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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교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29)

기사승인 [515호] 2021.04.29  11:5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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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준 편 - 한국성결교회 창립자 김상준의 생애와 사상

정상운 박사 (교회사)

본지 논설위원,전 성결대 총장, 성결대 교수

Ⅱ. 김상준의 신학사상

이것에 대해 이응호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金相濬 牧師가 暫時도 누울 時間이 없는 復興講師 生活에서 이렇게 성경에서도 黙示的인 것을 골라 硏究한 것은 日帝의 총부리 아래에서 呻吟하는 韓國民族, 그리고 韓國敎會의 聖徒들을 慰勞하고 希望을 주어, 한편으로는 日帝를 詛呪하기 爲한 目的이 숨어있었던 것이다.”

한국성결교회의 창립의 주역 중의 한사람이었던 김상준 목사는 교단 창립(복음전도관)의 한 멤버의 역할로 끝나지 않고 한국성결교회의 초기 신학 형성과 방향 설정에 기초석을 제공하였다. 그도 정빈과 마찬가지로 1917년 아쉽게도 처음 시작부터 힘써서 일구었던 성결교회를 떠나 장, 감 교단을 비롯하여 초교파적으로 복음전도와 부흥운동에 매진하였지만, 복음전도관 체제에서 1921년에야 목회 본위의 교단으로 전환한 성결교회의 교리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김상준의 3대 저서인 『사중교리(四重敎理)』, 『묵시록강의(黙示錄講義)』, 『단이리서강의(但以理書講義)』는 16세기 루터가 나타나서 중세 카톨릭교회의 상부구조의 잔해를 청산한 개혁의 토대 위에 칼빈이 신학적 기둥을 세운 것과 같이 정빈이 일구어왔던 초교파적인 선교 본위의 터 위에 사중복음이라는 한국성결교회 신학의 초석을 놓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다하였다. 그리고 일제 강점시 특별히 김상준의 저술을 통한 전천년설 종말론 강조는 한국성결교회로 하여금 일제의 극악한 폭정과 탄압을 감내하고 신사망령에 저항하는 힘을 가져다 주었다.

지금까지 김상준 목사의 사상을 살펴본 바 간략히 정리하자면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김상준 목사를 통하여 한국성결교회는 비로소 단순히 부흥회 전도표제로 일관된 전도 본위의 구령단체에서 벗어나, 종말론을 중심으로한 사중복음의 교리신학을 가진 교단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이 점은 한국성결교회가 감리교와 같이 칼빈주의와는 대조적으로 웨슬레안 신학적 배경을 서로 공유하고 있지만 감리교와는 전혀 다른 교단적 판별성을 가지고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따라서 사중복음으로 인한 교단 신학의 형성은 한국교회사에서 한국성결교회의 신학적 위상을 공고(鞏固)히 하고, 오늘에 이르기 까지 타교단을 복음주의로 유도하는 결과까지 낳게 하였다. (계속해서 다음호 부터는 ‘성결교의 정체성의 뿌리를 찾아서- 한국성결교회의 신학적 배경’이 연재됩니다.)

김상준 목사의 『但以理書講義』 (1932년)의 본문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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