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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영 목사의 Book-Life

기사승인 [526호] 2021.09.16  13:5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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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정원영 목사 (제일교회 담임)

‘류시화’님의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출판:더숲)를 적극 추천하며 일부를 옮겨 봅니다.

대학 졸업반 때의 일이다. 싼 월세방이 있다는 친구의 말만 믿고 경기도 외곽에 있는 어느 종교 단체의 공동 거주지에 세를 들었다. 나무들 사이의 오솔길이 강으로 이어져 있어서 문학을 하는 나에게는 신이 준 선물이나 다름없었다. 행복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장발을 한 낯선 자가 여름인데도 검은색 바바리코트를 입고(방이 추웠다) 자신들의 신성한 터전을 광인처럼 중얼거리며(시를 외운 것이었다) 어슬렁거리자 사람들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고, 마침내 이른 아침 여러 명이 예고도 없이 내 방으로 들이닥쳤다. 그들은 부정 탄다는 듯 신발도 벗지 않고 들어와서 나더러 당장 그곳을 떠나라고 요구했다. 나는 집주인에게 세를 냈기 때문에 몇 달은 살 권리가 있다고 예의 바르게 설명했다. 그리고 나 자신이 시인이라고 밝혔다. 그것이 문제를 더 키웠다. 흥분한 그들은 ‘시인’을 ‘신’으로 잘 못 알아듣고 급기야는 나에게 “마귀야, 마귀! 썩 물러가라!” 하고 고함치기 시작했다. 결국 몇 푼 안 되지만 나에게는 거금인 남은 월세도 돌려받지 못한 채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신은 나를 완전히 버리지 않으셨다. 마땅히 갈 곳이 없어 시골길을 걷다가 연극부 후배와 마주쳤다. 그의 집이 그 동네에 있었다. 그리하여 강변의 밭 한가운데 서 있는 무허가 창고를 싸게 세들 수가 있었다. 이내 여름 장마가 닥쳤다. 한밤중에 밖으로 나간 나는 기겁을 하고 놀랐다. 폭우에 급격히 불어난 강물이 금방이라도 밭과 창고를 삼킬 것처럼 저만치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모든 것이 불안하기만 한 시기였다. 낡은 창고 앞에 서서 위협하듯 불어 오르는 강물을 보며 나는 문득 생각했다. “나는 시인이 아닌가!” 하고.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 모든 상황이 시를 쓰고 문학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경험해야 하는 일들로 여겨지고 삶의 의지가 다시 솟았다. ‘작가는 비를 맞는 바보’라고 나탈리 골드버그는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에서 말했다. 폭우가 쏟아져 사람들이 우산을 펴거나 신문으로 머리를 가리고 서둘러 뛰어갈 때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비를 맞는 바보라는 것이다. 불어나는 강물 앞에 혼자 서 있었고 세상은 넘실거렸다. 장대비에 연거푸 이마를 두들겨 맞으며 작가로서의 내 삶을 거룩한 소명으로 여겨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우리는 누군가 새 희망과 삶을 노래할 수 있도록

              빛과 사랑이 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이며 교회입니다."

시인 ‘류시화’님은 이렇게 만들어졌구나하는 생각을 하며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진 나도 이런 과정을 가졌을까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러나 십 수 년에 시인의 마음에 비수와 같이 꼿인 그 일에 대해 그리스도인으로서 미안함을 먼저 말하고 싶습니다. “미안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시인께서 시인의 길을 찾아 나섰던 것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 길을 찾다가 왠지 모를 낯섦을 주체하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그 시대의 두려움은 오늘날 보다는 여러 가지로 미숙함이 많았을 우리 모두의 시대를 품고 있었을 바, 길을 찾아 나섰던 동행자의 마음으로 널리 양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 어떤 상황과 대상 앞에서도 평온함을 글로 녹아내며 사람들의 삶을 읽고 위로해 주어야 하는 시인의 소명을 찾아낸 당신의 모습에서, 세상과 분투하며 살아가는 이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 길을 묵묵히 걸어 삶의 아름다움을 만들어주는 그런 바보가 되지 못한 부끄러움이 민망할 뿐입니다. 시인이여! 이를 알게 하신 당신이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여! 우리는 누군가가 새 희망을 품고 새 삶을 노래할 수 있도록 빛과 소금이 되고 사랑이 되어야 하는 그리스도인이며 교회입니다. 시인이 우리의 삶에 위로와 용기로 채워 주듯 우리 또한 그리합시다. 그래서 세상에 소망을 주는 그리스도인이 됩시다. 주께서 기뻐하실 우리의 일입니다. 주께서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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