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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71)

기사승인 [514호] 2021.04.21  15:4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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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님께

                              위 영 

       ( 본지논설위원'속삭이는 그림들'의 저자)

난데없는 편지를 받아들고 놀라셨지요? 원래 이 편지란 글태가 별로 단점이 없는데 굳이 단점을 찾자면 일방통행의 경향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보내면 공자님은 무조건 받아 읽어야 되니까요.(可呵) 상갓집 개라는 소리를 들으셔도 얼굴 표변 없으셨던 공자님과 한자리에 설 만한 계제도 아닌 제가 이리 글월을 든 것은 언감생심 감히, 깊은 이야기가 있어서가 아니라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단어 하나 때문입니다.

소생 워낙 불학 무식하여 유가의 법을 깨닫기는커녕 깊이 알 수 없었으나 유명한 논어 <위정편(爲政篇)〉의 글은 단편적으로 주워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며칠 전, 어느 책에서도 인용되었더군요. "나는 나이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吾十有五而志于學), 서른에 뜻이 확고하게 섰으며(三十而立), 마흔에는 미혹되지 않았고(四十而不惑), 쉰에는 하늘의 명을 깨달아 알게 되었으며(五十而知天命), 예순에는 남의 말을 듣기만 하면 곧 그 이치를 깨달아 이해하게 되었고(六十而耳順), 일흔이 되어서는 무엇이든 하고 싶은대로 하여도 법도에 어긋나지 않았다(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겨울 가고 봄 오는 무렵이라선지 이순耳順이 새뜻하게 다가왔습니다. 학문에 뜻을 두지도 못했고 이립은 기억도 나지 않으며 여전히 모든 것들에 미혹 중이고 지천명은커녕 식구들 말도 이해하지 못하는 데도 예순이 넘어서니 이순 앞에서 머뭇거리게 되더란 말이지요.

기실 육십 줄에 들어서니 뒤도 보이고 앞도 조금씩 보이더군요. 그래서 들은풍월로 ‘너도 이순이니 인제 귀가 순해져야 할 나이야. 니가 그래도 듣기는 좀 하지?’ 혼잣말할 때도 있었거든요. 귀가 순해진다는 이순을 다른 사람 말을 잘 듣는 것으로 해석한 거지요. 공자님 공부를 많이 한 어느 분은 “귀로 들으면 그 오묘한 뜻을 안다”고 하더군요. 아니 귀로 안 듣는 소리도 있던가요? 물론 아집과 단견이 가득 찬 제 협량 속에서도 耳香이 생각나긴 했습니다. 아주 고요할 때 다가오는 한란의 향기 말입니다. 향기를 코가 아닌 귀로 듣는다는 것은 논리를 벗어나 있으니까 그만큼 자유로운 공간과 함께 형언키 어려운 깊이를 품고 있겠지요.

나이가 주는 무게가 제법 무겁습니다. 보이는 것도 많고 이 사람 저 사람 생각이 헤아려지니 생각의 무게도 만만찮아 글쓰기도 어렵고 말하기도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현대는 선과 악의 구별선도 없어졌어요. 다수보다 소수의 목소리가 더 크고 보수 진보는 진영논리가 되어 편을 가르느라 눈이 빨개져 있습니다. 그러니 사회는 더 모르겠고 타인들은 벽이며 이젠 민주주의 뜻도 가물거리고 미래는 불확실할 뿐입니다. 이순이 되었는데도 이치를 깨달아 알기는커녕 생각에 생각을 골몰하는데도 아무것도 알 수 없어서 오죽하면 데카르트의 cogito와는 또 다른, ‘모르겠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를 적어 봤을까요.

그런데 공자님 혹시 말입니다. 공자님께서는 생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다르셔서 사람의 무지를 모르실 리가 없을텐데요, 나를 따르라 하기에는 공자님은 너무 먼 당신인 것 알고 계시지요? 철학도 나무처럼 세월의 더께를 품고 있는데 기원전에 사신 공자님의 단어가 지금도 적확히 적용될까요, 이순에 대한 해석 역시 사람마다 다를 수 있지 않을까요, 문득 욥이 주님께 아뢰는 말씀이 기억나는군요. “주의 날이 어찌 인생의 날과 같으며 주의 해가 어찌 인생의 날과 같기로” 아하, 그러고 보니 생명의 끝은 우리 모두에게 진리처럼 엄정하게 존재하네요. 보드라운 봄밤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혹 깊은 밤 저 홀로 꽂지는 소리라도 들릴까, 귀 기울이다가 耳順을 핑계 삼아 몇 자 아룁니다. 총총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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