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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95)

기사승인 [539호] 2022.01.19  17: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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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스트 세션> 프로이트는 무신론자였을까?

                위 영(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연극을 좋아한다. 영화도 좋고 음악도 좋지만 그래도 순위를 정한다면 연극이다. 수년 전 <단테의 신곡>을 관람했다. 박정자가 딱 한 장면에 나와서 몇 마디 대사를 마친 뒤 손을 위로 수욱 올린 채 서 있고 무대는 서서히 암전되었다. 그 장면을 잊을 수 없다. 짧은 순간, 연극적인 분위기뿐 아니라 평생을 연극판에서 살던 사람의 카리스마가 무대뿐 아니라 관객석까지 순식간에 연극무대로 변화시키는 힘을 보여줬다. 라스트 세션 마지막 장면도 매혹적이었다. 연극이 끝나고 서서히 암전된 후, 관객들이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무대가 밝아지는데 프로이드역의 오영수는 연극의 마지막 장면 때처럼 의자 위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마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것처럼, 연극은 끝났지만 다시 삶은 시작된다는 은유가 읽혀지는 장면은 좋은 연극의 아우라는 확대경이 되어 삶을 잘, 크게 보이게 한다. 연극의 한 축인 드라마틱함 때문이 아니라 현실에 발을 디디고 있으면서도 세련되고 과장된, 연극적인 어법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오징어 게임으로 오영수 배우가 우리나라 최초로 골든 글로브상을 받았다. 신문은 당연히 대서특필했고 그가 선택한 연극 <라스트 세션>도 더불어 매스컴의 신데렐라가 됐다. 얼리버드로 두 달 전에 예약해놓은 작품이었다. 대학로로 연극을 보러 간 날은 엄청 추웠다. 오후가 되면서 시간마다 일도씩 낮아지고 바람도 세찼다. 영화도 지루한 것만 골라보는 사람인데 연극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라스트 세션>은 오직 두 사람의 대화로만 이어진다. 물론 프로이트의 방과 그의 수집품, 그들이 지닌 분위기 그리고 보이지는 않지만 프로이드의 개와 틈틈이 사람의 목소리를 실어 나르는 라디오가 조연으로 등장한다. 프로이트는 무신론자였고 옥스퍼드 대학의 교수이자 작가인 루이스는 기독교를 변증하는 최고의 학자였다. M. 니콜라이의 저서 ‘루이스 vs 프로이트’에서 영감을 얻어 미국 극작가 마크 세인트 저메인이 각본을 썼다.

'신이 없다'는 프로이트와 '그러므로 신은 존재한다'라는 루이스, 이 두 사람의 주장과 논거가 이어진다. 마치 선수들의 핑퐁게임처럼 조금도 흐트러짐 없이 티키타카를 이루어 간다. 잠깐 딴생각에 빠지면 놓칠 영국식 유머도 가끔 등장한다. 오영수의 프로이트는 날카로우면서 유머가 있다. 반면 이상윤의 루이스는 유연하며 빈틈이 없다. 신의 존재뿐 아니라 죽음과 삶, 욕망과 고통에 대해 논쟁을 하지만 서로에 대한 연민도 있다. 생각해보니 교회 청년이었을 때 틈만 나면 창세기의 사건과 믿음에 관해 자주 토론을 하곤 했는데 이젠 그런 열정도 없다. 대신 무대 위에서 날카로운 칼을 휘두르는 무신론자와 정교한 방패를 지닌 변증론자가 우리들을 대신해주고 있었다. 지루하다면 지루할 수 있는 연극을 젊은이들이 그토록 많이 보러온 것도 무척 고무적이었다.

프로이트는 전쟁 뉴스를 듣기 위해 틈틈이 라디오를 켜다가도 음악이 나오면 가차 없이 꺼버린다. 왜 음악을 꺼버리냐는 루이스의 질문에 감정에 의문이 들기 때문에, 책을 읽거나 그림을 볼 때 감동하는 것은 이유가 명확한데, 음악은 이유도 없이 감정이 밀려드는 것이 불쾌하다고 대답한다. 그는 음악을 신의 존재와 비슷하게 여긴 것이 분명하다. 형체 없는 존재의 확연한 실재가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나 음악뿐이랴, 사랑은 어떻고 고통과 연민은 어떤가, 당신과 나의 관계는, 그리고 우리 삶을 쥐락펴락하는 코비드 19는, 그렇다. 이제야 희미하게 알게 되었다. 허락된 것이 있는 것처럼 허락되지 않는 것도 있다는 것을, 인생의 모든 답을 알 수 없지만 우리에게 허락된 것은 그저 믿음의 등롱이 우리가 가야 할 길을 비춰 주고 있다는 것을,

마지막 장면에서 프로이트는 라디오에서 나오는 음악을 끄지 않고 가만히 듣고 있다. 의미심장한 장면이다. 과연 프로이트는 무신론자였을까,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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