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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76)

기사승인 [519호] 2021.06.09  16: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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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미다

                                      위 영

                 (본지논설위원'속삭이는 그림들 ' 저자)

오랜만에 재미있는 소설을 읽었어요. 두 권으로 된 필립로스의 <미국의 목가>  소설 맛이 확 나던걸요. 뉴저지에 사는 키 190센티미터의 잘생기고 사업에 성공한 유대인, 세상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미덕을 한 몸에 지닌 전형적인 신사가 주인공이죠. 양파 대파 마늘 등의 양념에서 벗어나 나물 찌개 볶음 요리를 뒤로하고 낯선 사람의 생으로 가는 길을 걸으니 마냥 흥미롭죠. ‘에브리 맨’이란 글에서 그는 말합니다. “영감을 찾는 사람은 아마츄어이고 우리는 그냥 일하러 간다.” 단순하면서도 통찰력 있는 문장이죠. 명료해서 마치 해 질 녘의 광선 같아요. 점점 수사적이거나 모호한 문장들이 싫습니다. 
 사람은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보여주려고 단단히 여미고 사는데 소설은 내면을 파헤칩니다. 좋은 소설일수록 이면을 들여다보는 힘이 강하죠. 그래선지 소설을 천박한 장르라고 이야기한 평론가도 있더군요. 사람의 모든 것을 디테일하게 그릴 수밖에 없어서 그럴 거라는 거죠. 
 스위드와 아주 대응적인 인물로 말을 더듬는 딸 메리가 있습니다. 메리로 인해 파생된 숱한 사건들은 폭발하는 화산이나 흘러내리는 마그마처럼 그의 삶을 침범해 들어오는데도 그는 아버지라는 위치에서 벗어나지 않고 자신의 자리를 굳건하게 지켜냅니다. 가문은 서서히 몰락해가고 사랑하던 아내는 바람을 피우고 암소 목장도 사위어가고 강하던 스위드는 虛하기 그지없는 사람이 되죠, 메리를 보며 든 생각인데 진화는 생물체의 변화보다 인격체의 변화에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부여 박물관에서 백제의 토기를 보았는데 세상에 그 토기들의 무늬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오래전의 백제 금동 대향로는 얼마나 아름답고 섬세하든지, 이 시대라도 만들기 어려운 작품이던걸요. 그런 오래전의 유물을 보면 사람은 사람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되죠. 
 작가는 메리도 스위드도 그리고 그들 곁의 어떤 사람들도 편들지 않고 그저 그들의 삶을 기록해요. 어쩌면 작가나 독자는 둘 다 아주 영리한 사람일 수도 있어요.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는 대신 누군가의 내면을 대신 들어내죠. 그러면서 위로하고 위로받는 거예요. 이런 사람도 이러니 우리는 서로를 유추할 수 있지 않겠니. 이해할 수도 있지 않겠니. 작가는 자신의 일생을 그런대로 괜찮았다고 자평을 했더군요. 그러면서 하는 말 ‘자신이 가진 것으로 최선을 다했다’구요. 단순한 이야기지만 잘생긴 사람처럼 뒤돌아보게 하는 글입니다. 나는 저런 말을 할 수 있을까,


 독서를 통한 고통의 체험은 아주 좋은 백신이죠. 홍길주는 “세상에는 함께 독서 할 만한 사람도 없고 천하에는 독서 하지 못할 사람도 없다”고 했습니다. 뛰어난 글을 지은이는 모두 다 세상을 떠났으니 더불어 독서 할 사람이 없으나 세상의 모든 사람, 존재들은 지극한 문장이니 독서 하지 못할 사람도 없다는 이야기죠. 그는 나뭇잎을 읽는다는 독엽讀葉 이란 글도 썼는데....사실은 이미 저두 그렇습니다. 讀葉뿐 아니라 讀木 讀實 讀根을 하죠. 그것도 아주 자세히요. 내가 일부러 그리하려고 해서 된 것은 아니었어요. 마치 이른 봄에 복수초 피어나고 바람꽃 솟아난 후 생강나무에서 노란 꽃 솟아나는 것처럼 그렇게 자연스럽게 되더군요 물론 읽어내는 깊이는 천양지차이겠지만 말이죠.  


 유월입니다. 어느 순간 숲 그늘이 확 짙어졌습니다. 시춘목인 산수유가 주위를 연노랑으로 물들이는 것을 여러 해 산수유 마을을 찾아다니다가 알게 되었어요. 감나무 아래서는 연두색이 펼쳐지고 며칠 전 대구를 다녀올 때 보니 주유소 곁 덤불 속에서 무르익은 초록이 새어 나와 주변을 물들이는 것을 보았어요. 
 틀림없이 우리도 주위 사람들에게 우리들의 색으로 스밀 거예요. 
 우리가 지닌 색은 무슨 색일까요.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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