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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75)

기사승인 [518호] 2021.06.02  17:2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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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홀한 서정

                           위 영

          (본지논설위원,'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언니, 장미의 계절이네. 담 위에서 굽어보는 장미를 만나면 저절로 코를 킁킁거리곤 해. <배고프다고 울어대는 장미/울 때마다 송이송이 향기를 뿜어내는 장미>라는 시 구절을 읽은 후 지금 네가 뿜어내는 것이 울음이라고? 가만히 묻기도 하지, 처서 무렵이면 풀냄새가 유별나게 많이 나는 곳이 있어. 아, 풀냄새 참 좋네, 하며 둘러보면 십중팔구는 풀이 베어져 있더라고, 풀냄새는 풀의 비명이며 상처인 거야. 그러니 장미 향기도 울음일 수 있겠지. 향기도 생김새가 있어, 굵고 진한가 하면 가느다랗게 톡 쏘기도 하거든, 장미의 향기는 가루처럼 분분히 날아오곤 해, 내 손이 섬세하다면 다가오는 장미 향기를 붙잡을 수도 있을 것 같아. 우리에겐 혹독한 삶의 서사가 이어지고 있지만 짙은 초록 가운데서 선명하게 피어난 장미는 황홀한 서정이야.

장미에게 가시가 생긴 이야기를 언니는 아려나? 원래 장미에겐 가시가 없었대. 맨몸에 부드러운 가지를 지닌 장미가 한 아이와 사랑에 빠졌지. 아이도 지극정성으로 장미를 사랑하고 장미도 아이를 사랑하고, 어느 해 생일선물로 아이의 부모가 고슴도치를 선물했어. 아이는 고슴도치와 다니기 시작했어. 장미야, 숙명적인 금줄이 있었지. 다가서지 못하고 오직 다가오기를 기다려야 만 하는, 아이는 고슴도치를 데리고 숲에도 가고 강에도 가고 어디든 데리고 다녔지. 장미를 잊고 고슴도치와 사랑에 빠진 거야. 어느 날 숲에서 고슴도치를 잊어버렸어. 커다란 나무 아래 고슴도치의 털이 수북하게 떨어져 있었어.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만 거야. 슬픔에 젖어 있던 아이에게 어느 순간 장미가 생각났어. 아 장미……. 장미는 홀로 시들어가고 있었어. 아이는 장미에게 물을 주었지. 장미는 다시 싱싱하게 살아났어. 그러더니…. 세상에, 장미에서 가시가 솟아나는 거야. 고슴도치가 지녔던 가시가, 아이를 위로하기 위한 장미의 몸짓이었지.

언젠가 히말라야를 그린 다큐에서 어느 젊은 셀파가 그러더군, 셀파가 되려면 눈 속에서 멈추는 것부터 배워야 한다고, 실제 아버지도 셀파고 자신도 셀파가 되려는 젊은이는 아주 높은 봉우리에서 거침없이 미끄러져 내려오다가 멈추기를 연습하고 또 연습하더군. 올라가는 게 어려운 게 아니라 내려오는 것이, 그것도 멈추는 것이 저리 어렵구나. 생경한 의미로 받아들여선지 오래 내 안에 자리한 풍경이야.

마음이 鬱하거나 답답하면 시를 읽곤 해. 고통 없는 시는 거의 없다고 봐. 새가 노래하는지 울음을 우는 것인지 알 수 없듯이 생의 찬가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 고여 있는 것은 슬픔이나 고통이거든, 엘라 휠라 윌콕의 詩 좀 봐 <웃어라. 온 세상아 함께 웃을 것이다/울어라 너 혼자 울게 될 것이다/ 슬프고 오래된 이 지상 /환희는 빌려와야 하지만 근심은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슬프고 오래된 이 지상 속에 가득한 것은 근심이라는 거지. 이런 시를 읽으면 숨이 쉬어져. 시가 마치 산소라도 되듯이 말이지, 산소도 두 얼굴이 있어. 생명을 존재하게 하나 대기압 이상으로 산소가 많으면 중추신경계와 뇌에 치명적으로 작용한다는 거야. 그리고 결국 활성 산소라는 산소종을 만들어 세포를 죽이며 노화시키는 역할도 한다는 거야. 생의 이면이 보이는 대목이지.

비 뿌리는 차창을 통해 갓 심어진 모를 보았네. 빼꼭히, 아주 가차이, 서로 기대고 있던 모들을 거침없이 나눠 겨우 서넛씩 차가운 물에 심어 놓은 거야. 아니 이게 무슨 일이람, 다 어디 간 거야. , 하우스 안의 바람과는 비교할 수도 없겠지. 차갑고 외롭고 쓸쓸할 거야. 그래도 결국 저 모들은 여무지게 뿌리 내리겠지. 마치 우리들이 온 힘을 다해 살아가듯이 자랄 것이고…. 벼 패기 전 그 아름다운 진초록의 세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줄 거야. 물론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고,

황홀한 서정 속에 깃든 혹독한 서사가 보이는 시절이야.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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