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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영 사모의 편지(61)

기사승인 [504호] 2021.01.20  16: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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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희미하게 생의 오한이 다가올 무렵

위 영

(본지논설위원'속삭이는 그림들' 저자)

홋카이도의 어느 시골 마을 이름이 애별愛別이라고 한다. 로맨틱한 시인이 그 단어를 놓칠 리 없다. <어떻게 된 일이길래 마을 이름이 애별인가/ 태어났으니 감옥이란 말인가/ 한 번 안아봤으니 이별 또한 받아들이자는 것인가/ 저기 저 내리는 눈발의 반은 사랑이고 또 절반은 이별이란 말인가/ 어제는 미안해서 오늘은 이별을 하자는 말인가(후략)/이병률>

 사람의 기억은 풍경 채집소일까, 내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이 저장된 소소한 풍경들이 마치 미래처럼 다가오곤 한다. 규서를 낳고 병원 침대에 누워있을 때, 이제 생각하면 참으로 빛나는 청춘인 설흔. 아이였는데, 이월 하순이었다. 무한정 함박눈이 내렸었다. 땅에 닿으면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눈이었다. 어쩌면 그 함박눈이, 내리다 녹아버리는 쓸쓸함이 내게로 스며들어 산후 우울증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몇 달 동안 내내 혼자 있을 때마다 눈물이 났다. 슬픔이나 고통 그런 것과는 전혀 궤를 달리하는 아주 특별한 슬픔이었다. 
 
아이를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입힐 때도 아이의 사랑스러운 볼에 입술을 비비면서도 눈물이 흘렀다. 마치 어느 때는 내가 흘리는 눈물이 아닌 것처럼 나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데 흐르는 눈물이 흐르곤 했다. 규서야 엄마가 왜 이렇게 눈물이 나지? 방긋 웃는 아이에게 말을 하기도 했다. 그때는 그게 산후 우울증이라는 것도 몰랐다. 워낙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성향이 많은 사람이라 우울이 스며들 때라고는 거기 얕은 곳 눈물 자리였을까, 생의 분기점이었을 것이다. 이제는 혼자가 아니라는, 내 인생이 아니라는, 아기라는 이 황홀한 생명이 나보다 더 소중할 거라는, 그러고 보니 산후 우울증 그것도 나의, 나만의,  나와의,  애별愛別이었겠다.

  ‘지혜를 읽는 시간’이라는 책의 마지막 챕터를 읽는다. 성공자가 들어간 책표지는 마치 자기 계발서처럼 보이지만 책의 의도와는 전혀 별의 된 문구이다. 지혜를 심리학적 견지에서, 실제 지혜로운 사람으로 타인의 추천을 받은 대상자들의 의견을 종합해서 심리학자인 저자가 자신의 의견을 보태 쓴 글이다. 지성과 지혜는 다르다. ‘저자가 고안해낸 지혜 발달 이론에 의하면 삶의 위기가 지혜의 발달에 촉매 역할을 한다는 것, 지혜의 드러남은 자전적 스토리에서 비롯된다는 것도 의미심장하게 여겨졌다. 지혜는 감정과 겨룬 지적 싸움의 결과물이다. 공감 능력과 사고 능력은 비례한다. 역지사지, 비판적인 성찰은 지혜가 아니다. 지혜가 지닌 온화함을 의미하는것이리라, 삶이란 통제불가능함을 깨닫는 것..... 책을 읽는 기쁨 중의 하나는 책에서 나를 발견할 때다. 지혜가 특별하지 않아서 오히려 나는 어떤가 하며 책을 읽어갈 수 있었다. 다양한 층위가 있는 질문이지만 자신이나 타인에 대해서 혹은 그 둘의 관계에 관해서 지적탐구와 정서적 투쟁을 통해 이루어지는 경험에 열린 마음이 있는가? 좋지 못한 자신의 감정을 인정하며 대응하는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더 깊은 수용을 하는가, 삶을 통해 배워나가는 것은 성장이 아니라 깊이라는 것, 지혜는 평화로움 진정한 공감 자기 초월성 즉 헌신....등으로 이루어진 하모니라는 것, 베를린 지혜연구팀(이 팀 외에도 실제로 지혜를 연구하는 수많은 단체가 있었다)은 지혜란 자신의 눈 안의 들보를 깨닫는 것, 추상적 지식이 아니라 사람들 내부에서 실제로 발달하는 총체적 특성이라고 요약했다. 오 사랑하는 자에게 연단을 주시는 그분에 대한 학자들의 새로운 표현이었다. 존재에 대한 특별한 인식지점. 책은 세월이 가면서 주는 슬픔을 희석하는 묘약이다.

 한 해가 마치 손바닥에 가둔 물처럼 손가락 사이로 지나가 버렸다. 송구영신 예배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봄 오더니 여름 오고 나무 잎사귀 달라지더니 한 해가 가고 새해가 왔다. 그리고 올해 역시 속절없이 지나가리라. 오늘 흩뿌리는 눈은 아주 작고 가벼워서 마치 공간을 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저 사이 어디 분명 봄을 품고 있으리, 온전은 죽음과 함께 있다 할지라도 죽음을 향해 사는 것처럼 온전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눈을 멀리 주님께 두고, 매 순간과 애별하며.....   
    

기독교헤럴드 chd623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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