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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최초의 전킨 선교사’ (42)

기사승인 [558호] 2022.08.04  15: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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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산 선교사 시절, 나의 아버지

전킨 선교사(1865년 12월 13일 ~ 1908년 1월 2일)

나와 동생 윌리암은 교회에 들어갈 때 신발을 벗고 들어갔다. 책창처럼 칸막이가 있는 신발장에 놓기는 했지만, 입구 바닥에 신발을 줄로 놓아도 너무 많아서 예배를 마치고 나갈 때는 각자 신발을 찾아 신느라 시간이 걸렸고 분주하였다. 나와 동생은 여자 측에 앉아서 예배를 드렸기 때문에 아버지는 볼 수 있었지만 남자아이와 남자들은 볼 수가 없었다. 그 당시 교회 바닥에는 줄로 쳐서 남녀가 앉는 자리를 분리하였다.

 내가 전주에 살 때, 6주 동안 한국학교에 갔다. 6주간 교육을 받고 내가 알고 있는 한국말을 한글로 읽고 쓸 수가 있었다. 이는 내가 명석해서가 아니라 한글이 소리 문자이고 세계적으로 매우 우수한 글자였기 때문에 이렇게 짧은 기간에 배울 수 있었다.

한글은 우리가 한국에 들어오기 3-4백년 전, 현명한 대왕이 학자들을 선발하여 중국과 일본에 보내어서 문자를 연구하게 한 다음, 음성을 따라 개발된 글자여서 세계적으로 매우 훌륭한 발명이라고 생각한다. 선교사가 한국에 왔을 때, 이미 한국에 한국말과 글이 있다는 것은 선교에 큰 장점이었다.

 한자는 상형 문자이기 때문에 시간을 많이 들여 한자를 한 개씩 외워야만 했다. 그래도 학자라고 불릴 정도의 그럴 듯한 학자가 되기 위해서 5천자의 한문을 외워야했다. 일본글자와 한문은 상형문자이기 때문에 글자를 하나하나 외워야만 했다.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한 것은 학자들이 한글은 너무 쉽다고 학자들이 문서나 책을 한글로 쓰지 않고 한자를 주로 쓴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이렇게 훌륭한 한글을 쓰지 않고 한문을 주로 썼다.

그렇지만 선교사들은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였다.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학자들도 한글 성경을 읽어야만 했다. 지금은 아마 한글로 번역된 성경을 읽을 것이다. 이렇게 세계적으로 훌륭한 한글은 학자들 중에, 너무 쉽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한글 보다 한자를 사용하였다. 한글은 매우 뛰어난 글자이다. 한글은 소리 글자이기 때문에 어떤 외국인이든지 한글 쓰기와 읽기를 6주 만에 배울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너무 고집이 강하여 끝까지 사용하지 않는 학자들도 있었다.

 우리들의 교육 차원에서 그 당시 한국에는 선교사들의 소수 자녀를 위한 적절한 교육기관이 그 당시에 한국에 없었다. 그래서 우리 부모님은 미국에서 교재를 사서 공부를 가르쳐줬다. 우리는 공부를 지도해 줄 선생님 없이 자율학습을 하였고, 질문이 있을 때, 부모님께 질문을 하도록 하였다. 부모님은 엄격하게 교육을 시켰고, 오전에는 공부하고 오후에는 놀았다. 부모님은 우리와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수 없었지만 학습 집중력을 키워줬다.

중국 치푸학교에서도 아버지가 소천한 후, 미국으로 귀국해서도 미국 교육기관에서 동생과 나는 저학년부터 시작하였지만 곧 우수한 학생이 되었다. 부모님이 자기주도적 학습 방법으로 교육하셨기 때문에 즉시 전 과목에 수를 맞는 상위권에 오를 수가 있었다.

 나는 해변 2마일 정도의 백사장과 아름다운 정원 등 경치가 매우 좋은 중국에 치푸라는 곳에 중국 선교사들이 중국과 협상해서 세운 기숙학교로 갔다. 유치원에서부터 여자, 남자 중고등학교 기숙사가 있는 학교였다. 물론 선교사가 세운 학교였지만 선생님은 선교사들이 아닌 채용한 선생님이었다.

남자학교에 근무하는 선생님들은 기독교인이라지만 매우 거칠었다. 동생과 나 그리고 나보다 생일이 이틀 늦은 다른 선교사의 아들, 보잉 랜널과 세 명이 치푸 남자 학교에 입학하였다. 우리는 모든 환경이 매우 낯선 학교에 소개되었고 특히 이들은 영국식 발음으로 말을 했다.

 첫 날, 몇 장의 더하기 숙제(arithmatic)를 내주셨다. 문제를 읽을 때, 달러 싸인을 이상하게 썼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때 열한 살이었고 동생 빌은 약 아홉 살이었다. 나는 부호를 잘 몰라서 미국 돈 단위(달러,센트)로 겨우 더하기를 해갔다.

다음 날 아침, 학우들이 내가 숙제한 것을 보고 웃었다. 그들이 사용하는 파운드, 실링, 펜스라는 돈 단위에 낯설었다. 영국은 이상한 시스템이지만 매우 보수적이어서 자기들만의 돈 단위를 사용하고 있었다. 우리는 며칠 안되어 파운드, 실링, 펜스에 익숙해졌다. 영국 남자아이들은 속셈을 잘 하고 종이도 없이 상당히 어려운 문제를 잘 계산하였다. 우리들은 저학년에 배치되었지만 몇 주 지나서 상급반으로 진급하였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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