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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32)

기사승인 [518호] 2021.06.02  18:4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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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운 박사(교회사)

본지 논설위원전 성결대 총장성결대 교수

Ⅲ. 한국성결교회의 신학적 배경

1. 요한 웨슬리의 부흥운동과 19세기 성결운동
 또한 1747년에는 아일랜드, 1751년에는 스코틀랜드를 각각 방문하여 설교하였고, 1760년에는 북미에 선교사를 파송하기도 하였다. 웨슬리는 이러한 선교의 과업을 달성하기 위해 매년 약 12,800㎞, 평생 약 40만㎞의 거리를 여행하였다. 이러한 웨슬리의 부흥운동은 당시 수많은 사람들에게 과거의 죄악된 생활에서 탈출하여 커다란 회심을 일으키는 영적인 변화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이처럼 놀라운 부흥사역을 가능케 하였던 웨슬리 신학의 중심은 온전한 ‘성화’와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대한 교리를 강조하는 성결운동에 있었다. 그는 종교개혁자들의 사상을 견지하면서 어느 한쪽의 극단에 치우치지 않으려 하여, ‘성화’라는 중세의 전통과 ‘신앙’이라는 종교개혁의 전통으로 균형을 이룬 종합적인 신학적 토대 위에 서 있기를 원했다. 웨슬리는 초대 교회 교부들 중에 이그나티우스(Ignatius)와 사이루스(Ephraem Syrus), 클레멘트(Clement), 마카리우스(Macarius) 등의 문헌연구와 그 밖의 프란시스(Francis), 토마스 아켐피스(Thomas A Kempis) 같은 카톨릭 신비주의 전통들을 통하여 성서의 중요한 주제가 성화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그동안 성화의 교리는 종교개혁자들이 충분히 취급하지도 못하고, 또한 강조하지도 못하여 간과된 교리였는데, 이를 웨슬리가 재발견하여 강조한 것이다.
  웨슬리는 중생을 성화의 첫 단계로 보았다. 이것을 그는 초기성화로 보았는데, 중생 때로부터 점진적인 성화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성화를 타락한 하나님의 형상의 회복으로 보는 점에 있어서 웨슬리는 칼빈(Calvin)과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칼빈과 더불어 루터(Luther)나 쯔빙글리(Zwingli)와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현세에서의 온전한 성화를 인정하지 않았던 것에 반해 웨슬리는 온전한 성화가 가능하다고 주장하였다. 즉 구원이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하고, 또한 완성된다는 점에서 웨슬리는 종교개혁자들과 전적으로 그 의견을 같이 하였지만, 성화 과정의 성격에 있어서는 서로 이해를 달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웨슬리는 구원을 중생이라는 일회적 사건으로만 보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은총의 역사로 인해 중생 체험 이후 자신의 무능과 자기 안에 아직도 남아있는 죄를 깨닫고 믿음으로 받는 ‘제2의 축복(Second Blessing)’, ‘제2의 은총(Second Blessing)’, 또는 ‘온전한 구원(Full Salvation)’,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이라 불리는 두 번째 은총의 경험이 가능함을 주장했다.
  웨슬리의 성결론에 따르면 신자가 경험하는 구원의 과정은 첫째, 회심 또는 중생이고 둘째는 그리스도인의 완전 또는 성결이다. 첫째 체험에서 신자는 그의 자범죄를 사함 받는다. 그러나 아담의 타락 이후 유전된 죄성(罪性)은 남아있는데, 이는 제 이차적 축복인 성결의 은혜에 의해 제거 받는다는 것이다. 그는 중생 이후에 오는 또 하나의 순간적인 체험인 “온전한 성화(Entire Sanctification)‘를 주장함에 있어 ‘완전한 사랑(Percect love)’, ‘그리스도인의 완전(Christian Perfection)’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하였는데, 이 완전이라는 용어로 인해 그의 사상에 동조하지 않는 많은 이들로부터 비난과 질책이 담긴 비평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웨슬리에게 있어서 그리스도인의 완전은 절대적 의미의 완전, 즉 다시 타락하여 죄를 지을 가능성이 전혀 없는 ‘죄 없는 완전(sinless perfection)’은 아니었다. 웨슬리는 완전의 교리에 대해서 자신이 저술한 『그리스도인의 완전에 관한 평이한 해설(A Plain Account of Christian Perfection)』을 통해 이를 분명하게 설명하였다.
 
  “모든 거룩한 사람은 성서적 의미에서 완전한 사람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절대적 의미의 완전은 이 지상에는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더 이상 계속적으로 발전할 여지가 없는 최고 등급으로서의 완전은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높은 수준에 도달했더라도 아무리 훌륭하게 완전해졌더라도 그는 계속해서 은혜 안에서 성장해나가야 한다. 다시 말해서 그의 구원자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그를 아는 지식에서 매일 전진해야 되는 것이다.”
                                              

요한 웨슬리의 집회 모습(사진출처=김동주, 기독교로 보는 세계역사 )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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