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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태환경 칼럼 (20)

기사승인 [539호] 2022.01.20  13:4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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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의 조작 불가능성

김광연 교수(숭실대학교)

인류는 오랫동안 자연에서 얻어지는 유산을 통해 삶의 풍족함을 누려왔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는 가뭄으로 메말라가는 땅을 촉촉이 적셔주고, 찬란하게 빛나는 태양의 강렬함은 축축한 습기를 제거해 준다. 태양의 따스함으로 인해, 차가운 대기가 따뜻하게 데워지고 식물은 영양분을 공급받아 마음껏 푸르름을 뽐내기까지 한다. 어디 이것 뿐인가? 자연에서 얻어지는 풍부한 천연자원으로 인류는 한겨울에 차가움을 녹일 수 있고, 무더위 속에서 시원한 바람을 즐길 수 있다. 자연의 소산은 인류의 기대 이상으로 마음껏 베풀고 있었다.

대자연의 푸르름으로 인해 인류는 맑은 공기를 마음껏 마실 수 있고, 오대양 바다의 수많은 자원은 인류에게 식량을 제공해주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자연에서 비롯되고 있다. 자연이 주는 아낌없는 유산에도 불고하고 인류는 그 고마움에 너무 익숙한 나머지 서서히 자연의 배려를 잊어가고 있었다.

창조 시스템에서 비롯된 자연의 넉넉함은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였다. 하지만 인류는 서서히 그 사랑을 머리 속에서 지워가고 있다. 인류는 가만히 내버려두면 저절로 자연에서 수 만가지의 다양한 자원과 식량을 얻을 수 있지만, 그것도 부족하고 모자라서인지 또 다시 무언가를 더욱 얻기 위해 자연을 인공 기술로 도배하고 있다.

오늘날 인류는 인공강우 실험으로 맑은 날 하늘에서 비가 오도록 과학 기술로 실험하고 있다. 그것도 모자라서 인공태양을 만드는 시도까지 서슴치 않고 있다. 인류는 자연의 유산을 인간중심적 태도에서 비롯된 가치관으로 재해석하고 있으며 더 이상 자연의 귀한 유산 없이도 인류가 살아갈 수 있다는 자만을 감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태양과 구름 그리고 맑은 공기와 자연 생태계의 수많은 시스템을 발전이라는 명분으로 변환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이 실험들이 지금 당장은 어떠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 해도 이 기술의 칼끝은 어디로 향하는지 우리는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자연에서 얻어지는 소산은 인류의 제작이나 도구적 가치로 설명할 수 없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대지를 적시는 것은 인류가 가진 줄자로 치수를 젤 수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연에게 선사한 축복의 시스템을 인류는 서서히 개조하려는 무모함을 시도하고 있다.

자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 하나님의 은총의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발전과 개발은 하늘에서 주어진 은총이라는 생태계적 시스템을 서서히 인간중심적으로 개조하는 것이다.

위르겐 하버마스(J.Habermas)는 <인간이라는 자연의 미래>에서 자연의 '조작불가능성'을 개조하려는 인간의 태도에 대해 비판한다. 그는 이미 자연 상태에서 '주어져 있는 것'들을 기술적으로 바꾸려 하는 인간의 이기심을 비판한다. 하버마스는 인간의 개입으로 인해 자연의 조작불가능성을 인위적으로 바꾸려는 시도에 대해 경계했다. 그는 자연의 우연성을 조작하려는 인간의 태도에 대해 비판했다.

하나님이 만든 자연 세계는 우연성으로 가득 차있다. 인간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우연성에서 우리는 신의 경이로움을 발견하게 된다. 비록 우연적이지만 완벽한 자연의 세계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자연 안에는 완벽성이 들어있는 것이다. 인류는 자연의 우연성에 완벽성이 숨어 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자연의 우연적 사건에 개입하면서 자연을 정확한 수치로 계산하려는 과학적 기술에 의존하는 것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자연의 움직임은 말 그대로 예측불가능하다. 바람이 어디서 불어 어디로 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만이 자연의 모든 우연성을 예측할 수 있다. 인간의 과학적 태도는 수많은 자연의 우연성 중 어느 하나를 알게 되었다고 말할지 모르나, 우리는 자연의 모든 체계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는 태도부터 버려야 할 것이다. 자연은 비밀 그 자체이다. 판도라의 상자 속에 있는 무수한 비밀을 알려고 했던 인간의 욕심처럼, 자연의 그 많은 우연적이고 비밀스러운 것들을 과학 기술로 제단하려고 하지 말고, 자연을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서 함께 살아야 할 방식을 찾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림입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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