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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 (70)

기사승인 [513호] 2021.04.14  18:1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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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 예찬

위 영

(본지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 저자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약한 자의 슬픔을 돌아보는 때라고 쓴 글을 읽었다. 이 봄 유별나게 그 문장이 산수유 꽃대궁처럼 흔들거리며 다가온다. 나보다는 나 아닌 것을 바라보라는 뜻인 게지. 앞만 보고 걷는 걸음을 잠시 멈추라는 은유겠지. 주변을 살피고 땅도 하늘도 돌아보라는 환유일 것이다. 더불어 이제 새순을 내보내는 나무를 응시하라는 사인이기도 할 것이다.   
 오래 살아서 형형한 나무 앞에서는 그의 이름을 묻지 않을 일이다. 은행나무인지 느티나무인지 갈참인지, 떡갈인지 후박인지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다. 구별은 미미한 자들 사이에서 필요한 일이다. 조그마한 아이들 만나면 그냥 못 지나가듯, 오래오래 산, 나무를 보면 만져본다. 만져보고 싶다. 아이들에게 안녕, 인사하듯이, 아이들 손, 만져보고 싶듯이, 물론 아이들 손과는 너무나 다르다.

오래 산 나무는 마치 돌처럼 단단하다. 그러나 돌과는 달리 뭔가 따스하고 온화해서 생명이 주는 미묘한 느낌이 감지 된다. 로마 신화에서 참나무는 제우스 유피테르의 나무였다. 참나무는 신탁의 뜻을 여사제들에게 전하는 역할뿐 아니라 어느 시대엔가는 비를 내리는 신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아주 오랜 고대사회에서 참나무는 우주였고 기생해 사는 겨우살이는 고대인들에게 만병통치약이었다. 
 가끔 이스라엘에서 보았던 올리브 나무가 생각난다. (성경 속 감람나무는 올리브나무의 오역이다. 상록 교목에다 열매의 모양이나 색깔, 맛, 용도도 비슷하나 감람나무과이고 올리브나무는 물푸레나무과다) 겟세마네 정원에 있던 올리브나무는 거의 2천여 년을 살아왔다고 추정한다. 올리브나무는 보통 천 년 이상을 산다고 하니, 오래 산 나무들이 거의 그러하듯이 겟세마네의 올리브 나무들은 단순하게 아름답다 할 수 없는 자태였다. 그러나 아름다움이 심미안에서 파생되는 것이라면 지극히도 아름다운 자태였다. 호세아도 감람나무를 아름다운 의인으로 여겼다.

“나는 하나님의 집에 있는 푸른 감람나무 같음이여” 사람으로서는 경험할 수 없는 숱한 세월을 보내고 맞으며 묵묵히 서 있는 것 자체가 기적이 아닌가, 봄이 되면 새순을 내고 꽃을 피우며 열매를 맺는 것은 매해 우리에게 보여주는 부활의 모습이 아닌가,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시편 기자는 식물에 관심이 많은, 나무의 미덕을 아는 학자였을 것이다. 그래서 저리 적절한 비유를 쓸 수 있었을 것이다. 중심 줄기가 잘려도 뿌리만 살아있다면 올리브 나무는 새순이 나온다. 새순은 우리들의 아이다. 죽음을 품고 있는 부활이며 생명인 것이다.‘ 노아가 물의 심판 속에서도 가장 설레는 희망을 본 것은 비둘기가 물고 온 올리브나무 이파리였다. 

 
 세월을 가장 집약적이고 총체적으로 훌륭하게 보여주는 것이 나무가 아닐까, 시시한 나이테 이야기만이 아니다. 단순히 우리보다 더 긴 세월을 살아온 물리적인 시간 때문만도 아니다, 그보다 나무는 세월을 품는다. 세월은 나무에게 고여 있다. 소멸하는 것이 아니라 나무속에 켜켜이 쌓여간다. 가령 세월이 눈(雪)이라는 몸피를 지녔다고 치자. 그리고 그 눈이 어딘가 스며들 곳을 선택할 수 있다고 치자. 내가 혹은 그대가 하얀 눈이라면 어느 곳을, 누굴, 택하겠는가, 경망스러운 사람 자리에 스며들까, 흐르고 그저 흐르기만 하는 강으로의 낙하? 하면 흐르지 않는다고 하여 호수에 내려앉겠는가, 피었다 지는 꽃으로? 선하디선한 채소에게? 나라면, 아마 그대라도 필시 나무를 택할 것이다. 그 품 넓은 존재로 스며들 것이다. 변하면서도 도무지 변하지 않는, 누구든 품어주는 아늑함이 있는, 견고한 의지가 있어 기댈 수 있는, 그리하여 시간의 더께도 가없이 내려앉을 존재가 나무이다. 
 <벚나무의 가지를 부러뜨려 보아도/그 속엔 벚꽃이 없다/그러나 보라/봄이 오면/ 얼마나 많은/벚꽃이 피어나는가?/이뀨> 오래된 시인의 우미한 통찰력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겨우 아는 것은 ‘알 수 없다’는 것뿐이다. 
봄의 꽃들은 어디에서 오는가, 뉘 있어 저리 아름답게 피어나게 하더니 난분분 져내리게 하는가,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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