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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까지 R. J. 토마스 선교사의 사역에 대한 인식 형성과정 고찰(3)

기사승인 [504호] 2021.01.22  14: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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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펜젤러 · 슈펠트 · 마펫 · 그래합리 게일의 견해

▲ 이은선 안양대학교 신학과 교수 · 교목실장

Ⅲ. 국내 입국 선교사들의 토마스 선교사에 대한 인식


토마스 선교사에 대해서 가장 먼저 알았던 사람은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선교사였다. 언더우드는 1884년 조선에 선교사로 가기로 결정된 후에 그의 친척들을 만나려고 영국 런던을 방문했다. 방문 과정에서 런던선교회 사무실에 들렀는데 토마스 선교사에 대해 “실무자들 가운데 한 명이 그의 선교지가 ‘조선’, ‘조선’이라는 것을 들었을 때 글쎄, 내가 믿기에 우리가 20년 전에 거기에 한 사람을 파견했는데 그 후에는 다시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상기시켰다. 그러므로 그는 한국에 오기 전에 이미 토마스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었고 그 이후에도 그 사건을 자주 반복하여 이야기하였다.

아펜젤러(Henry G. Appenzeller)는 『코리안 리포지터리』(Korean Repository) 1892년 2월호에 조선 개국에 대한 슈펠트(R. W. Schufeldt)의 설명을 게재하였다. 

감리교의 올링거(F. Olinger)가 1892년 1월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 창간한 영문 월간잡지인 이 잡지의 2월호에 아펜젤러는 이 글을 기고하였다. 조선과 미국의 수교 협상의 주역이었던 슈펠트 제독은 1886년 고종의 초청을 받고 서울에 와서 이듬해까지 이곳에서 지냈다. 아펜젤러는 슈펠트 제독에게 그가 한국을 서양 세계에 개국시킨 과정을 설명해달라고 개인적으로 요청하였고, 1887년 1월 29일에 그 원본을 그에게서 받았다. 그러므로 아펜젤러는 1887년 1월에는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알았으며 이 슈펠트의 설명을 5년 후에 『코리안 리포지터리』가 창간되자 다음 호에 공개하였다.

슈펠트 제독은 한국과의 수교 과정에 대한 설명에서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설명한다. 제너럴셔먼호는 상하이로부터 미국인인 프레스톤 선장의 지휘로 “머스킷 총, 밀가루, 밀수품이었던 다른 품목들을 싣고 마침내 약탈하는 원정을 위해 항해하였다.” 이 배가 대동강에서 불탄 후에 그가 와추세트 호를 타고 와서 이 사건에 대해 조선정부에게 질문하고 받은 답변서로부터 다음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제너럴셔먼호는 고의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인 항의 하에서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갔다. 마침내 상륙하여 불법적인 방식으로 행동하던 선원들은 격노한 폭도들에 의해 공격받아 살해당하였다.” 그리고 약탈을 자행하는 중국 해적선으로 오인되어 공격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슈펠트는 제너럴셔먼호 사건에 대한 조선정부의 설명을 소개하면서 자신의 평화적인 협상을 통한 개국의 성과를 부각시키고 있다. 아펜젤러는 이러한 개국 과정의 설명을 통해 슈펠트의 수교 과정에서의 활동과 함께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선교사들에게 알리고 있다. 아펜젤러가 1892년에 이 글을 기고한 이후 선교사들은 제너럴셔먼호 사건을 전반적으로 알게 되었다. 
마펫(S. A. Moffett) 선교사는 평양에서 전도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토마스 선교사가 나누어주었던 “한문 신약성경들을 받은 자들을 일부 만났으며” 1893년 10월에 22명으로 구성된 학습자반을 구성했는데, “수용된 요리문답 교육자들 가운데 그의 부친이 여러 해 동안 그의 집에 토마스 선교사가 나눠주었던 신약 한문성경들 가운데 한 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러므로 마펫도 늦어도 1893년 10월에는 토마스가 평양에 와서 성경을 반포하다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다. 

1894년 12월에 그래함 리(Graham Lee)는 그의 선교 편지에서 “토마스 선교사가 한문 신약성경 사본을 조선에 배포한 것이 최초의 개신교 선교활동이었다.” 그리고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소속으로 활동했다가 후에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조선에 다시 들어오는데 1866년 평양 부근에서 이 배는 불타고 말았다”고 기술하였다.

이 편지에서 주목되는 점은 그래함 리가 토마스 선교사를 한문성경 사본을 조선에 배포한 첫 번째 선교사이며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소속으로 활동했다고 언급한 점이다. 이미 그리피스도 토마스를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소속이라는 점을 언급하였다. 

1895년에 게일(James S. Gale)은 『코리안 리포지터리』에 상당히 긴 제너럴셔먼호 사건 자체에 대한 목격자의 증언을 기고하고 있다. 국내에 들어온 선교사들 가운데 게일이 제일 먼저 제너럴셔먼호와 최난헌에 대해 변호하는 내용을 기록하였다. 게일은 1888년 캐나다에서 파송 받아 국내에 들어온 후에 1891년 1월에 마펫과 함께 평양을 거쳐 만주까지 여행하였고, 1895년에는 원산에 거주하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이은선 박사(교회사) dsglory3604@nate.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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