혼의 동반자라는 말을 사용한다. 정말 소중한 사이의 관계를 일컬을 때 사용되는 말이다.

기독교인들에게 ‘영끌’이라는 말을 물어보면 혹시 “영혼 깊숙이 끌리는‘이라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리스도인들은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라는 찬송가를 부르면서 신앙을 고백한다. 그 만틈 영혼이라는 언어적 함의는 형이상학적 가치를 지니고 있고 또 그것 이상의 소중한 의미를 담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금리 인상과 부동산 투기 등의 여러 사회적 현상과 맞물려서 ‘영혼’이라는 단어는 기존의 고상하고 형이상학적 가치와 맞물려 새로운 형태로 변형되어 사용되고 있다. 영끌이나 영털과 같이 복합어를 줄여서 사회적 현상으로 표현되는 말로 사용된다.

영끌은 이미 우리 사회에서 잘 알려진 단어이지만 새롭게 부상하는 단어가 ‘영털’이다. 영털은 또 다른 사회적 국면으로 인해 만들어진 키워드이다. 영털, ‘영혼까지 다 털렸다’는 의미이다. 영혼이라는 의미가 소중한 뜻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때, ‘영혼까지 털렸다’는 의미는 삶의 모든 가치를 통째로 다 털린 것으로 표현되는 말일 것이다. 그럼 사회 현상으로서의 영털, 도대체 무엇이 다 털린 것일까?

 2022년 미국 금리 인상으로 인해 우리나라 금리도 연이틀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 단계는 크게 3가지로 나눈다. 베이비 스텝(기준금리 0.25%), 빅스텝(기준금리 0.5%),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으로 나눠지는 금리는 현재 자이언트 스텝 단계이다. 그 만큼 고금리로 인해 한국 사회에서도 그 파급력이 미치고 있는 것이다. 미국 금리의 인상은 곧바로 한국 금리 인상으로 이어진다.

금리 인상의 여파는 대출받은 사람들의 이자 금리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현재 많은 사람들이 주택담보대출이나 신용대출로 인해 이자를 매달 갚아나가는 상황에서 이자 금리의 인상은 불가피한 가사의 경제적 타격을 줄 수 있다.

 무엇보다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을 위해 영끌을 한 사람들은 금리 인상으로 인해 월급의 상당수 이자를 갚는데 지출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대출받은 사람들은 높은 이자를 감당하지 못하면서 다시 집을 내 놓는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자의 상승으로 대출금을 갚아나가는 상황에서 집값의 하락은 구매자들을 더욱 영털로 내 몰리게 한다.

뿐만 아니라 영끌로 대출을 받은 사람들은 ‘영털’ 즉 ‘영혼까지 다 털리는’ 사회적 현상을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부동산으로 시름하는 우리 사회의 어둔 단면을 보여주는 영끌과 영털은 또 다시 우리에게 빚투로 이어지게 한다. 빚을 내어서 투자하는 사람들을 빚투라고 말한다. 누구나 우리는 조금의 빚을 지고 살아간다. 그 빚은 물질적(돈)인 것도 있겠지만 우리는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영털, 영혼까지 털리면서 모든 것을 통째로 빼앗긴 삶을 빗대어 이야기하는 사회 현상에서 우리들에게 많은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단순히 사회적 현상으로 등장하는 영혼과 부동산 투자 두 단어의 결합은 단순히 문화적 현상을 넘어서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던지고 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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