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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선 창문 칼럼(53)

기사승인 [512호] 2021.04.07  19: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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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난의 시기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자

푸른 하늘 위에 뭉게구름이 멋진 그림을 그리듯 서서히 이동할 때, 독수리와 참새들까지 높은 창공을 활활 날아다니는 가섭산 기슭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마을이 있었다. 그곳에서 더 올라가야 하는 ‘대골’이라는 골짜기에 살고 있던 ‘이기영’이라는 선배가 상촌마을로 이사를 왔다. 그와는 어린 시절부터 시작하여 중학교 2학년까지 즐거운 추억을 쌓으며 지냈다.

어느 날 하교 후 기영 선배가 갑자기 ‘일산’이라는 곳으로 전학을 갔다는 소식을 그의 형을 통해 듣게 되었다. 동생의 장래를 위해서 보다 나은 곳으로 갔다는 것이다. 그 당시에는 이별의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나에게는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

20년의 세월이 훨씬 지나 각자 결혼한 후 타지에서 그 선배와 반가운 재회를 하였다. 시간이 많이 지난 그의 외모도 몰라보게 변했고 전학을 하고 열심히 공부한 열매로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든든한 직장을 다니고 있었다. 하사관으로 국방의 의무를 감당하고 제대 후엔 사회인으로 남부럽지 않게 삶의 보람을 느끼며 생활하였다. 그리고 몇 해 후 선배가 갑자기 남미로 사업을 하러 간다고 했다. 국내에 있던 재산을 다 정리하고 이민형식으로 떠난다는 선배의 말에 동의할 수 없었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든든한 직장을 사표 내고 잘 알지 못하는 외국으로 간다는 것에 단지 어리둥절하였을 뿐이었다. 나의 조언을 뒤로하고 그는 기어코 남미로 떠났다. 그 후 6개월이 지나고 다시 귀국하였다. 그곳에 다녀온 선배가 남긴 것은 빚뿐이었다.

또 다시 직장을 다니면서 생활을 영위했지만, 중년이 넘어가는 무렵의 나이에 그가 할 수 있는 일자리는 쉽게 찾을 수 없었다. 모든 것을 걸고 사업을 시작하면서 대출을 받아 중장비를 구입하기로 결정 내린 그는 사기를 당했다는 것을 뒤늦게 알고 탄식했다. 지난 초겨울 그를 만나 식사를 대접하면서 짧은 시간이었지만 고향의 옛 추억들을 돌이키며 즐겁게 보냈다. 그 자리에서 생명의 복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신앙생활 할 것을 당부했다. 그렇게 희망의 대화를 나누고 좋은 시간을 보내고 우리는 기쁘게 헤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고 뜻밖에 그의 아들에게 문자가 왔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유품을 받은 것이 얼마 안 되어 이제 소식을 전한다는 것이었다.

그 선배는 빚을 해결할 길이 없었던 그 시간 동안 수없이 고민하고 위기의 순간을 맞이하였다. 마음은 피폐화되고 정신은 흐려지는 상황에서 육체의 질병을 이기지 못하고 따뜻하고 행복을 주었던 가족의 품을 떠나 그다지 풍족하지 못한 생활에 녹록하지 않았던 그의 힘겨운 삶은 60세를 넘기지 못하고 짧은 생애를 마치고 흙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기쁨과 근심, 웃음과 탄식이 교차하는 만남을 선배와 함께했던 지인으로서 소망이 있다면, 유가족들은 아버지와 남편의 빈자리로 인해 슬픔을 억누를 수 없겠지만 이 또한 받아들이고 인생의 주인 되시고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남은 가족들의 행복을 위하여 서로 사랑하며 생활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위로하고 축복한다. 이렇듯 사람은 만남을 통해 아픈 그림자를 만들고 예상치 못한 시간에 홀연히 떠나는 작별을 고한다.

필자는 지금까지 수만 명을 만나고 그 중 상당수의 사람들은 이미 나의 곁을 떠나고 없다. 몇 명은 사별로 만남이 어렵고, 또한 다양한 사정으로 육과 영으로 소통을 못하는 경우가 생겼다. 하지만 이 또한 만남과 이별이 연속되는 짧은 삶 속에서 자연스러운 모습이라 생각되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의 교훈을 주는 성경 말씀을 통해 깨달아야 한다. 자세히 살펴본다면 선교를 위해 사명을 잘 감당했던 사도 바울은 사랑하는 목회자에게 보낸 편지 중에 디모데후서 4장 7절부터 8절에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로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이들은 각자의 다양한 사연들을 안고 살아간다. 그 속에서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고 천국의 소망으로 믿음의 생활을 통하여 생명의 면류관을 얻는 축복을 받아야 한다.

또한 성경 베드로후서 1:13-15 “내가 이 장막에 있을 동안에 너희를 일깨워 생각나게 함이 옳은 줄로 여기노니, 이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네게 지시하신 것 같이 나도 나의 장막을 벗어날 것이 임박한 줄을 앎이라. 내가 힘써 너희로 하여금 내가 떠난 후에라도 어느 때나 이런 것을 생각나게 하려 하노라”고 하였다. 우리는 육신의 장막을 벗어 놓고 언젠가 떠나야 하는 인생이기에 이 땅에서의 만남과 이별에서 후회함이 없는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사역에 매진해야 한다.

사도 요한은 예수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 되심을 선포한 말씀 중에 요한복음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고 하였다. 살아가는 동안 사람이 어찌 근심이 없겠는가? 그러할 때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고 권면한다. 이 세상에서의 장막을 내려놓고 떠나면 예수를 믿는 성도는 하나님 아버지의 많은 거처가 예비 되어 있는 천국에서의 영원한 생활을 기대하며 소망 가운데 반드시 승리하자.

우리는 힘든 시련의 생활이 도래할 때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살아가자. 만남은 내가 원한다고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내가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다. 출생해 보니 나의 부모였고 친척들이었다. 자타가 원해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보호와 인도하심이 없이는 모든 만남은 이루어질 수 없다.

물론 현재 소통하고 있는 이들과는 내가 먼저 사랑하고 이해하며 용서하는 본을 먼저 실천해야만 한다. 그래야 지금보다 더 나은 행복한 만남과 아름다운 작별로 약속받을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육적인 이별은 말할 수 없는 아픔이지만, 믿음의 세계에서 헤어짐은 영원한 만남의 시작인 것이다. 사람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위로와 소망이 있음을 알고 코로나-19(COVID-19)시대에 예상치 못한 일로 인해 닥쳐오는 수많은 시련의 환경 속에서도 오직 믿음으로 극복하고 힘써 하나님께 영광을 올리며 살아가자.

 

한국열린사이버대학교 상담복지대학 사회복지학과 겸임교수

서울극동방송국(FM106.9MHZ) 매주 수요일 오후 4시 30분 ‘5분 칼럼’ 진행자

 

최 선 박사(Ph.D., Th.D.) smse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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