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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83)

기사승인 [526호] 2021.09.15  14:4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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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쓸쓸한 인생 ㅡ 세라핀>

               위 영  (본지논설위원,'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넓고 푸르른 초록 들판이다. 우람하고 잘생긴 나무 한 그루가 푸르른 들보다 더 짙은 초록으로 서 있다. 중년의 여인이 치렁치렁한 치마를 걷어 올리며 허위허위 나무를 오른다. 그녀는 그 나무 중턱쯤 자리를 잡고 앉아 가만히 먼 곳을 바라다보았다.
 꼭 같은 들판은 아니지만 초록 들판이다. 노년의 여인이 뒤뚱거리며 나지막한 의자를 손에 들고 나무를 향해 간다. 어디선가 옅은 바람이 불어와 풀잎을 쓰다듬고 나뭇잎들을 만지작거린다. 힘겹게 나무 가까이 다가선 여인, 나무 밑에 의자를 내려놓고 가만히 앉는다. 나무를 스치고 여인을 스치는 바람이 보인다.  


 직접 각본을 쓰고 메카폰을 잡은 ‘마르탱 프로보스트’의 속 깊은 의도가 아닐지라도 영화 ‘세라핀’에 나오는 두 장면은 인생이 지닌 쓸쓸함을 직시하고 있다. 나무는 그녀의 꿈일 수도 있고 현재일 수도 있으리. 젊을 때는 나무 위를 거침없이 오르기도 했다지만 이젠 그 나무 곁에 다가가기도 힘겹다. 겨우 다가서더라도 그저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세라핀’ 은 상리스에 살았던 ‘세라핀 루이’라는 나이브아트 화가를 그린 영화이다. 나이브 아트란 소박파라고도 불리는데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화가들의 작품 경향을 말한다. 사족이긴 하지만 우리 모두 나이브 아트속에서 살아가는게 아닌가, 인생이란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은 나만의 대작을 그려가는 화가니까, 그녀는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해주는 대가로 받은 작은 돈으로 먹고사는 처지이다. 집세를 내지 못하면서도 화구점에 들리곤 한다. 그녀는 세상 모든 것에서 색과 재료를 얻는다.

짐승의 피 들판의 꽃, 교회의 촛농, 등, 당연히 그녀만의 독특한 색채와 질감이 있을 터, 커다란 체구에 표정 없는 중년의 여인(올랭드 모로분)은 그림을 그릴 때 빛이 난다. 그림을 다 그리고 나서는 노래까지 흥얼거린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이 영화에서는 세라핀 외에도 피카소와 브라크 루소를 발굴했던 화상 빌헬름 우데가 등장한다. 그는 그림에 대한 독특한 시각과 심미안으로 그녀의 하녀였던 세라핀의 그림을 보는 순간 그녀에게서 천재성을 발견한다. 세라핀은 글을 쓰고 있는 우데가 우울해 보이자 “슬플 때면 시골 길을 걷는다”고 말한다. 우데는 그녀의 말에 따라 여기저기 정처 없이 시골길을 걷다가 세라핀이 강물 속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부스스한 머리를 위로 틀어 올린 뒷모습, 등살은 이미 쳐지기 시작했고 울퉁불퉁하다. 어지간하면 초록 나무 숲에서  목욕하는 여인이라면 섹시하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신비롭기라도 해야할텐데... 그런데도 왜 감독은 그녀가 목욕하는 장면을 넣었을까, 그녀의 내면이 빚어내는 찬연한 그림과 그녀가 지닌 외면의 차이를 통해 새로운 자유의 다리를 만들고 싶었을까, 혹 근원적인 미, 그 관념에 대한 손사래 같은 것일까, 아니면 삶 속에서 무수히 부딪히는 쓸쓸함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었을까,   


 전시회까지 계획하던 시점에 전쟁이 발발하고 세라핀과 우데의 기약 없는 세월이 시작된다. 오랜 세월이 흐르고 다신 만난 그들, 그동안에도 쉬지 않던 세라핀의 작품은 놀랍게 성숙되고 (영화 속에서는 실제 세라핀의 그림이 자주 등장한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긴다. 이제까지의 삶과 다른 생활이 펼쳐지자 세라핀의 그림을 향한 광기는 점차 그 색채를 달리하게 된다. 그러나 유럽에 불어닥친 대공황으로 말미암아 우데의 지원이 끊기고 결국 세라핀은 정신병이 생겨나 1942년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어쩌면 자신도 잘 모르는 그림속 세상에 발을 담근 그녀, 그런 그림이 작품이라고 보아준 사람의 시선 속에서 그녀는 다시 태어난 듯 하다가 결국 그림이 준 정신병(내게는 적어도 그렇게 보였다)속에서 혼자  세상을 떠나간 여인, 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점차 그림자가 되어가는 엔딩이 그렇게 쓸쓸할 수 없었다.   내 글 아래 어느 분이 썼다. ‘글은 자기를 만나는 길이라고 했는데 님은 저 멀리 가을 길을 잘 달려가십니다’ 흰 이슬 맺히는 백로 지나고 차가운 이슬 내리는 한로 가는 길에 들어섰다. 
   

실제 영화속에 나왔던 세라핀의 그림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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