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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준경 전도사 가문의 영적 성장

기사승인 [504호] 2021.01.22  14:4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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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손이 말하는 문준경 이야기

 

저는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의 큰오빠 문양칠의 딸 문유금 권사의 외손자 조중현 목사(사진)입니다.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소속 목사인 동시에 18년차 한국해외선교회(GMP) 소속 네팔 선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의 외증조부는 2남 1녀를 낳았고, 그의 딸 문유금 권사는 부군 표재단과 결혼하여 1남 4녀를 낳았는데, 셋째 딸인 표연자는 저의 어머니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목사이셨습니다.

저의 아버지 세대에 서해바다 도서지역에서 교회를 지키셨던 목회자들이 다 그러하듯이 삶은 녹록치 않았고, 굶는 날이 먹는 날 보다 더 많았었습니다. 저는 가정보다 교회를 우선시하던 아버지가 싫었고, 눈물로 기도만 하시며 때로 빈 솥에 물을 넣고 불을 붙이던 어머니가 그렇게 안타까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나는 주의 종이라는 목사는 절대로 되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아버지가 가장 존경스럽고, 어머니가 가장 사랑스러운 분이 되었고, 교회가 가장 좋은 집이 되었기에 복음을 위한 주의 종이 되고자 목회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 가문의 영적인 본이 되어 주시고 신앙을 키워주신 외가의 증조모 되신 문준경 전도사님의 순교신앙이 대를 이어왔기 때문입니다.

저는 섬마을 신안군 증도면 염산교회 개척을 시작으로 목회가 시작되었으나, 40여 가구 밖에 되지 않은 염산교회는 가족적인 분위기로 점점 성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하얀 치마와 저고리를 입으신 키가 자그마한 여자 한 분이 염산교회를 방문하셨습니다. 저는 그때 서울신학대학교 위탁교육을 받으러 갔던 터라 제 아내가 그분을 맞이하였습니다. ‘사무엘(저의 어렸을 적 이름)’을 찾는 그분께는 아내의 권유에도 집안으로 들어오시지 않고 간단히 기도하시고 발걸음을 돌리셨다고 합니다.

그분은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를 모시던 백정희 전도사였습니다. 저희 부모님께서 신안군 자은도 자은남부교회를 평신도로 섬길 때 백 전도사님께서 평소에 저의 집에 와서 제가 4살이 될 때까지 이름을 ‘사무엘’이라 부르며 농사일에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저를 돌보아 주셨습니다.

그렇게 작은 어린이가 커서 목회를 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듣고, 저를 찾아 먼 길까지 오신 것입니다. 백 전도사는 문준경 전도사의 수양딸로서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그동안 우리에게 이야기로 전해졌던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의 복음사역은 2013년 5월에 “신안 증도의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이 개관된 것은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저희 부모님(조동진 목사와 표연자 사모)도 개관식에 참석하셨습니다.

저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때를 이야기하며 참 많이 감사했고, 기뻐했던 모습이 생각이 납니다. 그리고 문준경 전도사의 친 조카인 문유금 권사(문준경 큰오빠의 딸)의 추모예배가 통합측 전국남선교회 회장을 역임하셨던 외삼촌(표명민 장로, 현 서울동막교회 시무) 집에서 모였을 때, 어머니로부터 문준경 전도사에 대해 들었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그 당시 어머니와 같이 사셨던 표영자 권사(둘째 이모님. 83세)께서도 많은 이야기를 해 주셨습니다.

순교자 문준경 전도사는 전남 신안의 작은 섬 암태도에서 태어나 살림이 넉넉한 양반 가문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유복하게 자라면서 글을 배우고 싶어 했지만, 여자아이라서 집안 일만 잘하면 된다는 아버지의 완고함에 살림을 배우며 자랐습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손 맵시가 뛰어났으며, 당시 문씨 집안이 결코 작은 집안이 아니라서 그리고 문 전도사의 아버지 문재경(천영)은 나라 벼슬인 진사이었으며, 성균관의 교수를 역임하며, 국가 고위층을 향해 정의를 외치다가 신안의 암태도로 귀향을 온 후손이라고 합니다.

