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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 창문 칼럼(66)

기사승인 [526호] 2021.09.15  15:3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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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영섭 예비역 대령의 삶과 신앙

우리나라가 국권을 상실하고 국민들의 소망이 없었던 시절, 최영섭(崔英燮 1928-2021) 예비역 대령은 1928년 강원도 평강군에서 독립운동가 최병규 선생의 아들로 출생하였다. 누구보다 뼈저린 일제강점기를 체험했던 그는 일본 유학에서 국제정세를 터득하고 고국으로 들어와 새롭고 멋진 삶을 설계하였다. 하지만 북한 공산당의 부당한 대우와 박해를 피해 가족 모두가 남한으로 피난하면서 실향민이 되었다.

최영섭 예비역 대령은 1947년 9월 해군사관학교에 3기로 입학하여 졸업하였다. 1950년 2월, 해군 최초 전투함인 백두산함(PC-701) 갑판사관 소위로 임관한지 4개월 만에 6.25 가 발발하여 한국전쟁에 참전하였다.

최영섭은 소위로 임관하여 대령으로 예편하였다. 그는 충무함 제2대 함장과 해군사관학교 부교장을 역임하였고 무공훈장 3회를 포함해 무려 6개의 훈장을 받았다. 최근에는 그의 일생을 정리한 자서전 ‘바다를 품은 백두산’을 출판하여 나라 사랑과 멋진 신앙의 길을 안내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대한해협 해전을 승리로 이끈 그를 추모하고 그의 삶과 신앙을 돌이켜 보면서 국가안보에 대한 교훈을 삼고자 한다.

최영섭 예비역 대령은 평생 하나님을 믿으며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그는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안보 강의와 청소년들의 국가관 정립을 위한 실질적인 교육을 진행하였다. 2018년에 한 기독교TV 프로에서 “인생의 마지막 물음에 대한 답은 신앙, 예수 신앙이다”라고 말했다. 교회에서 집사의 직분을 감당했던 그는 장로의 직분을 맡으면 교회 지도자이기에 외부에서 안보 강의를 하는 데 한쪽으로 치우쳤다 하여 지장이 있을 것으로 여겨 집사의 직분을 고수하였다고 한다. 그는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겪은 땅 한반도, 그러한 역사와 하나님의 은혜를 가는 곳마다 소소하게 간증하였다. 대한민국을 세워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주님의 말씀과 한국역사를 증거 하면서 살아 있는 근대역사와 그가 직접 경험했던 실화를 이야기했다. 한국전쟁 발발 이튿날 북한군 무장병력 600여 명을 태운 1,000t급 북한군 무장 수송선이 부산상륙을 하고자 대한해협을 지나오던 때에 제2함대 소속 백두산함(PC-701)의 갑판사, 항해사, 포술사로 5시간의 교전 끝에 격침시킴으로 해군 첫 승전을 이루었다.

또한 최영섭 해군 예비역 대령은 해병대를 이끈 제2인천상륙작전, 덕적도·영흥도 탈환작전, 대청도·소청도 탈환작전의 지휘관으로 유일하게 생존하고 있는 분이었는데 지난 7월 8일 소천하여 더욱 안타까운 심정이다. 가족사에서 보듯이 부친뿐만 아니라 그의 자녀들 모두가 3군 및 해병대 장교로 국방의 의무를 감당했으며, 책임의식이 확고하고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명문 가문이다. 특히 최재형 장로는 전 감사원장의 사명을 감당했으며 곧은 가치관, 국가관, 인생관을 가지고 국가에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2018년 3월과 최근에 출판한 ‘바다를 품은 백두산’의 인세 수백만 원을 이웃돕기에 기증하면서 예수 사랑을 실천하였다. 아울러 최영섭 해군 예비역 대령은 20여 년간 국가안보 강연을 하면서 모은 3,000만 원을 해군 출신 순직자, 전사자 자녀를 후원하는 ‘바다사랑 해군장학재단’에 기부하는 사랑을 펼쳤다. 당시 그는 “해군 참전용사 자녀를 위해 할 수 있는 노병의 마지막 마음”이라며, “금액은 약소하지만, 노병의 작은 뜻을 받아 달라”고 전하였다. 최영섭 대령은 “노병의 90여 년 기나긴 항로의 마지막 항구가 희미하게 보인다”며 “오늘의 기부는 내 인생을 정리하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밝히면서 마지막까지 타인을 사랑하는 실천을 아낌없이 하였다.

최영섭 대령은 국가안보가 위기에 빠진 작금의 대한민국을 바라보면서 “너희는 전쟁을 준비하고 용사를 격려하고 무사로 다 가까이 나아와서 올라오게 할 찌어다 너희는 모습을 쳐서 칼을 만들찌어다 낫을 쳐서 창을 만들찌어다(요엘 3:9-10)” 성경을 인용하면서 경각심을 주었다.

또한 한국교회 크리스천들에게 90세의 노병이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조언은 “인생은 길고 긴 항해다. 항로를 정하고 돛을 달고 힘껏 저어 나가야 한다. 그러나 바람 없이는 나아갈 수 없다. 그 바람은 하늘에서 불어온다. 하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그 길이 성경에 있다”라고 말하면서 “바른 국가관을 통해 삶의 모든 여정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주님의 도움을 받아야 인생의 긴 항해를 무사히 마칠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행복의 원천은 아픔 있는 사랑이다. 사랑에는 눈물, 땀, 아픔이 스며있다. 이 아픔, 즉 고통 있는 사랑의 싹이 행복의 원천이다...아픔 있는 사랑으로 행복하게 살다가 천국에서 만나자” 그리고 “예수 믿으면, 사는 게 편안해. 죽는 건 더 편안해”라며 조만간 천국으로 이사할 것을 염두 한 것처럼 가족들, 국민과 한국교회 크리스천들에게 조언을 남겼다. 그는 2021년 7월 8일에 93세의 나이로 하나님 품에 안겼다.

최영섭 해군 예비역 대령은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해방과 분단 그리고 군인으로서 한국전쟁에 참전한 근대사의 산증인이었다. 위기의 대한민국을 구하기 위하여 몸소 나라를 지켰던 그는 최근에 천국으로 이사하였다. 신앙인으로서 참군인 정신으로 일평생 국가안보와 애국의 삶을 살았다. 최영섭 천국시민을 추모하면서 그가 남긴 나라사랑과 신앙을 영적 유산으로 물려준 고귀한 삶의 발자취를 잊지 말고 현재 겪고 있는 국가의 비상 상황을 지혜를 모아 함께 극복하자.

최 선(Th.D., Ph.D.)

전 안양대학교 외래교수

전 건신대학원대학교 조교수

극동방송 수요일 은혜의 단비 칼럼니스트

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세계로부천교회 담임목사

▲저서: 「희망 아름다운 세상」, 「존낙스의 정치사상」,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그대 고마워라」, 「소중한 만남」, 「기독교 집단상담」, 「김치선 박사와 이성봉 목사의 삶과 신앙」(2018 킹덤북스)외 전자책 15권 이상

한국문학방송작가회 310명 출간 작가 중 7위 작가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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