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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코로나-19와 한국교회, 연속토론회 시즌1

기사승인 [514호] 2021.04.21  17:2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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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교회의 민낯 정직하고 아프게 성찰하다”

교회를 삼킨 이념(2)

제2막은 해방 후부터 80년대 민주화시대까지로서, 한 마디로 한국 기독교의 전성기다. 30년에 걸쳐 교인 수가 30배로 늘어났고, 세계적 규모를 자랑하는 대형교회들이 설립되었으며, 백만 명 이상이 모인 여러 차례의 대형 집회가 성공적으로 치러졌다.

한국기독교는 비록 친일청산에서는 실패하였으나 반공과 산업화라는 국가적 어젠다의 기수로서 역할을 수행하였다. 기독교의 표식인 십자가와, 반공과 산업화를 상징하는 태극기, 그리고 이 둘의 수호자 성조기의 조합이 이 시대를 보여주는 상징이다. 필자는 이 시기를 ‘유사(類似) 크리스텐덤’이라고 이름 붙인 바 있다.

우리나라가 크리스텐덤(기독교 국가)이었던 적은 없었으나, 해방 후부터 약 3,40년 동안 기독교는 한국사회에서 크리스텐덤 못지않은 특혜를 받으며 국민적 호응을 얻었다. 제3막은 민주화를 달성한 8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다.

기독교의 성장이 둔화되고 세력이 약화되었음은 물론, 이때부터 기독교는 한국 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적 과제로부터 한국 기독교 역사의 구분에 관하여서는 멀어져서 주변부로 밀려나기 시작하였다. 제2막에서의 기독교의 번성을 가져다 준 요인들이 오히려 침체의 원인으로 작용하기 시작하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와 소련의 해체 이후 전 세계적으로 반공주의가 퇴조하였고, 한국사회에도 영향을 미쳤다. 산업화의 문제점으로 소득과 재산의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는데 기독교는 기업과 자본가의 입장에만 섰다. 사회는 다원화되어 가는데 전통적인 가치와 윤리를 고집하고 있다. 요컨대 한국 사회가 보수와 진보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대다수 개신교 기독교인과 지도자들은 신학적 보수와 정치적 보수가 결합된, 이른바 ‘보수주의’의 한 축을 형성하였다. 기독교는 과거 반공·시장경제·한미동맹이라는 정치이념과 동일시되어 큰 부흥을 이루었기에, 그 영광을 놓지 못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를 맞아 새로운 정치이념을 상상하는 대신, 시계바늘을 뒤로 돌려 과거의 영광을 회복하고 싶어 한다. 전광훈을 따르는 어르신 성도들은 과거 국가의 수호자요 산업화의 역군이었는데, 그 영광과 명성을 부정당한 채, 가난과 질병에 시달리는 외로운 노후를 이어가고 있다. 그들이 보기에 현재 집권세력은 반공주의와 시장경제를 부정하는 사회주의자들이요, 기독교의 박해자들이다. 그들의 좌절과 분노가 전광훈의 에너지원이다.

전광훈은 단지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정치 선동가 정도가 아니라, 한국 기독교의 보수화를 상징하는 인물이다. 전광훈은 개인이라기보다는 하나의 현상이고, 그 영향력은 동심원을 그리며 한국교회 내에 편만하게 펼쳐져 있다. 중심에 가까울수록 인맥과 사상이 촘촘하고 멀어질수록 성기지만, 그 범위는 한국의 보수적 교회를 망라한다. 한 가지만 언급하자면, 전광훈이 대표로 활동하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를 설립한(1989년) 분은 영락교회 고(故) 한경직목사인데, 그가 바로 미군정과 한국전쟁 시기 반공운동의 선봉에 섰던 ‘서북청년단’의 가장 큰 후원자였다. 보수적 한국교회와 전광훈이 역사적으로 서로 깊이 얽혀 있기 때문에 쉽게 손절(損切)할 수 없다는 뜻이다. 현재 한국교회의 주류는 이렇게 역사 속에서 쓸쓸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교회의 미래에 미치는 악영향

그렇다면 한국교회가 이념과 완전히 결별하고 오직 신앙만을 추구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까? 기독교 신앙과 이념의 관계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기독교 신앙이 사회에서 의미 있는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하여서는 이념과 그 이념을 구현한 정치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기독교인들의 염원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는 것인데, 그 방식이 바로 기독교가 정치이념을 하위개념으로 두는 것이다. 우리 기독교의 역사를 잠간 살펴보면, 우리 조상들이 소용돌이치는 민족사의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구현하려 했는지를 알 수 있다. 기독교가 하나의 종교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마다 가장 하나님의 뜻과 가깝다고 생각된다.

구한말 기독교가 한국에 전래되었을 때 기독교는 개화파와 같은 길을 걸었다. 대다수의 기독교인은 기독교와 함께 전파된 서양의 문명과 정신을 수용함으로 기독교의 정의와 평등의 정신을 구현하려 한 것이다. 일제강점기 삼일운동을 비롯한 민족운동의 기반에는 민족주의와 융합한 사회진화론(social Darwinism)이 있었는데, 기독교가 바로 이 정치이념과 결합하여 ‘기독교민족주의’라는 독특한 사상을 낳았다. 해방 후에도 기독교는 이념과 깊은 관계를 맺었다. 북한에서는 조만식이 조선민주당을 창당하여(1945년 11월)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정치를 하려 하였고, 남한에서는 이승만이 기독교 입국론(立國論)을 주장하였다.

장동민 교수(백석대학교 기독교학부) dsglory3604@nate.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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