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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69)

기사승인 [512호] 2021.04.07  16: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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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래된 대문 앞에서

위 영

(본지 논설위원 '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아침 시간이라선지 아무도 없었다. 어디서든 번쩍거리는 앞보다는 한적한 뒤안, 앞자리보다는 뒷자리가 편한 성향 때문에 우당고택 보다는 그 옆의 솔밭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골 동네라선지 깊은 숲이 아닌데도 새소리가 제법 들려왔다. 이상하지, 물소리, 바람 소리, 새소리, 이 자연의 소리들은 커도, 커다래도 오히려 적막을 부른다. 새로운 풍경이 주는 정한이었을까, 밤새 어둠에 덮여 고요했을 소나무들 속에서 새소리를 들으니 적막강산이 따로 없다. 사람 없는 빈 숲, 새소리 들리는 공간 속에 있으니 가슴이 떨릴 만큼 그윽했다. 마음의 올들이 결결이 일어나서 고요를 안으니 충만하다. 일상이 아닌 낯선 풍경은 사람을 섬세하게 만든다. 떠나온 일상을 그윽하게 바라보게 하는 것도 떠남이다.

보은의 우당 고택은 보성선씨가 지은 오래된 집이다. 대규모 가옥을 돌과 흙이 버무려진 담이 주욱 둘러있는데 그 담 옆길을 걷는 것도 한참이었다. 99간의 한국 전통 가옥으로 안채 사랑채 사당으로 되어 있는데 보통의 고택들보다 훨씬 그사이들이 널찍널찍했다. 열린 뒷문으로 들어서니 안에서도 크고 작은 나지막한 담들이 서로를 각별하게 만들고 있었다. 담은 차단이나 구별이 아니라 존중처럼 여겨졌다. 공존하되 자유를 보장해주는 것처럼 보였다. 무엇보다 고택의 여기저기에 있는 오래된 대문들이 참 좋았다. 안채 바깥문이나 사랑채를 들고나는 대문들, 후문 격인 사주문과 사당 앞에 서 있는 솟을삼문은 위엄있고 장중했다. 지붕을 이고 섰을 뿐 아니라 그보다 더 무거운 세월의 더께를 이고 서서 강하고 담대해 보였다.

한때는 푸르른 젊음으로 하늘을 향해 치솟아 갔을 것이다. 어떤 거대하고 날카로운 힘이 그를 넘어지게 했을 때 그는 끝을 생각했을 것이다. 저렇게 장구한 세월을 새로운 모습으로 변형되어 살아있을 줄은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숲 가운데서 바라본 고택의 정문인 솟을삼문은 마치 땅으로 스며들 듯 소멸하려는 자세를 보여주면서도 땅속에 든든히 뿌리를 박고 선 새로운 나무처럼 보이기도 했다. 죽음 뒤에도 저리 아름다울 수 있다니, <청년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 노인들은 꿈을 꿀 것이다> 요엘서의 말씀이 저절로 생각났다. 자연은 삶의 스승이기도 하지만 죽음의 예후를 느끼게 하는 죽음의 스승이기도 하다. 소천召天은 하늘의 부름을 받았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죽음에 쓰는 ‘돌아가셨다’라는 표현 역시 꼭 가야 할 곳으로 떠나갔다는 표현일 것이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어느 시인의 절창처럼 내려가는 나이에 들어서면 사람들은 저절로 자연에 눈을 뜨게 된다.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어느 순간 보이게 되고 나무 한 그루 풀꽃 한 송이 속에서도 자연의 뜻을 생각하게 된다. 꽃이 핀 것은 잠깐이요 묵묵히 견뎌내는 것은 장구한 시간이라는 것을, 삶의 고뇌는 생명이 계속되는 한 이어진다는 것을, 꽃처럼 기쁨은 잠깐이고 금방 사라진다는 것을, 그래서 꽃이 난분분 져내릴 때 더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러니 슬픔 역시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라는 것을, 결국 자연은 사람들의 고향이며 사람 역시 자연의 일부분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부여된 하나님의 형상과 우리의 코에 불어 넣으신 생기는 선에 대한 의도이자 하나님을 찾는 길이기도 하다. 자연은 선에 대한 의도를 일깨운다. 하나님께서 사람보다 자연을 먼저 창조하시지 않으셨던가, 그래서 자연은 인류의 선배가 아니던가,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혹은 형언키 어려운 풍경 앞에서 오만할 자 누구일까, 자연에서 다가오는 소슬한 결들은 우리의 마음을 정화하며 세상일에 가려 있던 선에 대한 의지를 깨닫게 한다. 정화된 마음은 작은 풍경 앞에서도 두 손을 모으게 하고 결국 자신을 비천하게 여겨 창조하신 이를 기억하게 한다.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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