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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종표 목사, '호남 최초의 전킨선교사' 연재 (13)

기사승인 [529호] 2021.10.20  18: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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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남 최초의 병원을 세우다.

전킨 선교사  (1865년 12월 13일-1908년 1월 2일)

1904년 레이번이 남편 전킨과 함께 전주로 사역지로 옮겨감에 따라 불선교사의 부인인 엘비 선교사가 이 사역을 이어 받게 된다. 엘비는 고향인 버지니아주 렉싱턴 장로교회 부인들 (주로 메리 볼드윈 대학 동문)의 도움을 요청한다. 레이번과, 엘비는 메리 볼드윈 대학의 동문들이었다. 버지니아의 동문들은 아침을 금식하여 모은 돈을 보내왔고, 어떤 이들은 빵장사를 통해서 얻어진 수익금을 보냈다. 또한 메리 볼드윈 대학 학생회는 매달 1천 달러를 군산의 여학교에 기증하였다.
  그녀들은 그 학교에 멜볼딘여학교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들의 모교인 “메리 볼드윈”을 한국식으로 발음한 것이 “멜볼딘”이다. 동문들이 보내준 신축 기금을 통하여 현대식 벽돌 건물이 학사로 세워지게 된다. 당시 전북 서부지방에는 교회 내에서 운영하는 사립보통학교가 21개소나 되었지만 여학교는 멜볼딘여학교가 유일하였으며 1900년대 초기에는 학생수가 51명에 이르게 된다.
  이렇게 군산 구암에 현대식 교육기관인 멜볼딘여학교가 세워지자 전북 지방의 새로운 여성 교육 명문 기관으로 발전해 가면서 군산을 비롯해서 옥구, 김제, 부안, 익산, 그리고 충청남도 부여, 청양, 보령, 한산, 임천, 장항 등 여러 지방의 여학생들이 이곳으로 모여 들었다. 이곳에서 배출된 여학생들은 서울로 진학하기도 하였으며, 농촌운동의 선구자가 되기도 하였다. 그런가 하면 1919년 3월 5일 군산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에 적극 참여해 옥고를 치른 학생들도 생겨나며, 일본 경찰의 감시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뜨거운 심장을 가진 사람,  드루의료선교사(1859-1926)

호남지방에서 최초로 서양의 의술을 시작한 의료선교사는 알렉산드로 드루 의료선교사이다. 그는 1896년 본격적으로 전킨 선교사와 함께 자기 집에서 진료소를 시작하였다.
  드루 선교사가 군산과 처음 만난 것은 1894년 3월 레이놀즈 선교사와 6주간의 선교 여행을 통해서다. 1894년 3월 27일 서울을 출발하여 강화와 인천을 거쳐 3월 30일 군산에 도착한다. 그들은 2년이나 준비한 자신들의 선교지인 군산 지역에 대해 누구보다도 벅찬 기대감을 가지고 군산의 땅을 밟았을 것이다. 그의 일기에 “군산은 참으로 아름다운 땅”이라고 쓰여있다. 개항 전에 군산은 옥구군 북면에 속하였고 한옥 150채, 조선인 700명, 일본인 가옥 23채와 156명이 거주하는 갯벌과 갈대가 우거진 작은 어촌 마을이었다. 창세기 12장에 아브람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란에 이른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사명의 땅이었을 것이다.
  두 선교사에 눈에는 비린내가 날법한 작은 어촌 마을이 참으로 아름답게 보였다. 이 작은 마을을 통해 호남 선교의 사명을 바라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긍휼한 마음으로 군산 땅을 밟은 그들의 눈에는 작고 비린내가 나는 어촌 마을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상상으로 보았기에 아름다웠을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질 것에 대한 벅찬 가슴으로 바라본 두 선교사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순간이 아니었을까?
  미국 남장로교 해외 선교 실행 위원회는 한국에 첫 의료 선교사 드루를 파송한다. 그와 그으 부인이 제물포에 도착한 날짜는 7인의 선발대보다 늦은 1894년 3월 초로 예상한다. 드루 선교사는 남장로교 최초 의료선교사로서 버지니아 햄던-시드니대학과 펜실베이니아대학에서 약학과 그리고 버지니아 의대에서 의학을 공부하였다. 1893년 루시(Lucy)와 결혼한 드루는 1894년 1월 18일 “City of Peking 호”에 탑승하여 샌프란시스코를 떠나 제물포에는 3월 11일, 서울에는 3월 12일 도착했다. 드루 부부는 1901년까지 군산에서 의료 사역을 하면서 네 명의 아이를 낳았다. 레이놀즈 선교사는 1894년 2월 13일 한국 선교회의 제2차 연례회의에서 드루 선교사 부부가 2-3주 안에 도착할 것을 예견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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