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fault_top_notch
default_news_top
default_news_ad1
default_nd_ad1

토착화 과정으로서 추도예배 발전과정(9)

기사승인 [499호] 2020.11.26  12:06:44

공유
default_news_ad2

- 제사에 대한 역사신학적 이해

       ▲ 안양대학교 신학과 교수 · 교목실장

윤성범은 윤리적인 문제인 조상제사를 종교적인 문제로 잘못 이해한데서 제사폐지의 동기가 발생했다고 분석한다.

따라서 초기 선교사들이 제사를 우상숭배로 잘못 이해한 것을 해결하려고 토착화신학이 대두되었다. 제사는 예의 문제인데, 동양의 예란 인간 대 인간의 관계이므로 제사란 조상에게 효도하는 예에 불과하다. 우상제물을 먹는 자와 먹지 못하는 자가 있는 바와 같이 제사도 믿음이 강해 불신자와 같이 행하지 않는 자와 행하는 자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우리가 제사를 하지 않으면 부모를 생각지 않는다는 태도, 부모의 기일을 잊어버리고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태도가 기독교인들에 대한 반감을 사기 쉬운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천주교가 제사를 수용한 것을 긍정적으로 인정하면서 토착화 논쟁의 이론을 넘어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

윤성범이 제사에서 종교성을 부정하고 조상에 대한 효도의 실천으로 이해할 것을 제시한 후에 제사문제에 대한 논의가 좀 더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현재 기독교 안에서 조상제사에 대해서 세 가지 흐름이 존재하고 있다. 첫째는 조상제사를 효행의 실천으로 삶의 현장에서 일상화된 문화적인 요인으로 보고 복음의 토착화라는 차원에서 개선하거나 수용하려는 조류가 있다. 이러한 입장을 주로 감리교와 기독교장로회에서 발견된다.

박근원은 신앙적 확신으로 제사와 성묘에서 절하는 것은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말한다. 박근원은 일제의 신사참배와 다른 차원에서 조상제사의 문제를 해결해온 천주교의 노력을 상당히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반면에, 개신교는 미신의 풍습을 버리면서 조상에 대한 예법 표현의 경의까지 버려버리는 우를 범했다고 비판한다.

우리 문화에 대해 서구 문화우월주의에서 군림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우리 문화의 잘못된 점인 미신적인 습관은 배제하되 좋은 습관인 부모에게 효도하는 자세는 간직해야 한다. 박근원은 제사는 조상을 하나님 혹은 신으로 숭배하고 절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상숭배와 조상제사를 통해 표현되는 조상공경 의식은 그 맥락의 다름을 강조한다.

그리고 조상제사문화를 우상숭배라고 정죄하기에 앞서 우상숭배에 대한 신학화와 저급한 종교성에 기초하여 조상을 숭배하는 사람에게 교육이 선행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또한 사도신경의 성도의 교제 속에 산 자와 죽은 자의 교제를 포함하는 신학적인 이해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변선환은 한민족이 가지고 있는 문화로서의 조상제사는 효의 표시이며 십계명의 제일계명과 제2계명에 대한 우상숭배가 아니라고 말하여 개신교의 조상제사 금지정책을 유교와 조상제사에 대한 무지와 성경 해석에 대한 오류에서 발생한 잘못이라고 지적하였다.

감신대 박종천은 추도예배는 죽은 자가 아닌 살아있는 자에게 초점을 맞춰 죽은 영혼과의 교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비판하면서 가부장적인 제사가 아니라 효를 표현하는 제사제도, 죽은 자와 산 자를 포괄하는 공동체를 형성시켜 살아있는 자의 나눔과 화해를 형성시키는 제사제도를 주장한다. 한 상에 음식을 차리고 함께 절하고 함께 음식을 나누는 것을 수용함으로써 공동체성을 회복할 것을 제안한다.

김경재는 과거의 조상제사 문제로 야기된 불행한 역사는 서로의 종교의례의 참 의미와 문화전통을 이해하지 못한데서 연유했다고 말하면서 유교의 제사행위를, 또한 절하는 몸동작을 우상숭배라고 정죄하고 매도했던 것은 시정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김경재는 잠자는 자들의 변화와 죽은 자들의 부활이라는 변용을 통해 죽은 자에게도 인격이 있고 죽음 이후에도 살아 있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하나님 안에 있기에 죽음은 또 다른 생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모든 성도의 교제라는 관점에서 보면 영생하는 자와 이 땅에 있는 자가 성령 안에서 연합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조상제사를 통해 성도의 교제를 나누는 것은 신학적으로 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도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조상제사는 조상의 신격화나 혼령과 만나는 행위가 아니라 후손들이 하나님 은총의 배려를 신뢰함으로 계명과 믿음 안에서 신실하게 살 것과 조상들의 생명을 더 풍성하게 이어갈 것을 다짐하는 윤리적 다짐이라고 하였다. <다음호에 계속>

이은선 박사(교회사) dsglory3604@nate.com

<저작권자 © 기독교헤럴드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default_news_ad5
default_side_ad1
default_nd_ad2

독자기고

item34

인기기사

default_side_ad2

포토

1 2 3
set_P1
default_side_ad3

섹션별 인기기사 및 최근기사

default_side_ad4
default_nd_ad6
default_news_bottom
default_nd_ad4
default_bottom
#top
default_bottom_notch