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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89)

기사승인 [533호] 2021.11.24  18:4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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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계에 서서

             위 영(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십일월이 사라져 간다. 일 년 중 가장 쓸쓸하고 암울한 달, 모든 것이 쇠락하는 11월. 아직 가을이야, 아니 겨울의 시작인가, 경계에 선 시절, 그런데도 자살률은 최저치라고 한다. 나무에 물오르고 새싹 눈부시게 움터 오르면 자살률도 증가하기 시작해 오뉴월에 정점에 이른다니 생에 대한 의지는 자연의 생명력과 상반되는가, 훠이 훠이 옷을 벗어가는 나무를 보며 오히려 살아갈 길을 찾는 건가, 십일 월이 가고 있다. 작년 이맘때 마니산을 올랐는데.....산을 오른다는 것은 인생길과 똑같다. 난데없는 복병처럼 넘어지게 하고 가파른 길을 오를 때면 숨차다. 그런가 하면 다시 평이한 길로 접어들어 숨을 고르게 되며 오롯이 고요해진다. 정수사에서 마니산 오르는 길은 힘들지만, 능선에 서면 시야가 확 트여 가슴이 뻥 뚫린다. 가끔 아슬아슬한 바위를 타기도 하니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어느 나무든 그 삶을 기록하지 않으랴만, 능선에서 자라느라 바람과 추위에 이리저리 치인 신산한 木生?이 그대로 드러나는 소사나무의 수피에 눈길을 자주 주게 된다. 경계에 서서일지도 모르겠다. 소사나무 북방한계선이 마니산이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다큐멘터리에서 수목한계선인 툰드라 지역을 보았다. 수십 년을 조금도 자라지 않고 오직 ‘생존만’ 하는 침엽수들. 마치 생명이 없는 듯 움직임도 없고 그저 고요만 가득한 땅이었다. 온몸에 흰 눈을 베일처럼 덮고 고요히 하늘을 향해 서 있던, 창조의 뜻을 묵상하며 간절하게 기도하는 것처럼 보이던 나무들. 소사나무는 한국 특산종으로 중부 이남의 해안이나 섬 지방에서 주로 자란다. 소청도 서풍받이 가는 둘레길은 소사나무 군락지여서 정말 원 없이 소사나무를 보았지만, 강화도 첨성단의 소사나무는 천연기념물로 그 자태가 유별나다. 언젠가 도쿠가와 이에야스에 관한 책을 읽다가 세 사람의 영정을 자세히 바라본 적이 있다. 오다 노부나가는 젊고 잘생겼고 눈매 코가 시원시원하고 입술은 주욱 찢어져 있고 히데요시는 좀 쪼잔해 보였다. 이에야스는 느긋하고 복스러운 할아버지처럼 보였는데 가장 오래 살았다. 이에야스의 좌우명이 <사람의 일생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걸어가는 것과 같으므로 절대 서두르면 안 된다>였다. 서두르지 않는 느긋함 때문에 오래 살 수 있었던 것일까, 틀림없이 그에게도 하루하루가 날 선 경계였을 텐데...'산음의 길을 따라 걷노라면 산천이 서로 맞비추며 어우러져 있어서 사람에게 하나하나 마주 볼 기회를 주지 않는다.(使人應接不假)' 세설신어의 한 대목인데 들여다볼수록 향기 그윽한 글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접어드는 시간, 늦가을 그 청명한 것들이 만들어 내는 우수. 어쩌면 그 우수를 청명한 것만 만들어 내겠는가, 비와 달과 나무, 별뿐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것들, 혹은 죽음의 시간 속에 있는 것들은 더하다. 저 멀리 흘러가 버린 과거의 시간 속에서도 우수는 뚜벅뚜벅 소리 내면서 걸어 나온다. 계절의 경계에 서니 생각이 하 많아진다. 풍경과 마음을 대상으로 달을 정했던 인디언들에게 십일월은 물이 나뭇잎으로 검어지고 모든 것이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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