문재철이라는 집안 자손은 조선의 5걸 안에 드는 대부호였습니다. 목포와 서·남해에서는 산업의 중심인물이었습니다. 문준경 전도사가 17세에 사업을 하던 남편 정근택을 만나 결혼하게 되지만 아이가 없어서(법원 참고인 조사에도 32세 1월경까지 동거했음) 자신의 허락으로 둘째 부인을 얻게 되었습니다.

문준경 전도사는 둘째부인과도 아주 잘 알고 사이좋게 지냈다고 합니다. 아기를 낳을 때도 문 전도사가 직접 받아 주었다고, 이를 목격한 이모님(표영자)께서 그 딸이 낳자마자 숨을 쉬지 못하자 문 전도사가 자신의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서 피를 직접 아이의 입에 넣어주면서, 밤샘 아기를 간호했다고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따님은 문준경 전도사를 어머니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저희 어머니(표연자)는 목포에 나와 계신 문준경 전도사를 외할머니(문유금)과 함께 수차례나 만난 적이 있습니다. 그때 목포 북교동성결교회 근처에서 만났을 때 상당한 규모의 집을 보여주며 자신의 집이라고 하셨을 뿐만 아니라, 항상 집 밖에 있는 만두집에서 만났다고 했습니다.

아마도 그 집은 남편과 둘째 부인 그리고 자녀들이 있는 북교동 집이었던 것 같습니다. 당시 문 전도사는 옆 동네(죽교동)에 살고 있었지만, 남편과 자녀들이 둘째 부인과 살고있는 이 집 또한 자신의 집으로 여기고 계셨다고 합니다. 함께 생활하지는 않았지만, 가족으로서 완전한 분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집안에서도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며, 이혼하거나 쫓겨나거나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당시 암태도와 목포에 있던 문준경 전도사의 형제들은 상당한 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편이었던 정근택 역시 일본과 무역을 하고, 어업에도 손을 대는 등 섬 전체적으로 부유한 유지급으로 통했다고 합니다.

당시 큰오빠, 그러니까 저희 외증조부 되시는 문양칠은 목포에서 가장 큰 여관업을 하였고, 누이동생인 문준경 전도사에게 목포에 거주하면서 형제들과 생활하면 어떻겠냐고 권면해서 목포로 나오게 되었다고 합니다.

목포로 나오신 문준경 전도사는 손재주가 좋아 훗날 전도사로 활동할 때 재봉틀과 바느질 솜씨를 발휘하여 수많은 옷들을 지어 압해도와 서 남해 도서지역에 선교하는 데 도구로 사용하셨다고 합니다.

저희 어머니께서 직접 보셨던, 당시의 암태도의 문준경 전도사의 생가 모습은 완전한 ㄱ자 형태가 아닌 마루가 양쪽으로 나뉘어져 있었고, 가운데 부엌은 바로 마당으로 연결되는 구조였다고 합니다. 지금 기념관에 전시된 생가의 사진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 바로 잡을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책에서만 읽었던 문준경 전도사에 대해서 생생하게 살아 있는 장면처럼 그분과 같이 울고 웃으며, 한 시대를 같이 살았던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울컥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당 시대의 잊혀진 시간들을 하나씩 하나씩 기억해서 내놓은 증언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동시대에 나누었던 기쁘고, 아픈 기억들이 지금 살아있는 어른들이 돌아가시면 모두 다 잊혀지겠지요. 제가 책에서 읽었던 문준경 전도사와 어머니와 이모가 나눈 이야기 속의 문준경 전도사의 삶은 거리감이 다소 있었습니다.

문준경 전도사는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여인이 아니고, 오히려 사랑을 받았고, 남편의 대를 잇기 위해 작은 부인을 맞아, 이혼을 하거나 첩을 호적에 등록시킨 것이 아니고 자신의 자리를 내어준 훌륭한 인격을 가지셨던 분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많은 사람의 목숨을 대신하여 순교하였고, 평소에는 전도자로서 복음의 역군으로서 희생과 헌신을 아끼지 않고 섬 지역 전체를 아우르며 전해준 복음은 우리 문씨와 정씨의 가문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어머니로 지금도 살아 움직이고 있습니다. 이제는 문준경 전도사의 순교정신과 복음 그리고 선교에 대한 열정이 바르게 전해지고 삶의 진실과 가문의 사실이 재해석되어 지기를 간절히 소원하며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것입니다.

조중현 목사(문준경 전도사 외가의 증손자) chd6235@naver.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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