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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기사승인 [549호] 2022.05.06  14:2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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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관심이 문제다(눅 10:25~37)

                  주 진 목사 (기성 세한교회)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찾아와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율법에는 무엇이라 기록하였느냐.”라고 물으셨고,  그는 “네 마음을 다하여 목숨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나이다.”라고 대답하였다. 이러한 대답에 예수님께서는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을 시험할 의도로 난감한 질문을 하였는데 예수님께서 오히려 자신의 대답을 인정하시자 그는 우쭐해져서 자신이 더욱 옳게 보이려 또 다른 질문을 하였다. “선생님, 그러면 네 이웃이 누구입니까?” 이 질문을 받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비유의 말씀을 통해 참된 이웃이 누구인지 일깨워 주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옷과 모든 것을 빼앗기고 거의 죽을 정도로 구타를 당하였다. 그런 중에 마침 하나님의 성전에서 예배를 주관하는 제사장이 그 길을 지나가다가 그를 보고 황급히 피하여 지나갔다. 또 성전에서 예배를 돕는 레위인도 역시 그를 외면한 채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하지만 여행을 하던 한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그에게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맨 후 자기 짐승에 태워 그를 주막으로 데리고 가 돌보아 주었다. 그리고 이튿날 그가 주막 주인에게 두 데나리온을 내어주며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만약 비용이 더 들게 되면 내가 돌아올 때 그 값을 치르겠노라고 말하였다. 그렇다면 이 세 사람 중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겠는가?” 예수님의 이러한 질문에 율법 교사는 머뭇거림 없이 자비를 베푼 사마리아인이 바로 참된 이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너도 가서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하여 반드시 깨달아야만 하는 영적인 교훈은 다음과 같다. 

먼저 내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으려고만 하지 말고 내가 먼저 남들에게 사랑과 은혜를 베푸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율법교사가 예수님에게 “네 이웃이 누구입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오히려 “네가 그들의 이웃이 되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통하여 알 수 있다. 나아가 남을 사랑하는 데 있어 어떠한 차별과 환경적인 요인이 장애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강도 만난 사람을 도운 사람이 바로 같은 동족인 유대인들이 아닌 그들이 제일 혐오하고 미워하는 사마리아인이었다는 사실을 통하여 확인된다.

그렇다면 왜 같은 동족인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 그냥 지나가 버렸을까? 우리가 죽어가는 짐승을 보아도 측은한 마음이 들어 도와주고 싶은데, 그들은 사람이 죽어가는 현장을 어떻게 그냥 지나쳐 버렸을까? 그것은 바로 ‘무관심’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무관심이 오늘날 많은 사람들 마음속에 가득 차 있는 것 같다. 냉혹한 이기주의에 사로잡혀서 자기 자신이나, 자기 가족,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 외에는 도통 관심이 없어 보인다. 이 세대가 점점 더 무서운 무관심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이 무관심이 바로 제사장과 레위인의 마음속에 있었기에 그들은 사랑을 베풀 수가 없었던 것이다.

요즘 우리 주위를 조금만 둘러보아도 강도를 만난 사람이 널려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은 절망이라는 강도를 만나 낙심 가운데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고 있으며, 어떤 사람은 경제적인 어려움이라는 강도를 만나 헐벗고 굶주림으로 고통 받고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열등감과 무너진 자존감이라는 강도를 만나 온전하게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데 아주 심각하게 강도를 만난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바로 영혼의 강도를 만나 영원한 사망의 늪으로 달려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있어 더욱 큰 문제는 그들이 영혼의 강도를 만난 것과 그로 인하여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마 9:13).”라는 말씀을 주셨다. 혹시 내 주위에 쓰려져 신음하는 자들이 있지 않은가? 마치 제사장과 레위인처럼 ‘나만 잘 믿으면 되지’라는 생각에 빠져 영혼의 강도를 만난 사람들에게 무관심하고 있지 않은가? 이제는 우리가 무관심에서 벗어나 강도 만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한다. 무엇보다 우리 모두 영혼의 강도를 만나 아직도 예수를 그리스도라 고백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최선을 다해 복음을 전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전도하지 않으면 그들에겐 희망이란 없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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