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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납북 순교자 김유연 목사 기념문집(17)

기사승인 [513호] 2021.04.14  18:0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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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족주의적 성결론 주장

10. 결론

지금까지 우리는 김유연 목사의 생애와 사역을 성결과 교회 그리고 민족적 관점을 조명해 보았다. 그가 태어나서 성장하고 사역했던 기간은 한국 근대사에서 가장 혼란스럽고, 또한 고통스러웠던 시기였다. 20세기와 함께 시작된 그의 생애는 제국주의의 침략 속에 국권을 상실하고, 종교로 상징되는 문화의 본질마저 억압과 변질의 위협에 처했던 참담한 현실을 온몸으로 통과해야 했다. 이런 맥락에서 그의 생애와 사상을 정리하고 평가해 보려고 한다.

먼저 김유연 목사의 생애는 민족의 수난 속에서 민족과 교회를 함께 품으면서, 그것들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 분투했던 헌신의 삶 그 자체였다. 그의 생애는 민족의 고난과 정확히 일치하며, ‘가시밭의 백합화’라는 성결교회 상징의 구체적 증거였다. 그가 신학교에 입학했던 1930년부터 신의주 동부교회에서 목회했던 1940년까지의 기간은 그의 생애에서 성공과 번영의 황금기였다.

하지만 무교정교회(현재 중앙교회)에 부임한 1941년부터 그의 생애에 대한 기록이 끝난 1951년까지는 그의 삶 자체가 수난과 고난의 연속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에 의해 목회하던 교회가 문을 닫게 되고, 성도들은 흩어졌으며, 자신의 목숨보다 소중한 자식을 처절한 가난 속에서 하늘나라로 보냈으며, 자신의 목숨마저 6.25 동족상잔에 의한 전쟁의 광란 속에 희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비극과 수난의 한복판에서, 그는 뛰어난 영성과 인품, 탁월한 지성을 갖춘 설교로, 성결교회뿐만 아니라 한국교회에 영향력 있는 눈부신 활약을 하고 사라진 ‘혜성’이었다. 교회와 교단 그리고 민족의 재건과 부활을 위해 그가 감당했던 사역과 역할은 가히 경이적이었다. 그는 불꽃처럼 살다, 영성의 혼을 남기고 간 성결교회의 고귀한 산 역사이다.

이 글을 통해 확인된 김유연 목사의 사상은 크게 ‘성결, 교회, 민족’으로 요약될 수 있다. 그가 한국교회 전체를 무대로 글을 썼고, 목회하며 인간관계를 맺었지만, 그의 사상은 철저하게 ‘성결’을 주장하며 ‘성결’을 중심으로 교육과 행동으로 모범을 보였고, 이것을 설명하고 전달하는 일에 매진하였기 때문이다.

성결교회 목사로서 그의 사상 곳곳에 웨슬리와 사중복음의 흔적을 남겼으며, 목회자와 설교자, 문인과 교육가, 교수로서 그의 사역에서 공간과 역할도 다양했지만, 그 저변에 ‘성결, 교회, 민족’에 대한 애정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그의 성결론은 성결교회의 전통적 입장에서 충실히 따르게 하였고, 동시에 조선교회와 민족이란 문화적, 시대적 상황을 충실히 반영함으로써, 자신만의 독창적 특성도 확보했다.

즉, 그는 인간이 거듭난 후에도 남아 있는 죄의 성격을 제거하기 위해 성령의 불이 필요하다고 외쳐 확신했고, 이것은 개인의 내적 변화뿐 아니라, 영혼구원과 사회정의로 확장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며 믿었다. 동시에 성결은 개인의 문제일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와 한국 국민 모두가 함께 누려야 할 축복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성결은 개인과 교회 그리고 민족이 직면했던 치명적인 문제에 대한 근원적인 해법이 될 수 있다고 김유연 목사는 확신했다. 이런 면에서 그의 성결론은 교회론적 차원을 넘어, 민족주의적 특성까지 견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국교회가 위기라는 이야기는 더이상 신선하지도, 충격적이지도 않을 만큼, 이제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성결교회도 뚜렷한 돌파구를 찾지 못한 채, 현상유지에 머물고 있는 것 같다. 길이 보이지 않을 때,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었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지난날에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냉철하게 분석하고 반성하는 것이 첫 번째 해야 할 일이다.

그 과정에서 미래를 위한 소중한 해법을 발견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성결교회와 한국교회 목사로서 김유연 목사를 성결교회의 미래를 위한 소중한 이정표로 제시하고 싶다. 서론에서 언급했듯이, 그동안 그의 존재 자체가 성결교회와 한국교회 안에서 철저히 망각되어 왔다. 그가 남긴 소중한 유산과 고귀한 업적에 비해, 그에 대한 관심은 이상하리만큼 미미했다.

민족의 고난 속에서의 성결인으로서 자신에 대한 정체성을 철저히 유지하며, 마지막 순간까지 민족과 교회를 위해 헌신했던 그리고 순교 당했던 그의 삶, 그리고 그가 전해준 민족주의적 성결의 유산이 다시 한 번 요동하여 한밤중에 깊은 잠에 빠져버린 한국교회를 향해 “광야의 외치는 소리”가 되기를 바라는 바이다. 비전과 열정을 상실했던 민족과 교회를 향해 온몸으로 외쳤던 그의 거친 외침의 음성이 사무치게 그리운 시절이 되었다.

“하나님의 종들아, 성령을 받으라, 문을 걷어차고 나오라!” 김유연 목사의 외치는 함성의 소리가 우렁차게 오늘도 이 나라 강토에 울려 퍼지길 바란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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