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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윤실, 코로나19와 한국교회 연속토론회1

기사승인 [513호] 2021.04.14  18:2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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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교회의 민낯, 정직하고 아프게 성찰”

 

교회를 삼킨 이념

코로나 시대 한국 기독교와 이념

일반적으로 현재 보수·진보 양대 이념의 주류를 이루는 정파들의 시작을 1990년 ‘삼당합당’으로 보고 있다. 약 30여 년 동안 엎치락뒤치락 정권교체를 거치며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정치세력들이다. 두 이념의 대립은 우리 사회 각 분야를 보수와 진보로 양분하였다. 언론계, 문화계, 교육계 등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보수와 진보가 대립하고 있으며, 헤게모니를 장악하기 위한 투쟁이 일상화되었다. 기독교도 예외가 아니다.

삼당합당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기총)가 결성되었는데, 처음에는 보수적 정치참여보다는 복음주의 교회의 대정부 창구 역할을 위한 목적이었다. 보수적 한기총의 창립으로 한국 교회도 본격적으로 진보적 기독교연합기구인 한국교회협의회(NCCK)와 대립적 구도를 형성하게 되었다.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은 한국 기독교의 보수·진보 대립의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다는 사실이다. 7,80년대만 해도 ‘보수’ 혹은 ‘진보’라는 단어 대신 ‘에큐메니칼’과 ‘정통주의’ 등의 용어가 사용되었다. 에큐메니칼 운동을 둘러싼 대립은 1950년대 말부터 지속된 것으로서, 주로 기독교 내부의 신학적 이슈 중심의 대립이었다.

정통주의자들은 성경의 무오성과 동정녀 탄생이나 부활 등 초자연적 구원을 중요시하는 반면, 에큐메니칼 진영에서는 성경비평을 인정하고 진화론을 받아들였다. 정치적으로는 전쟁 직후인지라 양측 모두 강한 반공주의를 표방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 양측은 민주화운동이나 ‘산업선교’ 등 정치적 문제로 갈등을 겪기 시작하였으나, 지금처럼 정치적으로 첨예하게 대립하지는 않았다. 정통주의자들은 정교분리를 이유로 정치 문제에 참여하기를 꺼려하였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2002년 참여정부의 출현과 더불어 한국교회 내의 신학적 보수·진보 대립이 정치적 보수·진보 대립과 맞물리는 현상이 일어났다.

2000년대 초반 ‘뉴라이트’ 운동이라는 시민운동 형식으로 시작된 보수적 기독교의 정치 참여가 점차 확대, 심화되었다. 2003년 3월 1일, 뉴라이트 단체들이 주최하고 수만 명이 참여한 “반핵반김 자유통일 삼일절국민대회”에서, 김대중-노무현정부의 햇볕정책을 비판하고, 한미 간 전시작전통제권을 유지하자고 주장하며, 사립학교법을 반대하였다.

신학적 보수와 정치적 보수가 맞물린 기독교 보수주의가 전면에 등장한 최초의 집회였다. 이 대회를 시점으로, 기독교와 태극기 그리고 가끔씩 성조기도 함께 등장하는 소위 태극기집회가 시작되었다.

‘뉴라이트’는 2007년 이명박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한 후, 2010년대에 들어서면서 유명무실해 졌다. 그러나 보수적 기독교인의 정치 참여는 각 교단과 기독교 단체들을 통하여 더욱 확대되어 갔다.

한기총 등 기독교 단체들이 중심축을 이루는 태극기 집회, 선거 때마다 이름을 달리하며 등장하는 기독교 정당들, 박근혜 정권 말기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논란, 매년 8.15에 반복되는 건국절 논쟁 등에서, 뉴라이트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보수적 기독교는 동성애, 이슬람, 세월호, 촛불혁명, 검찰개혁 등 중요한 사회적 이슈가 불거질 때마다 개입하여 보수적 의견을 강하게 표출하였다.

2020년부터 현재에 이르는 코로나19 시대는 한국교회가 이념적으로 우(右) 편향되었음이 분명히 드러나고 더욱 고착되는 시기였다. 마침 4.15 총선과 시기적으로 일치하여 보수적 기독교와 보수적 정당이 연대하는 양상을 보였다. 이들은 2020 총선이 어떻게 해서 기독교가 태극기 집회의 선봉에 서게 되었나? - 역사적 고찰

7,80년대는 기독교가 지성인들 사이에서 비판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 당시의 주요 사회적 의제는 ‘민주화’였는데, 민주화 운동에서 기독교가 도대체 무슨 역할을 했느냐는 비난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당시 교회는 영적인 일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정치 문제에는 간섭할 필요가 없다는 ‘정교분리’의 원칙을 반복할 뿐이었다. 정부는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니 순종해야 한다는 로마서 13장 1절∼7절 말씀을 금과옥조로 여기면서 말이다.

그러던 기독교가 어떻게 해서 반정부 운동에 앞장서게 되었나? 오랜 세월 정교분리 원칙을 고수하던 한국교회가 어떻게 적극적인 정치적 발언을 하게 되었으며, 마침내 “원래 교회는 정치하는 집단”(전광훈)이라고까지 주장하는 데까지 이르렀는가? 한국 기독교의 이런 이율배반적인 것처럼 보이는 행태를 이해하기 위하여서는 역사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독교의 역사를 거칠지만 다음과 같이 3막으로 구분해 보자. 제1막은 구한말과 일제강점기의 초창기 한국기독교로서, 외래종교인 기독교가 한국 토양에 정착한 시기다. 이 시기의 교회는 한국사회에 성공적으로 정착한 것은 물론, 반봉건·반외세라는 시대적 과제를 앞장서 이끌었다. 선교사들과 한국의 기독교인들에 의하여 근대식 학교가 세워졌고, 제중원을 비롯한 병원을 통하여 근대 의학이 도입되었다.

신분제 철폐와 천민 해방에 기독교가 큰 도움을 주었고, 애국심을 고양하는 데도 기독교가 선봉에 섰다. 3.1만세운동에서 기독교인이 주도적 세력의 하나였고, 20,30년대에도 의열단 운동을 비롯한 항일무장투쟁, 농촌운동, 저항문학 등에서 기독교인이 대거 참여하였다.

당시 기독교는 외래종교이고 교인의 숫자도 소수에 불과하였지만, 모순으로 가득한 세계사의 핵심과 맞부딪혀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

장동민 교수(백석대 기독교학부) dsglory3604@nate.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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