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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영 목사의 Book-Life

기사승인 [518호] 2021.06.03  11:3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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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정한 편견

                   정원영 목사

                 (제일교회 담임)

‘손홍규’님의 산문집 『다정한 편견』(출판:교유서가)에서 일부를 옮기며 상념에 젖어봅니다.

어느 해 겨울이었다. 서울에 폭설이 내렸던 날이다. 몇십 년 만의 폭설이라 눈이 무릎까지 쌓였고 사람들의 눈동자에도 두려움과 놀라움이 동시에 떠올랐다. 그때 나는 충무로 어느 식당에서 배달을 했다. 군을 제대하고 대학에 복학하여 한 학기가 지난 때였다. 눈 탓이었는지 배달 주문이 여느 날보다 많았다. 주인아저씨와 나는 숨 돌릴 겨를도 없이 쟁반을 이단 삼단으로 겹쳐 쌓아 어깨에 올린 채 뛰다시피 배달을 했다. 마음은 급한데 쌓인 눈이 발목을 붙들고 놓아주지 않으려 했다. 그 탓에 어느새 두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러다 기어이 눈길에 미끄러져 쟁반을 와장창 길바닥에 엎어버리고야 말았다. 하얀 눈밭에 흩뿌려진 된장찌개와 김치찌개가 꼭 나의 내면인듯싶어 수치스럽기까지 했다. 그처럼 얼룩진 삶을 보는 듯해서였다. 우선 내 하루 치 급료보다 비싼 음식값이 걱정스러웠다. 거기다 깨진 뚝배기까지 변상하게 된다면 여러 날 허탕을 친 거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이런 내 복잡한 심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식당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나를 보자마자 이렇게 물었다. 괜찮니? 그 순간 나는 정말 괜찮았다. 그이들이 바로 그처럼 묻지 않았더라면 나는 무척 아팠으리라! 넘어지면서 바닥에 부딪힌 무릎이며 정강이며 팔꿈치며 손바닥이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를 그이들이 가르쳐 주었다.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무엇을 물어야 하는지를...

가장 적절한 말, 듣고 감사하고 미안해 할 만한 말을 할 수 있다면

그렇습니다. 눈밭에 쏟아진 음식, 함께 쓰러진 청년의 마음이 가슴 깊이 다가옵니다. 주인이라는 사람이 손해부터 생각했더라면 어떠했을까요? 주인아저씨와 아주머니의 마음이 고마울 뿐입니다. 교회 모임에도 상시로 늦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이럴 때 신앙이 부족해서 그러는 것처럼 쏘아붙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 아저씨와 아주머니와 같은 마음이면 어떠할까요? 가장 적절한 말, 가장 위로가 되는 말, 듣고 감사하고 미안해 할 만한 말을 할 수 있다면요? ‘서둘러 왔네! 이마에 땀 좀 봐! 수고했어! 그러잖아도 넘 넘 기다렸어.’ 진정한 마음으로 한번 두 번 아니 세 번 네 번만 이렇게 하면 늦게 오라고 해도 늦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음을 열고 다가오는 그런 사람이 되지 않을까요? 주님과 교회와도 더 가까워져 있지 않을까요?

젊은 시절, 고등부 전도사로 사역할 때의 일입니다. 교회에 띄엄띄엄 오는 아이라고 했습니다. 주먹 크기가 장군감이었습니다. 아이들이 슬쩍슬쩍 피하곤 했습니다.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는 아이였기 때문입니다. 처음 이 아이를 만나던 날, 예배가 이미 시작되었는데 부스스한 머리에 슬리퍼를 신고 나타났습니다. 그래도 얼마나 반갑던지 어깨를 두들겨 주며 “잘 왔다. 그래, 고마워, 그런데 나보다 덩치가 더 크구나! 큰 사람들은 큰 사람들끼리 뭐 통하는 게 있는데 말이야! 하하하” 웃으며 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잘 왔어, 고마워, 그런데 다음 주에는 조금만 더 일찍 와라... 우리같이 덩치 큰 사람들이 좀 느리긴 해, 그치? 그렇지만 조금만 더 빨리 와 잉!” 그랬더니 어느 날부터인가 일찍 오기 시작했습니다. 졸업한 후 한동안 교회에 나오더니 어느 날부터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에게서 듣게 되는 소식이 있었습니다. 거리에서 우연히 만나면 교회 친구들을 너무너무 반가워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고등부를 잊지 못한다고 합니다. 저도 이제 그 교회를 떠난 지 꽤 되었기에 그 아이 소식을 듣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아이 마음에 교회가 있고 예수님이 계실 거라는 것입니다. 주님과 교회와 계속 관계를 맺고 있을 것입니다. 적절한 말과 두들겨 준 어깨, 그리고 주님과의 관계, 주님이 기뻐하실 우리의 본분입니다. 주께서 여러분과 함께하십니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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